쌍방울 자금이 KH 쪽으로 흘러간 셈…“단순투자 목적”이라지만 ‘경제공동체’ 뒷말
쌍방울그룹은 2020년 9월 계열사 포비스티앤씨를 통해 연예기획사 아이오케이를 850억 원에 인수했다. 포비스티앤씨는 2020년 7월 367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했고, 2020년 9월에는 100억 원 규모의 CB를 발행했다. 아이오케이 인수를 앞두고 적극적으로 자금을 조달한 것이다. 포비스티앤씨는 아이오케이 인수 당시 “국내 콘텐츠들의 해외 시장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매니지먼트 회사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며 “아이오케이와 협의해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아이오케이는 기대만큼의 실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아이오케이는 2019년 약 6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쌍방울그룹에 인수된 후인 2020년과 2021년에는 각각 30억 원, 84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1~3분기에도 69억 원의 영업손실을 거뒀다.
아이오케이는 적자에서 헤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CB 발행을 통해 재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왔다. CB는 일정한 조건에 따라 회사의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채권을 뜻한다. 쌍방울그룹에 피인수된 후 아이오케이가 발행한 CB는 200억 원이 넘는다. 아이오케이가 그간 거둔 적자를 상쇄할 수 있는 수준이다. 쌍방울그룹 계열사인 비비안과 미래산업 등이 아이오케이 CB를 매입했다. 아이오케이 소속 연예인이었던 비아이(본명 김한빈)나 김 아무개 아이오케이 이사도 CB 매입에 동참했다. 덕분에 아이오케이는 적자에도 불구하고 부채비율 100% 미만이라는 안정적인 재무 구조를 갖추고 있다.
특이한 점은 아이오케이가 CB 발행뿐 아니라 매입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KH그룹 계열사 CB를 매입한 것이 눈길을 끈다. 아이오케이는 2021년 8월 50억 원 규모의 KH필룩스 CB를 인수했고, 2022년 1월에는 100억 원 규모의 IHQ CB를 매입했다. KH필룩스와 IHQ는 모두 KH그룹 계열사다.
아이오케이는 2020년 11월 KH글로벌조합에 출자해 지분 99.9%를 확보했다. 이후 KH글로벌조합은 KH그룹 계열사 장원테크가 발행한 30억 원 규모의 CB를 매입했다. KH건설도 2020년 11월, 2021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총 100억 원 규모의 CB를 발행했는데 이 역시 KH글로벌조합이 인수했다.
아이오케이는 지난해 말 KH글로벌조합에 출자한 지분을 처분했다. 그러나 KH글로벌조합의 CB 상당수가 아이오케이에 넘어간 것으로 추측된다. 아이오케이가 올해 장원테크와 KH건설 지분을 확보하면서 “CB 전환청구 행사에 따른 주식 취득”이라고 공시했기 때문이다. 한편, KH그룹 계열사들은 CB 발행 목적에 ‘기타자금’ ‘운영자금’ ‘타법인취득자금’ 등으로 공시했다.
아이오케이는 장원테크와 KH건설 외에도 KH그룹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모두 CB를 주식으로 전환해 얻은 지분이다. 아이오케이는 올해 9월 말 기준 KH필룩스 지분 1.76%, IHQ 지분 6.98%, 장원테크 지분 9.23%를 갖고 있다. 올해 초에는 KH건설 지분 10.41%도 보유했지만 현재는 매각한 상태다.
정리하면 아이오케이는 CB 발행을 통해 비비안, 미래산업 등 쌍방울그룹 계열사로부터 자금을 조달 받았다. 이후 KH그룹 계열사가 자금이 필요해 CB를 발행했고, 이를 아이오케이가 인수한 후 주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쌍방울그룹 계열사에서 KH그룹 계열사로 자금이 흘러간 셈이다.
