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 지연 사태 속출로 피해 불가피…“계약 해지 시 위약금 청구, 입주 시 지체상금 받을 수 있어”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는 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재건축 사업을 통해 조성되는 단지로 지하 4층~지상 35층, 23개 동, 전용면적 46~234㎡ 총 2990가구 규모의 대단지로 분양 당시 3.3㎡당 5669만 원이라는 역대 최고 분양가로 화제를 불러 모은 곳이다.
최근 래미안원베일리 시공사 삼성물산은 조합에 ‘공사기간 2개월 연장’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화물연대 파업, 코로나, 감리 교체 등을 이유로 공기 연장이 불가피한 상황이라 조합 측에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조합 측에서는 현재 공기를 준수해달라고 답변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조합 측의 의견을 수렴해 성실히 공사 일정을 맞추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은 공기 지연이 시공사의 귀책사유가 아니라 지체상금을 지급하기 어렵다고 밝혀 입주 예정자들 사이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체상금은 시공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계약상 의무를 다하지 못 했을 때 입주자에게 지급하는 보상금을 말한다. 래미안 원베일리 입주 예정자인 A 씨는 “대한민국 도급순위 1위 삼성물산이 이렇게 말을 바꾸는 걸 보니 우리나라 건설사 수준을 알 만하다”며 “지난해 11월 임시총회에서 삼성물산 관계자는 입주 지연은 없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A 씨는 “화물연대 파업을 이유로 들었는데, 다른 사업장은 화물연대 파업 이후 복귀가 빠르게 마무리 됐는데 이를 이유로 드는 걸 납득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반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기존 입주 예정일에 맞춰 이사를 계획한 입주 예정자들은 일정을 모두 변경할 수밖에 없어서 입주 예정자들이 이사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지 등을 놓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며 “다만 조합 측이 전날 삼성물산에 공사 기간 연장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의 회신을 전달하면서 상황이 일단락됐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 들어설 예정인 ‘진접 삼부 르네상스 더퍼스트’ 아파트는 당초 2022년 9월 16일이 입주 예정일이었으나 아직도 공사 중이다. 시공사 삼부토건은 입주 두 달 전 발생한 크레인 사고로 입주 예정자들에게 입주 시기를 4개월 정도 늦춰달라고 요청했다. 해당 아파트는 전 가구 59㎡, 지하 3층에서 지상 27층, 3개동 총 348가구다. 2020년 분양 당시 분양가가 3억 원 이하로 책정돼 신혼부부 등 젊은층의 선호도가 높았다.
입주가 4개월 늦춰진 후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지난 1일까지 사전점검이 시행됐는데, 이후 논란은 더 커졌다. 사전점검일인데도 공사가 한창이었고 심지어 안방 바닥에 인분 덩어리가 있거나 담배꽁초가 널려 있었다. 진접 삼부 르네상스 더퍼스트 입주 예정자인 B 씨는 “사전점검일에 맞춰 아파트 현장을 방문했는데 안전화와 안전모가 필요한 수준이었다”며 “조경공사, 전기공사 등 미비로 중대한 하자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B 씨는 “1월 17일 사용승인을 완료하겠다는 생각만으로 시공사가 입주민에게 사전점검을 공지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당초 삼부토건 측은 1월 17일을 입주 예정일로 통보했으나 이번 사전점검 후 논란이 거세지자 3월 중 입주로 또 다시 2개월 입주를 미루겠다고 밝혔다. 삼부토건 관계자는 “현재 비상인력을 투입해 공사를 진행 중이며 입주는 3월 초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며 “보상은 확정이 되지 않아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내부에서 수차례 회의를 통해 보상 방안을 마련 중”이라 밝혔다.
전국 아파트 미분양 건수가 크게 늘고 있는 것과 달리 한편에서는 분양 아파트에 제대로 입주도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2년 11월 주택 통계 자료를 보면 전국 아파트 미분양은 5만 8027가구로 전월(4만 7217가구)보다 22.9%(1만 810가구) 늘었다. 2019년 9월 미분양 가구가 6만 62가구였던 이후 3년 2개월 만에 처음으로 6만 가구에 육박했다. 아직 12월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12월 미분양 물량은 6만 2000가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입주 지연 탓에 입주 예정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입주 예정자들은 건설사들에 제대로 된 보상조차 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건설사들이 입주 지연의 이유로 얘기하고 있는 화물연대 파업, 코로나19,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이 ‘불가항력’이란 이유로 책임을 물을 수 없을까봐서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제61조 2항에는 입주자모집공고에서 정한 입주 예정일 내에 입주를 시키지 못한 경우 입주자에게 ‘지체상금’으로 지급하거나 주택잔금에서 해당액을 공제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적 사유 같은 귀책사유로 인한 것이 아닐 때는 지체상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다고 돼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코로나19, 화물연대 파업 등 여러 이유를 들어 입주 지연이 불가피했다고 시공사가 얘기하는데 각 사업장별로 사정이 다 다르기 때문에 시공사의 귀책사유 없이 진행된 것인지 종합적으로 파악해 적용한다”며 “아파트 표준계약서를 대부분 공정거래위원회 약관에 따라 작성하기 때문에 분쟁이 발생했을 시 기준으로 삼아 보상이 진행된다”고 밝혔다.
법무법인(유한)동인 윤현석 변호사는 “입주 지연을 이유로 계약해제가 가능하며, 계약금 반환은 물론 위약금 상당의 금원까지 청구할 수 있다”며 “다만 준공 및 사용 검사 후엔 계약해제가 불가하기 때문에 계약해제를 염두에 둔다면 반드시 준공 전에 계약해제 소송을 통해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윤현석 변호사는 그러나 “입주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지체보상금 청구할 수 있다”면서도 “표준계약서에 연체요율이 기재되지 않은 사례가 빈번하고, 시행사와 수분양자들 사이에는 연기된 일수에 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 결국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건설전문분야 변호사인 법무법인 윤강 민동환 대표변호사는 “노조 파업 등은 법원에서 통상적으로 인정하는 사유가 아니며 IMF 시기에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는데 법원에서 인정이 안됐다”며 “보상을 안 해준다면 소송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