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부종은 사망원인 될 수 없다’ 서울대 법의학교실 지적…김형진 측 상해치사죄 주장 여지 생겨
최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에서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 적힌 내용이다. 이 의견서는 ‘파타야 살인사건’으로 불리는, 2015년 태국 방콕에서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던 김형진 씨가 컴퓨터 프로그래머 임 아무개 씨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는 재판에 제출됐다. 이 의견서로 인해 재판 결과가 바뀔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형진은 2015년 3월부터 태국 방콕 수쿰빗에서 오피스텔 여러 채를 빌려 ‘힐링캠프’라는 도박 사이트를 운영했다. 힐링캠프를 두고 일어난 파타야 살인사건은 2015년 11월 태국 파타야 고급 리조트에서 김형진과 공범 윤명균이 자신들이 고용한 컴퓨터 프로그래머 임 씨를 여러 차례 폭행해 사망케 했다는 의혹을 받는 사건이다. 특히 김형진이 둔기로 임 씨 머리를 내리쳐 두개골 함몰로 사망케 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내용의 의견서가 최근 법원에 제출됐다.
현재 이 사건은 두 개로 갈라져 있다. 2015년 11월 21일 공범 윤명균은 임 씨가 죽고 태국 파타야 경찰서에 자수한 뒤 구속 상태로 태국 파타야 지방법원에서 재판 받았고, 2016년 10월 5일 같은 법원에서 피해자 살해와 마약 복용 등에서 유죄가 인정돼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윤명균은 약 5년 정도 태국에서 형을 살다 가석방돼 한국으로 송환됐고, 외국에서 처벌받은 죄도 한국에서 처벌할 수 있기 때문에 살인 혐의로 한국에서 다시 재판을 받고 있다.
김형진은 2018년 3월 14일 베트남 부온마투옷시에 있는 식당에서 현지 경찰에 체포돼 2018년 4월 5일 국내로 송환됐다. 김형진은 2019년 9월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임 씨를 감금하고 폭행한 것에 대해 4년 6월을 선고받고 2019년 12월 12일 판결이 확정됐다. 이후 2021년 2월 8일에는 다시 임 씨 살인과 사체 유기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이 기소한 살인 혐의는 ‘김형진이 파타야로 가는 동안 임 씨를 야구방망이나 목검과 같은 길고 단단한 물체로 머리 부위 등을 때려 숨지게 한 뒤 파타야의 한 리조트 주차장에 방치했다’면서 ‘피해자를 외부 충격으로 인한 머리부위 손상(뇌부종 등)으로 사망하게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공개된 파타야 살인사건 관련 CC(폐쇄회로)TV에도 사망한 임 씨가 머리에 심한 폭행을 당한 듯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1심에서도 김형진 씨가 살인했다는 결정적 증거로 피해자 임 씨의 뇌부종을 지적했다. 그런데 태국 국립경찰병원 법의학과에서 피해자 임 씨에 대해 작성한 부검 결과서 번역본에는 ‘두개골은 정상’, ‘뇌가 부어 있는 형태’라고 적혀 있다. 검찰 기소 내용이 흔들릴 수 있는 내용의 부검 결과서다.
이번에 제시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의견서의 핵심은 뇌부종은 사망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의견서는 먼저 ‘부검 관련 기록은 자세하지 않으며 여러 의학적 설명이 변사자 상황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전제했다.
임 씨 뇌부종에 관해 의견서에 따르면 ‘외력으로 머리 손상이 날 경우 힘이 머리 밖에서 안쪽으로 전달이 되면서 상당 부분 외력은 흡수되고, 한계를 넘었을 때 의미 있는 손상으로 이어지곤 한다’면서 ‘(태국 감정서 등 자료에 따르면) 골절, 출혈, 뇌좌상 등 위중한 손상이 발생했음을 시사하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이런 결과는 가장 중요한 기록인 태국 감정서에 ‘두개골은 정상’이란 단어 때문에 나온 것 때문으로 보인다.
서울대학교 법의학교실에서는 ‘뇌부종은 구체적인 진단명이 아니며, 일종의 상태를 설명하는 단어다’라고 적었다. 이는 사람이 죽으면 뇌가 붓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검찰 측에서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공소장 변경 등 조치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재판 공판 중 김형진 측 변호인은 의견서를 받아보고 ‘공소장을 변경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이에 검찰 측에서는 ‘머리부위 손상(뇌부종 등)으로 사망하게 하였다’는 게 포괄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변경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피해자 사망 원인을 두고 현재까지도 의견이 갈리는 가장 큰 이유는 임 씨의 태국 부검 감정서가 너무 허술하기 때문이다. 보통 국내 부검지는 부검 내용과 각종 수치 등이 수십 장에 걸쳐 적혀 있고, 각 부검 단계마다 사진을 찍어 보충한다. 이에 따라 다른 사람이 부검지를 봐도 판단할 자료가 충분하다. 그런데 이번 태국 부검지는 서너 장 분량으로 중요한 사진도 없고 약식으로 기재돼 있다고 알려졌다. 게다가 이를 태국어 번역본으로 보다 보니 검찰과 재판부에서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던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의견서는 사인에 대해 “개인 의견’임을 전제하면서 ‘일부 확인할 수 있는 사진에서는 임 씨 신체 여러 부위에 가해진 손상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이런 손상 하나만으로 사망을 직접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위중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런 손상 상태에서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면서 ‘치명적인 손상을 동반하면서 비교적 짧은 시간에 발생했다기보다는, 일정한 과정을 거치면서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이에 따라 김형진 측에서 상해치사를 주장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김형진은 1심 재판에서 살인과 사체 유기가 인정돼 17년 형을 선고받았다. 상해치사죄와 살인죄를 가르는 기준은 ‘살인하려는 고의’가 인정되는지 여부다. 사람을 죽이려는 적극적인 고의, 또는 적어도 ‘죽을 수도 있지만 상관없다’ 정도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야 살인죄가 성립한다. 그런데 ‘뇌부종은 사망 원인이 아니’라는 의견서를 받았기 때문에 상해치사죄를 주장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됐다.
실제로 김형진 측은 ‘머리를 둔기로 때려 죽인 게 아니기 때문에 살인이 아닌 최소한 상해치사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다만 1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2심 재판부 역시 ‘뇌부종이 아니더라도 피해자가 머리를 때렸던 일이 다수의 갈비뼈 골절 등과 복합적으로 작용해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고 판결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번 의견서는 김형진이 빠져나갈 약간의 구멍을 만들어 줬다고 볼 수 있다.
김형진은 의견서에 나온 메스암페타민이 임 씨 사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의견서에는 ‘변사자 소변에서 메스암페타민 등이 검출됐는데, 이는 독자적으로 사망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인데 관련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고 적혀 있다.
김형진 측 변호사에 따르면 “김형진은 ‘임 씨가 죽기 전 파타야에서 사람들이 프리베이스(물담배처럼 필로폰을 흡입하는 방식)를 많이 했다. 임 씨가 그 물을 마신 걸 본 것 같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임 씨가 마약을 하던 사람이 아닌데 메스암페타민이 검출된 게 그 증거’라고 말한다”면서 “김형진은 ‘메스암페타민이 프리베이스를 하는 그 물에 얼마나 많이 축적됐겠냐. 그 물을 마시고 죽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2015년 발생했던 파타야 살인사건 관련 재판은 속속 끝이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김형진 2심 선고는 곧 나올 전망이다. 김형진 구속 만기가 2023년 4월이기 때문에 그 전에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공범 윤명균 재판도 최근 속도를 내고 있다고 전해진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