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나 실력 아닌 관계와 기여에 치중된 시상…유튜브·OTT에 밀려 지상파는 장수 예능에 안주
방송인 김구라가 올해 지상파 3사의 연예대상 시상식을 두고 꺼낸 말이다.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들이 수년째 같은 포맷으로 방송 중인 데다, 신규 프로그램 론칭 시도까지 줄면서 최근 몇 년 동안 특정인 몇 명이 연예대상을 ‘돌아가며’ 수상하는 사태가 반복된 것에 대한 지적이다. 당장 12월 17일 SBS를 시작으로 24일 KBS, 29일 MBC가 올해 예능을 결산하는 연예대상 시상식을 열지만, 유력한 대상 후보를 꼽기는 어렵다. 케이블 채널과 유튜브, OTT 플랫폼이 쏟아내는 다양한 콘셉트의 예능에 밀려 화제성까지 놓친 지상파의 입장에서 연말 연예대상을 둘러싼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올해도 ‘나눠주기’ ‘몰아주기’ 반복되나
김구라는 최근 웹예능 ‘구라철’을 통해 올해 지상파의 연예대상을 전망했다. 1년 동안 예능계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김구라의 분석은 평소 냉철한 그의 성향대로 날카롭게 이뤄졌다. 김구라는 연예대상 시상식을 기획하는 “제작진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며 “있는 반찬(후보)을 갖고 어떻게 해보려니까 항상 밥상머리에서 걱정한다”고 밝혔다.
일면 제작진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김구라의 지적은 몇 년째 방송가에서 제기된 연예대상을 둘러싼 우려와 맞물린다. 새로운 기획의 프로그램,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지 못한 채 수년째 ‘정체’ 상태이기 때문이다. 10년 넘도록 절대적인 영향력으로 대상을 ‘독식’한 유재석을 중심으로 전현무, 신동엽 등 인물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유력한 대상 후보로 거론되는 상황이 이를 증명한다.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 없다보니 최근에는 연예대상을 ‘팀’에 수상하는 경우까지 늘었다. 2021년 SBS는 ‘미운 우리 새끼’ 출연진에 단체로 대상을 수여했다. MC 신동엽, 서장훈을 비롯해 이상민, 탁재훈, 임원희, 김종국, 박군의 단체 대상 수상이었다. 몇 년째 반복된 공정성 논란과 장수 예능 출연진에 대상을 나눠주거나 몰아주는 상황을 계속 지켜본 시청자들은 ‘미운 우리 새끼’ 단체 대상에 비난을 쏟아냈다.
이런 부정적인 분위기는 대상 수상자들이라고 해서 모르지 않는다. 지난해 신동엽은 수상소감을 통해 “누가 대상을 탈지 궁금해 하면서 지켜본 시청자들, 이 자리에 함께 계신 다른 분들에게 죄송하다”며 “다들 비슷한 생각일 텐데 ‘그냥 한 사람만 주지’ 그런 마음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체 대상 수상에 따른 우려를 의식한 발언이다. 신동엽은 이에 그치지 않고 “누구 한 사람만 주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제작진의 입장을 대변하는 설명이었지만, 이 발언은 연예대상이 ‘성과’나 ‘실력’이 아닌 ‘관계’나 ‘기여’에 더 치중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꼴이 됐다.
올해는 달라질까. 전망은 회의적이다. 올해 MBC 연예대상의 유력한 대상 후보로 꼽히는 주인공은 ‘나 혼자 산다’ 팀이다. 한동안 침체기를 겪은 ‘나 혼자 산다’는 올해 키, 코드쿤스트 등 새로운 출연진이 등장해 시청률 7%대에 안착했고, 화제성 면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전현무와 박나래의 활약에 힘입은 결과이지만 한 사람이 아닌 팀 전체가 대상을 받는다면 ‘기여도’에 치중한 시상이라는 비난에 다시 제기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현무의 단독 수상 가능성도 점쳐진다. 전현무는 올해 ‘무든램지’, ‘팜유’ 등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이면서 화제를 견인한 주역으로 꼽힌다.
SBS의 연예대상 후보는 신동엽과 유재석, 지석진, 김종국, 탁재훈, 이상민이다. 6명 중 4명은 지난해 ‘미운 우리 새끼’로 단체 대상을 수상한 인물들. 연예대상 수상 경력이 없는 사람은 지석진이 유일하다.
이와 관련해 김구라는 ‘구라철’을 통해 “SBS와 MBC는 유재석이 (연예대상을) 받는 해와 받지 않는 해로 나뉜다”고 분석했다. 방송가에서 유재석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인정한 결과이지만, 한편으론 그와 대적할 만한 인물이 등장하지 못하는 상황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구라가 밝힌 ‘공식’ 대로라면, 지난해 SBS 연예대상을 놓친 유재석이 올해 다시 왕좌를 차지할 가능성도 있다. 현실로 이뤄진다면 SBS에서만 7번째 대상 수상이다.
#연예대상 ‘기근’ 이유가 있다
매년 연예대상 시상식 시즌마다 ‘받는 사람만 받는다’, ‘후보가 없다’ 등의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는 예능에 대한 시청자의 선호가 케이블 채널과 유튜브 등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채널 선택권이 다양해지면서 수년째 같은 포맷을 유지하는 지상파 3사의 예능보다 새롭고 감각적인 프로그램에 눈을 돌리는 일은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올해 방송가를 대표하는 화제의 예능은 전부 케이블채널과 OTT 플랫폼에서 탄생했다. 연애 예능의 열풍을 지핀 ‘환승연애’(티빙)와 ‘나는 솔로’(SBS 플러스), ‘돌싱글즈3’(MBN)를 비롯해 ‘강철부대2’(채널A)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예능은 지상파는 시도하기 어려운 과감한 표현 수위까지 허용하면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시리즈화에도 성공했다.
유튜브에서도 예능의 움직임은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개그맨 김민경의 활약이 돋보이는 ‘오늘부터 운동뚱’, 이용진의 길바닥 토크쇼 ‘튀르키예즈 온 더 블록’, 걸그룹 르세라핌의 사쿠라가 최근 개설한 채널 ‘겁도 없꾸라’ 등이 최근 돋보이는 예능이다. 이에 더해 MZ세대가 TV를 통해 예능을 보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유튜브 예능의 영향력은 확장되고 있다.
반면 지상파 3사는 지금도 장수 예능에만 의존한다. KBS는 2007년 시작해 16년째 방송 중인 ‘1박2일’을 여전히 방송사 대표 예능으로 내세우고 있다. ‘불후의 명곡’도 햇수로 11년째, ‘슈퍼맨이 돌아왔다’ 역시 10년째 방송 중이다. 올해 야심차게 내놓은 신규 예능 ‘홍김동전’, ‘이별도 리콜이 되나요?’, ‘세컨하우스’, ‘배틀트립2’ 등은 뚜렷한 화제성을 끌어내지 못했다.
물론 장수 예능은 오랫동안 시청자와 소통해온 덕분에 시청률 면에서는 안정적이다. ‘1박2일’은 10%대, ‘불후의 명곡’은 8%대의 시청률을 유지하는 반면 ‘홍김동전’ 등 신규 예능은 2~3%대에 그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말 예능대상의 주인공들도 장수 예능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가 반복된다. 한때 방송가와 연예계의 트렌드를 결산하는 연말 축제로 인정받았던 연예대상이 케이블 채널과 유튜브, OTT 플랫폼의 활발한 기획력에 밀려 장수 예능에 안주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