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한 둘째 설움’ 보여주며 호감과 공감 이끌어내…“시즌2 만들어진다면? ‘재벌집 둘째아들’로 가야죠^^”
“결말은 동기 입장에서 봤을 때 당연히 아쉬웠죠. ‘동기가 이렇게 가는구나’ 싶더라니까요(웃음). 죽은 건 아니지만 감옥도 갔다 오고, 그렇게 세월이 지나면서 모든 걸 내려놔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한편으론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겠죠. 드라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게 바로 그런 이야기겠구나 싶었거든요. 결국 순양은 진양철 회장님이 자식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였기 때문에 순양의 미래를 위한 좋은 결과였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만일 시즌 2가 만들어진다면? 동기가 과거로 가야죠, ‘재벌집 둘째아들’로(웃음).”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조한철이 맡은 진동기는 계산이 빠른 '눈치와 잔머리의 대가'로 묘사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장자인 형을 넘어서 인정받을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치는 인물이다. 아버지 진양철(이성민 분)이 장자 승계 원칙을 깨고 형제들의 자유로운 경쟁 판을 벌여놨어도 형은커녕 조카인 진도준(송중기 분)에도 미치지 못해 늘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편으로 그런 진동기의 아등바등은 실제 형제 관계에서 둘째를 맡고 있는 시청자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재벌이라는 점만 제외한다면 어느 둘째들이나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큼 공감대가 형성된 덕이었다. 조한철 역시 진동기의 특징 중 형과 동생 사이에 낀 ‘샌드위치 자식’이라는 점에 포커스를 두고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캐릭터를 생각할 때 저는 대본 안에서 딱 꽂히는 힌트를 찾으려 노력해요. 동기의 경우는 삼남매의 둘째라는 것에 꽂혔죠. ‘재벌집 막내아들’ 대본을 받기 전 유튜브에서 첫째와 둘째, 셋째를 비교한 영상을 본 적이 있어요. 한 박사님이 분석하시기를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경쟁 상태에 놓이기 때문에 자존감이 낮고 눈치를 많이 보며, 칭찬을 많이 해줘야 하는 성격이래요. 재벌이라고 해서 이런 부분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진동기의 ‘둘째’ 성격을 그렇게 잘 그려나가려고 했죠(웃음).”
한때는 진양철이 후계자로서의 자질을 인정할 만큼 뛰어난 투자 선구안과 위기 극복 능력을 보여줬지만, 그럼에도 매사 모자란 마무리 탓에 아버지를 실망시켰다.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그의 부족한 뒷심을 다른 힘으로 채워 넣게 했는데 극 중에선 그것이 사주에 의존하게 되는 계기로 표현된다. 의존을 넘어서 거의 맹신하다시피 하는 캐릭터와 달리 정작 연기한 본인은 “일단 (사주) 이야기를 들으면 귀가 팔랑거려서 신경 쓸 게 빤하기 때문에 누가 말해주려고 하면 도망다닌다”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사주풀이를 봐도 좋은 것만 믿고 나쁜 건 안 믿는다는데 전 그게 안 되는 사람이거든요. 귀가 엄청 팔랑거리는 스타일이라(웃음). 동기의 경우는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지만 사주에 엄청나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요. 아버지께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제 나름대로 공부도 하고, 잘난 척도 해보지만 결국 인정받지 못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사주와 주술에 의존하고, 백 상무한테도 의존하고 그렇게 되는 거죠(웃음).”
이렇게 아버지로부터 외면받은 진동기의 울분은 10부에서 방영된 정심재 신에서 폭발하게 된다. 진도준의 뒷배로 아버지인 진양철이 있다고 판단한 진동기가 술에 취해 야밤에 정심재를 찾은 뒤, 아버지를 향해 주정을 부리는 신이다. 분노와 억울함, 서운함, 자괴감 같은 다양한 감정을 짧은 시간 안에 보여줘야 하다 보니 무엇보다 그 신과 프레임을 홀로 장악하고 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는 게 조한철의 이야기다.
