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걱정 말라면서 애꿎은 담배만 피워대셨다. 어머니는 갓 태어난 막내부터 이제 초등학생인 큰애까지 4남매를 어떻게 건사해야 하냐며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어머니는 다른 건 몰라도 김장과 연탄은 한겨울이 되면 비싸지니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아버지께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그저 알아서 하신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셨다.
아버지의 ‘불면의 밤’은 길어졌다. 어머니는 날마다 한숨만 내쉬었다. 나와 형제들은 집안 가득 불안감이 커져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어떻게 마련하셨는지 혹독한 겨울을 견딜 준비를 해냈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갑자기 우리 집에 동네 아주머니 서너 분이 품앗이를 하듯이 배추를 절이고 무를 썰고 갖은 양념과 새우, 굴 등 재료를 준비하곤 자식 자랑, 남편 자랑을 하다가 결국은 남편 원망, 자식 푸념 등을 털어놓는 해방구(?)가 마련된 사실을 목도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학교 성적이 별로 좋지 않은 내가 이번에 3등 했다고(태어나서 한 번도 5등 안에 든 적이 없었다) 거짓말을 하셨고, 난 그저 갓 절인 배추에 속을 넣어 짭조름한 생김치를 맛보는 데 정신이 없었다.
한겨울 우리 여섯 식구를 따뜻하게 만들어줄 1000장의 연탄을 들여놓던 날, 아버지는 배달 일당을 아끼겠다며 슈퍼맨이 됐다. 직접 연탄 1000장을 다 운반해 놓으셨다. 연탄이 연탄광에 가득 찼다. 피곤에 전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정말 수고하셨다”며 막걸리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육, 그리고 생김치를 내놓으셨다.
아버지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생김치와 수육, 막걸리를 드셨다. 이내 코를 드르렁대며 잠에 드셨다. 어머니는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술상을 정리하시다가 결국 뜨거운 눈물을 쏟으셨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버지는 당신이 가장 아끼던 오토바이를 팔았다. 건재상을 하던 아버지는 한 달에 단 하루도 놀지 않았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일하다가 어쩌다 짬이 나면 한 달에 한 번이건 두 번이건 간에 오토바이를 탔다. 그게 아버지의 유일한 낙이었다. 열심히 일하는 자신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4남매가 혹독한 겨울을 나려면 아버지는 당신이 목숨과도 같이 아끼던 오토바이를 팔아야 했다. 그게 우리의 아버지였고, 어머니였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Pandemic·대유행)은 여러모로 전 국민에게 시련과 아픔을 안겨줬다. 유동성이 풀린 시장에 과도한 불안과 공포는 많은 20~30대에게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대출을 받고서 집을 마련하게 만들었다. 수백만의 자영업자도 이 방법 저 방법을 다 동원해서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많은 자금을 빌리게 되었다.
기업들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는 숙명을 가진 나라에서 수출은 반년 이상 내리막길을 겪고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리 인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겨줬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겨울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고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금도 너무나 힘든데 사람들은 내년이 훨씬 더, 아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경기침체와 불경기 인플레이션이 다가오고 있다고 연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정책 결정권자들과 정치인들은 대체 이 위기를 인식은 하고 있는 걸까. 5000만 가족들이 시베리아 혹한보다 더 혹독한 겨울을 맞이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리더들은 지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아직도 진영에 따라서 당리당략에 의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서 이 혹독하고도 참담한 겨울이 오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자신들의 주판알을 튕길 셈인가.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애지중지하는 오토바이를 팔 각오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오토바이는 영원히 팔지 않으면서 5000만 가족에게 더 인내하고 더 견디라고 강조할 것인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겨울이 오고 있는 걸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온 가족이 합심해서 이 겨울을 이겨내야 하고 모두 같이 힘을 모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5000만 가족들은 마음먹고 있다.
그런데 정책 결정권자들, 그리고 정치인들이 진심으로 가족을 건사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과연 김장은 할 수 있을까. 연탄은 들여 놓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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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