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은닉재산’ 들춰 지인들 구속 위기 몰리자…수사 속도조절 불가피 전망 속 김 씨 진술 바뀔지 주목
검찰은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남욱 변호사 등으로부터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의 개입 가능성을 진술로 확보하던 상황에서 또 다른 핵심 당사자인 김만배 씨가 진술에 협조적이지 않자 추가적인 여죄 수사를 진행하려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수사에 적지 않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검찰은 수사 속도를 늦추고 신중한 방식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김 씨의 입장 변화 가능성도 점쳐진다. 극단적인 선택의 배경이 검찰 추가 수사로부터 가까운 지인들을 지키고자 하는 심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검찰 수사 방향으로 진술 등이 변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
#‘김만배 은닉재산 수사’가 변수 됐나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12월 14일 오후 9시 53분 즈음,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소재 한 대학교 인근 도로에 주차된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김만배 씨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를 한 것은 김 씨의 변호인. 김 씨가 자해한 뒤 이 사실을 변호인에게 연락해 알렸고, 김 씨 변호인이 119를 부르면서 언론에 알려졌다.
최근 검찰의 수사가 김 씨에게 부담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부장검사 엄희준)는 김 씨가 대장동 사업에서 얻은 약 260억 원의 범죄수익을 숨기는 데 협조한 혐의로 화천대유 공동대표 이한성 씨와 화천대유 이사 겸 전 쌍방울 그룹 부회장 출신인 ‘헬멧남’ 최우향 씨를 13일 체포한 뒤 15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최 씨는 2021년 10월 서울구치소 앞에서 오토바이 헬멧 차림으로 김만배 씨를 데려간 인물이다.
검찰이 이들에게 적용한 혐의는 2021년 10월에서 2022년 7월 사이 김 씨 지시에 따라 대장동 사업으로 김 씨가 취득한 범죄수익을 수표로 인출해 보관하거나 허위 회계처리를 통해 차명으로 부동산을 매수하는 방법 등으로 260억 원 상당의 자금을 은닉한 것이다. 검찰은 대장동 사업으로 김 씨가 취득한 범죄수익 등에 대한 수사기관의 추징보전, 압류 등을 피하기 위해 은닉을 시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 씨와 최 씨를 소환조사 없이 압수수색과 동시에 체포하는 방식으로 신병을 확보했다.
#유동규, 남욱까지…불리한 정황 속 극단적 선택
최근 유동규 전 본부장과 남욱 변호사가 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상황에서 김만배 씨가 제대로 된 진술을 하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이뤄진 검찰의 수사 확대이기도 했다.
앞선 유동규 전 본부장은 KBS 인터뷰에서 “김만배 씨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 관리에 필요했던 인물”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검찰에 수사 협조하며 내놓은 진술도 일부 털어놨다. 2022년 10월부터 진술 태도를 바꾼 그는 김용 전 부원장에게 대선 자금을 건넸다는 등 폭로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 정진상 전 정무조정실장에게 세 차례의 명절 선물비를 준 것이 대해서도 “역시 이 대표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씨는 이와 상반되는 진술을 하고 있었다. 김 씨는 구속기간 만료로 풀려나기 전부터 “언론에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미리 선을 그었고, 검찰의 소환 조사에서도 수사에 소극적으로 임했다고 한다. 특히 전달된 정치자금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고, 화천대유 1호에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실 몫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유 전 본부장과 남욱 변호사의 진술과 다르게 “이재명 시장실 몫은 없다, 모두 내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는 후문이다.
원하는 진술을 얻지 못한 검찰이 은닉재산 수사로 수사 범위를 확대한 이유다. 심지어 검찰은 법무법인 태평양에 지급한 거액의 수임료도 은닉을 위한 김 씨의 전략이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압수수색 대상에는 법무법인 태평양도 당연히 포함됐는데, 김 씨가 태평양에 지급한 선임료는 수십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뿐 아니라 자신을 도와줬던 지인들까지 구속될 위기에 놓이자 김만배 씨가 미안한 마음 등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수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관계자는 “수사를 하다 보면 집중하기 위해 일부 혐의를 알면서도 모두 수사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거꾸로 핵심 관계자에 대한 수사에 진척이 없을 경우 여죄를 수사해 혐의 추가 및 피의자를 압박하는 효과를 노리기도 한다”며 “은닉 재산을 찾아 범죄수익으로 환수할 수 있다는 것을 통해 김 씨를 압박하려 한 목적도 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법조계에서는 ‘공여자’에 해당하는 남욱 변호사와 김만배 씨의 진술 일치가 중요한 것을 아는 검찰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평도 나온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현재 사건 흐름만 보면 뇌물을 주고 특혜를 받은 공여자 일당인 남욱 변호사와 김만배 씨의 진술은 일치하지 않고, 이를 받은 일당 역시 유동규 전 본부장과 정진상 실장, 김용 전 부원장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지 않느냐”며 “법원에서 판단할 때에는 받은 쪽은 아니라고 할 수 있어도, 준 쪽이 ‘왜 줬는지’를 설명하면 더 타당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공여자의 진술이 일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향후 수사 변수 되나
검찰은 수사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앞선 관계자는 “죄는 찾아내야 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수사를 해야 한다는 것은 특수 수사의 대원칙이기도 하다”며 “누군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수사팀 내부에서 속도 및 수사범위 조정을 고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씨를 향한 수사 속도가 늦어지면, 덩달아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소환하는 시기도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김 씨가 진술을 바꿀 가능성도 점쳐진다. 자신을 도와준 지인들이 본인 때문에 처벌받을 수 있다는 미안함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면 그들을 살리기 위해 ‘일부 수사 협조 카드’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정치인 관련 뇌물 사건을 수사한 경험이 있는 한 검사는 “수사에 협조할 경우 검찰은 불구속으로 수사를 하거나 기소 범위를 일부 조절하는 방식으로 수사 협조자들에게 나름의 호의를 베푼다”며 “수사팀 입장에서 지금 해야 할 것은 김만배 씨의 심경을 읽으며 수사 협조를 위해 ‘딜’을 하는 것”이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