“처음에 동기가 정심재 안으로 들어가면서 집사, 큰형과 말을 주고받은 뒤 ‘내가 오늘 이 노인네하고 끝장을 본다’고 말하는 것까지가 다 애드리브였어요. 그렇게 빌드업을 시켜놓고 아버지한테 모든 울분을 다 터뜨려내면서 처절하게 공격하려고 했죠. 그런데 리허설 때 성민이 형이 2층에서 팍 튀어나와서 소리를 버럭 지르는 거예요. 그 기세에 계단을 올라가다가 자연스럽게 주춤하면서 내려오게 되더라고요(웃음). 그 느낌대로 연기했더니 아버지에 대한 공격보단 ‘나를 좀 알아주세요’라는 한으로 바뀌었던 것 같아요.”
이성민과 함께 한 신마다 그의 연기에 혀를 내둘렀다는 조한철은 사실 촬영 초반엔 걱정이 앞섰다고 털어놨다. 순양가의 1세대와 2세대, 3세대를 연기한 배우들 간의 나이 차가 그다지 많이 나지 않았기에 ‘도대체 어떻게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을지’부터 고민해야 했다고. 그 말대로 아버지 진양철 역의 이성민은 54세로 조한철보다 고작 다섯 살 위였고, 큰형 진영기 역의 윤제문(52)과도 두 살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심지어 어머니인 이필옥 여사 역의 김현(51)은 큰아들보다도 어렸다.
배우들로만 따진다면 족보가 꼬일 대로 꼬인 상황이니, 시청자들에게도 이 부분이 거슬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수용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다. 그러나 조한철은 일단 첫 촬영에 들어가자마자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이미 모든 배우들은 완벽하게 순양가의 사람이 된 상태였던 것이다.
“처음엔 배우 분들을 봤을 때 ‘이분들이 대체 어떻게 나이 든 역할을 할까’ 하고 걱정했거든요. 성민이 형이 아버진데 제문이 형이 아들이야, 그런데 저도 아들이고…이게 되나(웃음)? 그런데 다들 너무 완벽하게 역할이 돼 오셔서 너무 신나더라고요. 사실 영상 매체에서 젊은 사람들이 노인 역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연기는 할 수 있어도 시청자들을 믿게 만드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연극에선 허리만 구부려도 관객분들이 ‘할아버지를 연기하는구나, 내가 믿어줄게’ 하시지만 시청자분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으셔서(웃음). 그런데 성민이 형은 그걸 믿음직스럽게 해내시더라고요. 정말 완벽한 캐릭터라이징이었어요.”
다른 배우들의 칭찬이 앞서긴 했지만 조한철 역시 다작을 하면서도 매 작품 속 캐릭터로 완벽히 변신한다는 호평을 받아 왔다. 1998년 연극 ‘원룸’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00년부터는 스크린, 2009년부터는 드라마로 무대를 넓혀가며 다양한 모습으로 업계인은 물론, 대중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번 ‘재벌집 막내아들’의 인기를 발판으로 좀 더 넓은 무대에서 배우 조한철을 계속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어디서 나타나든 처음부터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었을 것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를, 어떤 작품에서든 발견해낼 수 있다는 것은 대중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 될 터다.
“저는 아마 2023년에도 살아오던 대로 살 것 같아요. 특별히 뭔가를 의도한다는 게 또 스트레스니까요(웃음). 제 어렸을 때부터 꿈이, 놀이터 같은 데서 소주를 한잔해도 거기 계속 있었던 사람 같고, 호텔에 가서 와인을 한 잔 해도 또 맨날 거기 있는 사람 같은 그런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는 거였어요. 티 나지 않고, 도드라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기뿐 아니라 삶에서도 그런 모토를 가지고 애쓰지 않으면서 거스르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요. 2023년에도, 그 후에도 저는 ‘재벌집 막내아들’과 전작에서 그랬듯 작품에 기울인 노력만큼 또 노력할 거고 그렇게 그냥 살아가면 될 것 같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