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차경은 이하늬여야만 했다” 133분 러닝타임 꽉 채운 압도적 존재감
오는 18일 개봉하는 스파이 액션 영화 '유령'은 1933년 경성, 조선총독부에 항일조직이 심어놓은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받으며 외딴 호텔에 갇힌 용의자들이 의심을 뚫고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진짜 '유령'의 멈출 수 없는 작전을 그린다. 중국 소설 '풍성'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에서 이하늬는 총독부 통신과 암호 전문 기록 담당 박차경 역을 맡아 깊이 있는 내면 연기와 더불어 역대급 액션 연기까지 선보이며 눈길을 끌었다.
'유령'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유령'을 색출하기 위한 함정수사를 지휘하며 박차경을 비롯한 용의자들을 거세게 압박해 나가는 경호대장 다카하라 카이토(박해수 분)와 그런 그보다 먼저 '유령'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조선인 혼혈의 통신과 감독관 무라야마 준지(설경구 분)의 대립이 주가 되는 전반부 호텔에서의 추리 시퀀스, 그리고 호텔에서 벗어난 뒤 본격적으로 맞붙게 되는 박차경과 무라야마 준지의 후반부 액션 시퀀스가 각 이야기의 중심이다. 특히 박차경과 무라야마 준지는 전반부 호텔 내에서도 한 차례 거세게 맞붙는 만큼 이하늬는 사실상 러닝타임 내내 강도 높은 액션을 소화해 내야 하는 셈이었다.
그와 함께 주먹(?)을 맞댔던 설경구는 인터뷰를 통해 "박차경과의 싸움은 여성과 남성의 싸움이 아닌 그냥 '캐릭터와의 싸움'처럼 보였다. 그만큼 이하늬 씨가 정말 강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이하늬는 대역을 써야 할 정도로 위험한 장면도 끝까지 자신이 할 것을 고집했다고. 덕분에 이하늬의 액션 신은 그의 내면 연기와 더불어 어느 하나 빠지는 곳 없이 완벽하게 완성됐다.
앞서 이해영 감독은 "이하늬가 '유령'의 첫 시작이다. 백지에 이하늬라는 점을 찍었더니 '유령'이 됐다"고 말해 이하늬의 연기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을 더욱 높인 바 있다. 그의 말대로 '유령'에서 이하늬는 박차경으로서 이야기의 중심에 단단하게 말뚝을 박아 흩어지기 쉬운 관객들의 시선을 마지막까지 집중시킨다. 추리와 액션으로 나뉘어 자칫하면 완전히 동떨어질 수 있는 전반부와 후반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 역시 이하늬의 존재가 큰 몫을 하고 있기 때문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하늬가 중심이 되는 여성들의 연대도 '유령'에서 주목할 만한 특별한 점이다. 뜨거운 내면을 간직하고 있지만 냉철하고 침착한 가면을 쓸 수밖에 없었던 박차경이 난영(이솜 분)으로 시작해 유리코(박소담 분)처럼 자신과 다른 듯하면서도 닮은 여성들을 만나 함께 강하고 단단한 연대를 이뤄나가는 것은 '유령'을 보는 관객들에게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한편으로, 이 여성들에겐 시대적 배경이나 이에 따른 각종 장치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장르가 보통 그래왔던 것과 달리 '불필요한 성적 폭력'이 가해지지 않는다는 또 다른 특이점도 눈에 띈다. 연대를 이뤄낸 캐릭터들이 여성이란 틀 안에만 갇히지 않고 인물 그 자체로 접근되고 분석될 수 있도록 한 셈이다. 박차경과 무라야마의 액션 신이 성별의 대결이 아니라 그저 두 인간의 대결로만 보이는 것 역시 이해영 감독의 이 같은 안배에서 출발한다. 이처럼 '불편하지 않은' 캐릭터들에 배우들의 몸 사리지 않는 열연까지 합쳐졌으니 이 영화, 봐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치지 않을까. 133분, 15세 이상 관람가. 18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