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가림은 생존 본능, 이웃과 어울리면 자연스레 좋아져…인지능력 떨어지면 다른 문제 없는지 확인해야
아기는 태어나서 한동안 모든 사람을 보면 웃고 같이 놀며 좋아합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거부감이 별로 없습니다. 이렇게 사회성 좋아 보이던 아기가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하는데, 보통 생후 6개월 정도 되면 낯선 사람을 보고 갑자기 울기 시작합니다. 이걸 낯가림이라고 하죠. 이외에도 엄마에게 매달리거나 눈치를 보거나 말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낯가림은 빠르면 4개월 정도에, 늦으면 돌 즈음에 생깁니다. 아기의 인지능력이 발달하면 자신을 돌보는 부모와 다른 사람을 구분할 수 있어 낯가림이 생깁니다. 12개월에서 15개월 사이에 낯가림은 서서히 줄어들지만, 오래 가는 경우 두세 살까지 지속되기도 합니다. 대부분 부모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저절로 좋아집니다.
낯가림은 자기가 모르는 사람을 경계하고 부모에게 알리려고 하는 생존 본능 중 하나기 때문에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낯가림은 거의 모든 아기에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자신을 돌보는 양육자와 관계가 잘 형성된 경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좀 더 심해지기도 합니다. 낯가림은 아기의 타고난 기질도 문제지만 부모와 함께 살면서 보고 경험하고 자란 환경의 영향도 큽니다.
적당한 낯가림은 아기가 살아가는 데 필요합니다. 하지만 낯을 심하게 가리면 사람과 관계 형성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낯가림 적은 아기로 키우려면 평소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고 아기와 함께 이웃들과 자주 만나세요. 부모가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면 낯가림도 적고 쉽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 많은 부모가 아기와 둘이서 지내면서 이웃과 별로 왕래하지 않고 삽니다. 그럼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적은 아기들은 낯선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낯을 심하게 가리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어릴 때부터 가족과 이웃이 어울리며 사는 게 좋습니다.
친하고 익숙한 사람들을 자주 만나면서 낯선 사람들과 만남을 조금씩 늘리는 것이 낯가림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낯선 사람들을 자꾸 만나게 하면 아기들은 불안해져 낯가림이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아기와 함께 낯선 사람을 만날 경우 미리 충분히 설명한 뒤 부모가 태연하고 당당하고 권위 있게 행동하면 아기는 부모를 믿고 불안감이 줄어들어 낯가림도 줄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기 시야에 들어올 때도 갑자기 가까이 나타나게 하지 말고 서서히 접근하게 하세요. 부모와 자연스럽게 대화하다가 아기가 조금 익숙해지면 눈을 맞추고, 아기의 표정이 변하면 다시 거리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안경을 끼거나 모자를 쓴 사람을 무서워하는 경우도 있으니 처음 아기와 만날 때는 이런 걸 착용하지 않는 것도 낯가림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낯가림이 심하다고 부모가 불안해하거나 사람 만나는 걸 피하면 낯가림이 더 심해질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낯가림이 너무 없는 것도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닙니다. 간혹 인지능력이 떨어지거나 지능이 낮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흔치 않지만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진료를 받아 다른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게 안전합니다.
낯가림이 좀 있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낯가림도 아기의 마음이 성숙하고 튼튼해지는 과정입니다. 가족이 화목하고 부모가 아기를 사랑하고 권위가 있어 아기가 믿고 의지할 수 있을 때 낯가림도 쉽게 넘어갈 겁니다. 그리고 가족과 이웃이 자주 만나고 어울려 살아갈 때 낯가림은 훨씬 더 빨리 좋아질 수 있습니다.
하정훈은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소아청소년과 의사다. 대한소아과개원의협의회 교육이사, 대한소아과개원의협의회 모유수유위원회 위원장, 대한소아청소년과개원의사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하정훈소아과의원 원장이다. 베스트셀러 육아지침서이자 육아교과서라 불리는 '삐뽀삐뽀 119 소아과'의 저자이기도 하다.
하정훈 소아청소년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