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아자르-포르투갈 호날두 무기력 퇴진…크로아티아 그바르디올-모로코 암라바트 돌풍의 주역
#황금세대의 초라한 몰락
카타르 월드컵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국가 중 하나로 벨기에가 꼽힌다. 세계 최고 무대에서 두각을 보이는 선수들이 비슷한 시기에 쏟아지며 '황금세대'로 불리던 벨기에다. 이번 대회에도 로멜루 루카쿠(인터밀란), 에당 아자르(레알 마드리드), 드리스 메르텐스(갈라타사라이), 케빈 데 브라위너(맨체스터 시티), 악셀 비첼(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티보 쿠르투아(레알 마드리드) 등 화려한 선수 명단을 자랑했다.
벨기에에서는 2010년대부터 스타 플레이어가 연이어 탄생하며 황금세대가 시작됐다. 이들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알렸다. 한때 피파랭킹 1위에 오르는 위엄을 과시하기도 했다(2022년 12월 현재 2위). 이어진 두 번의 유로에서 연속 8강 진출,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3위를 기록했다. 이번 대회는 황금세대의 마지막 도전으로 여겨졌다.
스타 집단이 마지막으로 나서는 대회였지만 벨기에는 조별리그 3경기에서 1승 1무 1패, 1득점 2실점으로 탈락이라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모로코와 크로아티아에 밀려 16강 진출 티켓을 놓쳤다.
A매치 68골(104경기)을 기록한 주전 공격수 루카쿠는 대회 전부터 부상이었다. 한때 세계 최고라 불리던 에당 아자르도 과거의 모습이 아니었다. 얀 베르통언(안더레흐트), 토비 알더베이럴트(로열 앤트워프)가 지키는 수비진은 3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였다. 현재 세계 최고 미드필더로 평가받는 데 브라위너의 경기력도 좋지 않았다.
아자르의 부진은 더욱 두드러졌다. 아자르는 한때 리오넬 메시(파리생제르망)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무소속)와 함께 세계 최고 중 하나로 꼽히던 선수다. 하지만 2019년부터 하락세를 보였다. 그나마 대표팀에서는 존재감을 보였으나 이번 대회에서는 무기력한 모습만 보였다. 향후 극적인 부활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실망스러운 성적에 팀 내 불화설까지 나왔다. 팀 내 공격진과 수비진이 서로 탓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브라위너의 "우리 팀은 나이가 많다"라는 발언이 보도됐고 팀 내 언쟁으로 이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회를 마무리하며 일부 선수들은 따로 카타르를 떠나는 모습도 보였다.
벨기에의 황금세대는 이대로 여정을 끝내는 모양새다. 메르텐스, 비첼, 베르통언, 알더베이럴트 등 베테랑들은 다음 월드컵에 나서기 어려운 연령이다. 기량 하락이 두드러지는 아자르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축구팬들의 많은 기대를 받았던 황금세대는 월드컵 3위(2018년)라는 결과를 남기고 퇴장하게 됐다.
#'라스트 댄스' 멈춘 호날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이번 대회에서도 역시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선수였다. 1985년생 만 37세로 이번 대회 경기장을 밟은 선수 중 다섯 번째로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 스타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그를 향한 시선은 과거와 달랐다. 빛나는 기량이 아닌 거듭된 '사고'로 이목을 집중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대회 전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흔드는 발언들을 이어갔고 결국 계약을 해지, 무소속으로 월드컵에 나섰다.
대회 출발은 순조로웠다.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가나와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는 페널티킥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팀 승리와 함께 월드컵 5개 대회 연속 득점을 기록한 세계 유일한 선수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호날두는 조별리그 3경기에서 모두 선발로 나섰다. 그러나 그를 향한 의심은 더욱 커져 갔다. 그가 선발로 나서는 것이 팀 전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대한민국과 벌인 조별리그 3차전에서는 코너킥 수비 장면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 골을 헌납했다. 후반 20분에는 교체돼 벤치에 앉았다. 이는 그의 첫 월드컵이었던 2006 독일 월드컵 이후 선발 출전을 했음에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교체 아웃된 메이저 대회 경기였다. 포르투갈은 이 경기에서 결국 역전패를 당했다.
페르난두 산투스 감독은 16강 토너먼트에 돌입하자 호날두를 선발 명단에서 빼기 시작했다. 16강전에서 호날두 대신 투입된 21세 공격수 곤살루 하무스는 해트트릭으로 믿음에 보답했다. 오랜만에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하는 호날두에게 많은 사진기자들이 몰려 진풍경을 자아내기도 했다. 교체 투입으로 경기장을 밟았지만 팀의 6-1 대승에도 굳은 표정으로 가장 먼저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태도가 지적을 받았다.
호날두의 카타르 월드컵은 모로코와 8강에서 마무리됐다. 이 경기에서도 교체로 투입된 호날두는 찬스를 놓치는 등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패배로 대회 탈락이 확정된 이후 복도를 빠져나가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포르투갈의 월드컵 우승이라는 꿈을 위해 열심히 싸웠다. 불행히도 꿈이 끝났다"는 감상을 남겼다.
#결승 진출 좌절에도 쏟아진 박수
크로아티아와 모로코는 대회 4강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다. 비록 결승 무대는 밟지 못했지만 이들의 선전은 대회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 요소였다.
크로아티아는 지난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준우승이라는 호성적을 거뒀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선 4년 전 준우승의 주역인 마리오 만주키치(은퇴), 이반 라키티치(세비야) 등이 대표팀을 떠나 전력 약화가 예상됐다. 여전히 팀을 지키고 있는 루카 모드리치, 이반 페리시치 등도 이미 노장 축에 들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로아티아는 예상을 깨고 두 대회 연속 4강 무대에 올랐다. 8강에서는 우승후보 1순위로 꼽히던 브라질을 꺾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 같은 선전의 배경에는 수비진 강화가 꼽혔고 그 중심으로 요슈코 그바르디올(라이프치히)이 지목됐다. 당당한 체구에 스피드를 겸비했고 발밑 기술까지 갖췄다. 16강 일본전 추격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동료들이 대부분 공격에 가담하자 홀로 일본의 역습을 막아내는 듯한 활약으로 찬사를 받았다. 손흥민과 같이 안면부 부상으로 보호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아 보였다.
그바르디올은 이번 대회를 통해 단숨에 차기 세계 최고 수비수가 될 재목으로 꼽히고 있다. 월드컵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떠오른 그는 불과 20세(2002년생)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수비수 자원 중에 보기 드문 왼발잡이라는 점도 큰 장점이다. 벌써 명문 레알 마드리드 등이 그를 주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모로코 돌풍의 가운데에는 미드필더 소피앙 암라바트(피오렌티나)가 있다. 모로코의 공격은 하킴 지예시(첼시), 아슈라프 하키미(파리생제르망) 등 간판 스타들이 주도하지만 암라바트가 중원에서 버텨준 덕이 적지 않다.
많은 활동량, 강한 몸싸움, 공격 전개 능력을 갖춘 암라바트는 월드컵에서 활약에 힘입어 빅클럽들과 연결되고 있다. 이미 월드컵 이전부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 리버풀(잉글랜드), 토트넘 홋스퍼(잉글랜드) 등이 관심을 보인다는 소식이 있었고 최근 활약으로 이적설은 짙어지는 중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