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 이름으론 재기 불가 ‘리브랜딩’ 가능성…재무 여력 바탕으로 B2B 강화 전망
남양유업의 지난해 실적은 역대 최악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양유업의 이미지 악화됐을 뿐 아니라 우유 소비도 감소세에 있다. 유업계에서는 한앤코가 남양유업을 인수한 후 리브랜딩과 B2B(Business to Business·기업 대상 비즈니스)에 집중하며 기업 정상화에 공을 쏟을 것으로 내다본다. 남양유업의 브랜드 가치가 사실상 마이너스에 가까우므로 B2C(Business to Consumer·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에서는 큰 성과를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갑질에 마약까지…남양유업 브랜드의 끝없는 추락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민사16부는 2월 9일 홍원식 회장과 한앤코의 M&A 계약 불이행 소송 2심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홍 회장은 지난해 5월 한앤코와 남양유업 지분 53.08%를 3107억 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지만 김앤장이 쌍방 대리를 했다는 이유로 계약 무효를 주장했다. 쌍방대리는 동일한 대리인이 계약 당사자 양측을 모두 대리하는 것을 뜻한다. 홍 회장은 1심에서 패소해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도 한앤코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서 법원이 쌍방대리를 이유로 계약 무효 판결을 내린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2심 재판부가 홍 회장 측 추가 증거 신청을 모두 기각한 것도 한앤코의 승소 가능성을 높이 보는 이유다.
한앤코가 2심에서 승소한다면 남양유업 경영권 분쟁은 사실상 끝날 전망이다. 홍 회장 측이 대법원에 상고하더라도 새로운 논리를 꺼내들지 않는다면 기각 가능성이 높다. 유업계의 시선은 한앤코가 만들 ‘새 남양유업’으로 쏠린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남양유업의 지난해 1~3분기 매출은 7226억 원, 영업손실은 604억 원에 달한다. 남양유업은 2021년 매출 9560억 원, 영업손실 778억 원이라는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바 있다. 그러나 2022년에는 이보다 더 악화된 실적을 기록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적 악화의 첫째 원인으로는 지속되는 불매운동이 꼽힌다. 남양유업은 한때 유업계 1위 사업자였지만 2013년 대리점 갑질 사건 이후 브랜드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이 밖에 남양유업 오너 일가인 황하나 씨가 수차례 마약 사건을 일으켰고, 최근에는 ‘재벌가 마약 사건’의 국내 대마 공급 총책으로도 남양유업 오너 일가가 꼽혔다.
홍원식 회장과 한앤코가 진행 중인 소송도 남양 브랜드 이미지를 악화시키는 요소다. 일각에서 홍 회장이 계약 무효를 주장하는 진짜 이유가 매각 협상 후 급등한 냠양유업 주가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한앤코 입장에서는 경영권 획득이 늦어질 뿐만 아니라 인수한 기업 가치가 시시각각 떨어지고 있는 꼴을 보며 소송전을 벌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남양유업은 브랜드를 숨겨가면서 하락한 이미지를 만회해왔다는 지적을 받았다. 실제로 ‘숨은 남양 제품 리스트’ 등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유업계에서는 한앤코가 남양유업 인수를 완료한 후 가장 먼저 리브랜딩을 추진할 것으로 분석한다. B2C 영역에서 ‘남양유업’ 이름으로는 재기가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다만 새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마케팅 비용이 필요하다. IB(투자은행)업계 한 관계자는 “한앤코를 비롯한 사모펀드들은 인수한 회사 이름을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보통 실적과 관계없는 쓸데없는 비용이기 때문”이라면서도 “남양유업은 ‘홍씨 일가 지우기’를 포함해 적극적인 리브랜딩 없이는 회사 존립이 힘들어 사명 변경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한앤코의 남양유업 주가 부양 전략은?
유업계 시장 전망은 어둡다. 국내 우유 소비량이 갈수록 줄고 있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남양유업은 지난해 3분기 기준 매출 50%를 우유에서, 19.9%는 분유에서 거뒀다. 남양유업이 B2C에서 경쟁력을 잃은 만큼 한앤코가 남양유업의 B2B 비중을 높일 가능성이 거론된다.
실제 남양유업은 최근 들어 커피전문점과 우유 공급 계약을 맺고 치즈·생크림을 납품하는 등 B2B 거래를 늘리고 있다. 남양유업은 자회사 건강한사람들(옛 남양F&B)을 통해 유통사 PB(자체브랜드) 상품을 제조하고 있기도 하다. 한앤코가 현대호텔과 대한항공 기내식 사업 등을 보유한 만큼 B2B 위주 매출 신장도 가능하다.
수 년간 적자를 지속해왔음에도 남양유업 재무상황이 좋다는 점은 한앤코에게는 유리한 지점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남양유업 자산은 8968억 원에 달한다. 현금성 자산만 1175억 원이 있고, 공장 등 부동산이 포함된 유형자산이 3259억 원에 달한다. 반면 부채는 1224억 원으로 자산의 7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부채의 38.6%인 473억 원은 매입채무로, 원재료 어음 결제 등으로 발생한 일시적인 부채에 가깝다. 한앤코가 홍 회장 지분 인수를 완료하는 순간 순자산 7000억 원이 넘어서는 회사 지분 53%를 3107억 원에 거머쥐게 되는 셈이다.
남양유업 시가총액이 낮다는 점도 역으로 기회가 될 수 있다. 2월 1일 기준 남양유업 시가총액은 3722억 원에 불과하다. PBR(주가순자산비율)이 0.5선에 불과한 것이다. 식품업계 다른 관계자는 "대리점 갑질 사건과 오너가 이슈가 불거지기 전에는 유업계 1위를 지켜온 회사인 만큼 저력이 있는 회사"라며 "경영만 정상화된다면 저평가된 주가를 끌어올리기는 수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남양유업이 코스피 상장사라는 점도 한앤코 입장에서 매력적인 요소다. 남양유업을 중심으로 타 기업들을 합병해 남양유업의 기업 가치를 띄울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 유업계 관계자는 “남양유업이 장기간 경쟁력 저하에 시달려 온 만큼 소송전이 마무리돼도 한앤코의 향후 사업 고민이 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요신문은 한앤코에 남양유업의 향후 경영 전략 등에 대해 문의했지만 한앤코 측은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