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때처럼 선 조사 후 조치 고수…군 부실 대응과 해명 번복에 대해 실망감 역력
“(북한 무인기 용산 침범 때) 수방사와 국방부가 따로 놀았다. 이미 전 정권부터 안보 기강이 엉망이었던 게 드러났을 뿐이다. 인사 조치까진 따로 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실 한 관계자가 북한 무인기 침범 후 빚어진 논란에 대해 전한 말이다.
대통령실은 북한 무인기 침범 사태를 두고 문책보다는 군 자체 조사를 먼저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앞서의 대통령실 관계자는 “조사, 감찰을 통해 이번 대응 실패의 허점을 찾는 게 1번이고, 이후 안보 대비 태세를 재확립해야 한다”며 “무작정 인사 조치에 나서는 건 북한이 원하는 일을 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 인사 스타일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태원 참사 때 이상민 행안부 장관 거취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지만 선 조사 후 조치를 고수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얘기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도 “이상민 장관 책임론이 계속 거론되고 있는데, 아무래도 (인사 조치는) 부담스럽지 않겠느냐”며 “신년 개각설도 없다고 했고, (윤 대통령) 성격상 나서지 않을 것 같다”라고 했다.
다만 무인기 침범 당시 군 대응 등을 바라보는 대통령실 내부 시선은 곱지 않다. 문제의식도 확연하게 감지된다. 특히 군의 해명 번복 등을 두고 윤 대통령이 크게 실망했다는 후문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북한의 무인기 테러 등에 대한 대응이 부족했다는 입장과는 별개로 군 내부 기강 해이를 심각한 수준으로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군은 무인기 침범 후 해명 번복으로 도마에 오른 상태다. 당국은 2022년 12월 26일 북한 무인기 5대가 대통령 경호구역을 위해 설정된 비행금지구역(P-73)을 침범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P-73은 용산 대통령실과 국방부 청사를 중심으로 반지름 3.7km가량 원 모양으로 그어놓은 구역이다. 하지만 군비태세점검 결과 북한 무인기 한 대가 P-73 북쪽을 스쳐 간 것으로 나타났다.
군 당국은 무인기 침범 때 부실 대응으로도 비판을 받았다. 무인기가 서울 영공을 돌아다니고 있는데도 합동참모본부와 수방사 등의 정보 교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대비 태세인 ‘두루미’ 발령까지는 1시간 반 이상이 걸렸다.
1월 11일 합동참모본부 등에 따르면 서부전선을 맡은 육군 1군단이 북한 소형 무인기 항적을 최초 포착한 시점은 12월 26일 오전 10시 19분이다. 군은 6분 후인 10시 25분 이를 북한 소형 무인기로 식별했다. 이를 보고 받은 합참은 대응 작전을 지시했다.
같은 시간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는 이 사실을 공유 받지 못했다. 합참과 1군단이 북한 소형 무인기 침범 상황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방사는 오전 10시 50분 수상한 항적을 포착했고, 30분 후 북한 소형 무인기로 판명했다. 그 사이 북한 소형 무인기는 20여 분을 더 날아 서울 상공을 누비고 다녔다.
수방사는 이를 합참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무인기 대응 작전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았다. 군 당국 북한 무인기 식별(10시 25분) 이후 1시간 2분이 지난 오전 11시 27분이었다. 북한 무인기를 놓고 합참과 수방사, 1군단 등이 제각각의 방공 체계를 운영한 셈이다. 이로 인해 대응이 늦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날 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야당은 이 사안을 ‘안보 참사’로 규정하며 대통령실과 여당을 압박 중이다. 민주당에선 대통령실 용산 이전으로 안보 공백이 생긴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에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에 책임을 돌렸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월 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하루아침에 (무인기 침투) 대비책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스템을 구축하고 우리의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수년이 걸리는데, 집권한 지 7~8개월밖에 안 된 이 정부가 대비할 방법은 없었다”며 “대부분 책임은 문재인 정권에서 (안보를) 소홀히 한 것에 있다”고 했다.
4성 장군 출신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12월 29일 “(12월 28일) 합참에서 보고한 비행궤적을 보니까 저기 은평구, 종로, 동대문구, 그다음에 광진구, 남산 일대까지 이렇게 왔다 간 것 같다”면서 “용산으로부터 반경 3.7km가 비행금지 구역이다. 그 안을 통과했을 확률이 많다”고 최초로 의혹을 제기했다.
군은 추가 조사 등을 거쳐 1월 2일 ‘비행금지구역에 나타난 항적의 정체가 북 무인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합참의장에게 보고했다. 그 후 1월 4일 윤 대통령 보고를 거쳐 1월 5일 언론에 공개했다. 결론적으론 김병주 의원 주장이 맞았던 셈이다.
이를 두고 여당 내부에서는 북한 내통설을 주장하며 색깔론으로 공세를 폈다. 국방위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은 “민주당이 우리 군보다 북 무인기 항적을 먼저 알았다면, 이는 민주당이 북한과 내통하고 있다고 자백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김병주 의원은 “당시 합동참모본부로부터 받은 비행궤적을 확대해 P-73을 대입한 결과 비행궤적이 P-73에 인접했기 때문에 침범 가능성을 제기했다”면서 “당시 합참이 제공한 항적 지도는 완벽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미추적 흔적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P-73 안으로 더 내려오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은 무인기 침범 당시 상황 전반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허점과 보완점을 파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월 10일 주요 지휘관들을 소집해 긴급회의를 열기도 했다. 모든 작전부대 지휘관 및 참모 등과 북한의 도발 등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군에서 엄중하게 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추후 그 결과에 따른 군 인사 조치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