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골리앗 징크스’ 안철수 ‘단일화 징크스’ 회자…대통령실과 보조 맞추는 당 대표 유리할 전망
이에 맞서는 후보는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안철수 의원이다. 나 부위원장은 높은 인지도를 앞세워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지만 대통령실과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안철수 의원은 ‘중도 역할론’을 부각하며 당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나 부위원장과 안 의원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정가 일각에선 과거 둘의 징크스가 재조명되고 있다.
1월 10일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나 부위원장은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통해 “대통령께 심려를 끼쳐드렸으므로 사의를 표명한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 부위원장 사의 표명은 당권 레이스 참전을 알리는 출사표라는 반응이다.
나 부위원장은 최근 대통령실과 마찰을 빚으며 신경전을 벌였다. 나 부위원장이 1월 5일 ‘출산 시 부채 탕감 검토’ 발언을 하자 대통령실이 이튿날 즉각 선긋기에 나섰다.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윤석열 정부 관련 정책기조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면서 나 부위원장 발언은 개인의 의견일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1월 9일엔 안철수 의원이 당권 레이스 합류를 선언했다. 안 의원은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을 통해 “민심과 당심을 믿고 담대한 도전에 나선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에 기대는 대표가 아니라 윤 대통령에게 힘이 되는 대표가 되기 위해 출마한다”고 밝혔다. 안 의원은 “윤 대통령과 대선 당시 단일화를 했고,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장이었다”면서 “윤 대통령의 연대보증인, 아니 운명공동체다. 윤 대통령이 실패하면 안철수의 정치적 미래는 없다”고 했다.
김기현 의원은 새해가 밝기 전 이미 당대표 출사표를 던진 바 있다. 2022년 12월 27일 김 의원은 “신적폐를 청산하고 대한민국을 정상화시키려면 2024년 총선 압승이 필요하다”면서 “그 일에 누구보다도 내가 적임자”라고 밝혔다. 여권 내부에선 김 의원 당권 레이스를 지원하는 ‘서포터’로 친윤 핵심 장제원 의원을 꼽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른바 ‘김장연대’다.
1월 5일엔 또 다른 친윤 핵심 권성동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친윤 내부 교통정리가 마무리된 것이란 분위기가 팽배하다. 유승민 전 의원 또한 전당대회 출마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상황에서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친윤 대 비윤’ 구도로 펼쳐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출마 선언을 하지 않은 거물급들의 참전 여부에 따라 당대표 선거가 결선투표까지 이어지는 접전양상으로 전개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뉴시스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국민리서치그룹·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2022년 12월 27일부터 29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국민의힘 지지자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적합도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무선 임의전화걸기 100% 자동응답방식, 응답률 1.0%)에 따르면 나경원 부위원장이 30.8% 지지를 받아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안철수 의원으로 20.3% 응답률을 보였다. 3위는 김기현 의원이었다. 15.2%가 김 의원이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로 적합하다고 응답했다. 주호영 전 원내대표(8.1%), 유승민 전 의원(6.9%),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6.0%), 조경태 의원(2.9%), 권성동 의원(2.0%), 윤상현 의원(1.0%)이 그 뒤를 이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2023년 새해가 밝자마자 여권에선 나 부위원장과 대통령실의 신경전, 권성동 의원 불출마 선언 이후 ‘친윤 교통정리론’ 등의 변수가 잇따랐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일요신문에 “연초부터 당 내부에서 각종 이슈가 불거지면서 오락가락하는 분위기”라면서 “지금 여기저기서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와 별개로 전당대회가 가까워질수록 ‘윤심’의 존재감이 당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 가운데 여권 내에선 스타성을 갖춘 거물급 양강 주자들의 징크스가 회자되고 있다. 먼저 나경원 부위원장은 최근 각종 당내 선거에서 ‘골리앗 징크스’에 시달린 바 있다. 뚜껑을 열기 전까지 가장 우세한 위치를 점한 것으로 보이다 뚜껑을 연 뒤 이변의 희생양이 된 까닭이다. 나 부위원장은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경선에서 ‘대세론’ 주인공으로 떠올랐지만, 결과는 예측과 달랐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깜짝 승리를 거뒀다. 나 부위원장은 출사표를 다시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나 부위원장은 2021년 6월 11일 열린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에 나섰다. 당시에도 나 부위원장은 지지율 1위로 당권 레이스에 돌입했다. 그러나 전당대회 국면이 본격화하면서 ‘이준석 돌풍’이 불었고, 나 부위원장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당대회 뚜껑을 열어보니 돌풍은 태풍이 됐다. 나 부위원장은 당원투표에선 1위를 차지했지만, 여론조사에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에 더블스코어로 패했다. 다시 당내 선거에서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안철수 의원은 정치인생 내내 자신을 따라다니던 ‘단일화 징크스’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여권 내부 관계자는 “안 의원은 이번에도 단일화로 승부의 흐름을 바꿔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면서 “지금은 윤상현 의원과 ‘수도권 통합론’ 깃발 아래 물밑 단일화 논의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에 ‘윤심’을 등에 업은 김기현 후보와 단일화가 성사될지 여부에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안 의원은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본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단일화를 했다. 제20대 대선에선 윤석열 대통령과 단일화를 했다. 앞서 안 의원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2012년 대선 때 단일화에 나섰다가 쓴잔을 마셨다.
안 의원은 이번 전당대회에선 ‘중도 확장성’을 명분 삼아 이전보다 빠른 스텝을 밟으며 당권 레이스 합종연횡을 주도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당 내부에선 안 의원이 제20대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단일화를 선언한 것 자체가 이번 전당대회를 노린 포석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런 만큼 안 의원이 과거와 다른 패턴의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전대 막판 다시 단일화에 나설 것이란 관측 또한 만만치 않다.
현재로서 ‘윤심’에 가장 가까운 당권주자로 분류되는 김기현 의원은 세 확장에 전념하며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1월 9일 여의도 대산빌딩에서 당대표 선거캠프 개소식을 열었다. 개소식에 참석한 한 여권 인사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면서 “표면적인 지지율과 별개로 당 내부적으로 세 확장 속도가 굉장히 빠른 것을 느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개소식에서 김 의원은 ‘이심’을 등에 업기도 했다. 2022년 12월 27일 특별사면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김 의원에게 축전을 보냈다. 이 전 대통령은 “김 의원은 당이 어려운 시기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맡아 1년간 당을 이끌면서 정권 교체에 큰 역할을 했다”면서 “당대표로서 능력과 자질은 이미 검증됐다”는 공개 지지 메시지를 전했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이번 당대표 선거는 결국 자기 역량과 지지 세력의 함수 관계를 증명해 나가는 과정일 것”이라고 짚었다. 채 교수는 “이번 전당대회의 경우 경쟁을 하는 상황적 배경이 지난 전당대회와는 사뭇 다르다”면서 “국민의힘이 야당이던 시절엔 ‘개인 역량’이나 ‘지지세’에 초점이 맞춰진 반면, 여당이 된 지금은 대통령실과 보조를 맞출 수 있는 당대표가 필요한 국면”이라고 했다.
채 교수는 “나경원 부위원장의 경우 지난 몇 차례 경쟁에서 약점으로 부각된 ‘본선 경쟁력’을 보강해야 할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실과 마찰을 빚으며 이번에도 비토 기류 중심에 서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정권교체를 해야 하는 당대표와 대통령실에 힘을 싣는 당대표에게 요구되는 사항은 다르다”면서 “아무래도 개인 역량보다는 지지세력에 힘이 실리는 형국인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원하는 그림이 현실로 반영이 될지 여부가 최대 관전 포인트”라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