아이오케이가 KH그룹 계열사의 CB를 인수하더라도 이는 채권 자산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당장 아이오케이 재무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는 않다. 다만 CB를 발행한 법인 입장에서는 언젠가 갚아야 할 부채로 인식되므로 그만큼 부채가 늘어난다. 그러나 해당 CB가 주식으로 전환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상환 의무가 사라져 부채로 인식되지 않고, 오히려 신주가 상장됨으로써 자본이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CB 발행이 능사는 아니다. CB가 주식으로 전환되면 CB 보유자의 지분율이 높아지고, 그만큼 대주주의 지분율은 낮아진다. 대주주의 지분율이 낮으면 경영권 침해에 노출될 수 있다. 당장 KH그룹 측이 보유한 KH건설, 장원테크 등의 지분은 20%도 되지 않는다.
아이오케이는 KH그룹 계열사 지분 보유 내역을 공시하면서 경영 참가 목적이 없다고 밝혔다. 아이오케이 분기보고서에도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라고 게시했다. 실제 아이오케이는 KH그룹 계열사 지분 일부를 매각하는 등 경영 참여보다 차익 실현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또 아이오케이가 매각한 지분을 특정 업체가 대거 매입한 것도 아니라서 아직까지 경영권 침해 우려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아이오케이가 KH그룹 계열사 지분을 대량으로 매각하면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변동성이 커지는 셈이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쌍방울은 전환사채를 갖고 머니게임을 하고 있다”며 “상장사라는 프리미엄을 이용해 제대로 된 사업을 하려 하지 않고 이상한 플레이로 특정인이 수익을 가져가는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오케이가 KH그룹 계열사 CB를 인수한 것에 대해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배상윤 KH그룹 회장의 친분이 영향을 미쳤다는 뒷말이 나온다. 쌍방울그룹과 KH그룹은 올해 초 쌍용자동차 인수를 위한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등 두 기업의 친분은 재계에 널리 알려졌다. 김성태 전 회장은 2021년 5월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쌍방울그룹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쌍방울그룹과 KH그룹의 자금 거래도 투자 목적보다는 경제공동체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성태 전 회장과 배상윤 회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변호사비 대납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이 밖에도 김 전 회장은 불법 대북 송금 혐의, 배상윤 회장은 알펜시아 리조트 입찰 방해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검찰 수사를 피해 해외에 체류 중이다. 검찰은 지난 8월 김 전 회장의 여권을 무효화한 후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내렸고, 배 회장도 지명수배된 상태다.
아이오케이가 보유 중인 주식 현황을 살펴보면 쌍방울그룹 계열사나 조합에 출자한 것 외에는 대부분 KH그룹 계열사 주식이다. 이와 관련, 아이오케이 관계자는 “사업 다각화를 위한 투자의 목적”이라며 “CB 매입이 친분 관계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배우 김하늘, 아이오케이 사내이사 중도 퇴임
아이오케이는 2021년 5월 배우 김하늘 씨와 김민숙 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를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아이오케이는 당시 “엔터테인먼트 산업 및 영상 콘텐츠 전반에 대한 넓은 이해도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의 성장기반 구축 및 경쟁력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김하늘 씨는 1998년 영화 ‘바이준’으로 데뷔했다.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그녀를 믿지 마세요’가 큰 인기를 얻었고, 김 씨 역시 유명 배우 반열에 올랐다. 김하늘 씨는 2021년 3월 소속사를 싸이더스HQ에서 아이오케이로 옮겼다. 김민숙 대표는 김하늘 씨를 발탁해 데뷔시킨 인물이다.
그러나 김하늘 씨와 김민숙 대표는 지난 9월 아이오케이 사내이사에서 퇴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두 사람의 임기는 2024년 5월까지로 임기도 1년 이상 남아있었다. 그렇다고 김하늘 씨가 소속사를 다른 곳으로 옮긴 것도 아니다. 이와 관련, 아이오케이 관계자는 “김하늘 씨가 이사에서 퇴임한 이유는 본업인 배우 생활에 더욱 전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