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자신을 탐색했다. 이것이 델포이 격언에 대한 가장 긍지 높은 해석이었다.”
‘나 자신’을 탐색하는 일, 그것은 세상을 향한 욕망으로 사랑을 좇고, 명예를 좇고, 돈을 좇을 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뜨거운 욕망이 그 온도만큼이나 큰 고통이 되어 ‘나’를 집어삼키는 지옥이었음을 알아채게 되는 때가 온다. 비로소 멈춰서 뒤돌아보며 ‘나’의 흔적을 관찰하는 차분한 관찰자가 되는 때, 그때 비로소 ‘나 자신’을 탐색하기에 이르는 것 같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나이는 지혜의 흔적이었다. 피땀을 흘리는 노력과 의지의 시간을 지나, 성취에의 강박을 버릴 수 있는 시간에 이르러서야 지혜가 비로소 깃든다는 것이다. 당신도 알지 않는지. 이를 악물고 살아가는 시간이 아니라 힘을 빼고 살아갈 수 있게 된 시간을. 그 평화로운 시간을 경험하면 ‘나’는 우주가 제기한 하나의 물음이라는 융의 철학에 동의하게 되는 것 같다.
자서전은 힘을 뺄 수 있는 시간에 이르러 지나온 자기와 대화하는 장르로서 권장될 일이다. 내가 본 최고의 자서전은 융의 자서전이다. 1944년, 69세에 죽음의 그림자를 경험하면서 융은 자기 삶을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그가 본 세상의 비밀을 조심스럽게 풀어놓은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그의 자서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원로 법조인인 이진강 선생은 얼마 전 한땀한땀 써내려간 자서전 ‘80년 한결같이’를 냈다. 그는 과로로 쓰러진 후의 5년의 투병생활이 생의 변곡점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그 친구가 5년 동안 나로 하여금 욕심을 버리고 평상심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어디론가 가버렸다.”
몸과 마음의 깨진 균형을 회복하는 그 5년은 시간낭비가 아니라 마음공부를 하는 시간, 세상에 온 이유를 찾아가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나구치 마사하루의 ‘생명의 실상’을 읽으며 몸의 치유능력을 공부했고, 천수경을 읽으며 울화에 실체가 없음을 체험했고, ‘어린왕자’를 읽으며 순수의 정화능력을 믿게 되었단다. 무엇보다도 언제나 곁을 지키고 있는 지혜로운 아내와의 관계를 통해 세상을 움직이는 사랑의 힘을 배웠단다.
그 힘으로 그는 대한변협 회장, 양형위원장 등 공적 활동을 했는데 변협 회장을 하면서 사건수임을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운 일화는 유명하다. 공인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알았고, 그런 힘으로 사회의 어른이 된 것이다.
올해 책이 나온 법조인이 또 있다. ‘고봉 김이수 헌법재판관 고희 기념 헌정논문집’이라는 부제가 달린 ‘헌법과 양심의 길을 따라’의 주인공 김이수 선생이다. 주변에서는 그를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한다.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 해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생각 없이 편견과 상식을 옹호해온 법조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법조계에서 ‘미스터 소수의견’이었다. 미처 법의 손길이 닿지 않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소수자들을 위한 판결을 많이 내린 까닭이다. 그는 올곧았고 뚝심이 있었다.
남들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대로 행동하면 무리는 없다. 그러나 거기엔 ‘나’의 삶이라고 할 것도 없다. 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했을까. 좁은 문의 길, 소수의견의 길은 대세 혹은 상식에 무조건 딴죽을 걸고 반기를 들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지금 여기에 던져진 고유한 이유를 찾아내라는 뜻인 것은 아닐까.
사회가 규정하는 성공·실패와 관계없이 살아온 이유, 살아낸 이유, 살아갈 이유, 그 고유한 이유를 발견하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영혼의 노래일 테니.
생은 긴 여행이다. 지구별 여행자인 당신은 여기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가. 당신이 부르고 있는 당신만의 노래는 어떤 것인가.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