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시간‧비용 투자 필요해 난관 부딪칠 수도…“바이오 간판만 얻으려 하면 시장 건정성 해쳐”
식품업계 1위인 CJ제일제당은 바이오 사업을 시작한 지 꽤 됐다. 1984년 유풍제약을 인수하면서 제약사업에 뛰어들었다. 2006년 한일약품을 인수하고, 2014년에는 제약사업부를 CJ헬스케어로 물적분할했다. CJ제일제당은 CJ헬스케어(현 HK이노엔)를 2018년 한국콜마에 매각하며 바이오 사업에서 철수하는 듯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재개했다. 2021년 마이크로바이옴(미생물의 유전정보 전체나 미생물 자체) 헬스케어 기업 천랩을 인수해 올해 1월 천랩의 사명을 CJ바이오사이언스로 변경하고 바이오 전문 자회사로 출범했다. CJ바이오사이언스는 2025년까지 파이프라인 10건, 기술수출 2건을 보유해 글로벌 넘버원 마이크로바이옴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오리온그룹도 바이오 사업을 3대 신사업 분야 중 하나로 선정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오리온은 2020년 10월 중국 국영 제약기업 ‘산둥루캉의약’과 바이오 사업 진출을 위한 합자 계약을 체결하고, 2021년 3월 합자법인 ‘산둥루캉하오리요우생물과기개발유한공사(산둥루캉호오리요우)’ 설립을 마쳤다. 산둥루캉하오리요우를 통해 2021년 5월에는 국내 암 체외진단 전문기업 ‘지노믹트리’와 대장암 체외진단 기술도입 본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2월에는 글로벌 백신 전문기업 ‘큐라티스’와 결핵백신 공동개발을 위한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오리온그룹은 지난해 11월 오리온바이오로직스를 자회사로 신규 출범했다. 오리온바이오로직스는 오리온홀딩스와 난치성 치과질환 치료제 개발 기업 하이센스바이오의 합작회사다. 오리온 관계자는 “국내의 우수한 바이오 기술을 발굴해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 사업을 펼치고 있다”며 “현재 추진하고 있는 암 체외진단 키트, 결핵백신, 치과질환 치료제를 개발부터 상용화까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착실히 추진하고, 바이오 사업역량을 키운 이후 합성의약품, 바이오의약품, 신약개발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상그룹도 바이오를 미래 먹을거리로 낙점했다. 대상은 2021년 7월 클로렐라(녹조류에 속하는 단세포 생물의 일종) 기반의 의료용 소재 사업 추진을 위해 ‘대상셀진’을 설립했다. 대상셀진은 대상홀딩스가 지분 100%를 갖고 있으며, 의약품‧화장품과 바이오 복제약 등을 연구‧제조하는 곳이다. 또한 대상은 친환경 생분해 신소재 사업을 위해 SKC, LX인터내셔널과 함께 생분해성 친환경 신소재 PBAT(생분해성 고분자 플라스틱) 합작회사도 세울 예정이다.
식품업계가 바이오 분야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인구 감소로 인해 장기적으로 식품시장이 침체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원자재 가격의 영향을 많이 받는 식품기업의 특성상 수익도 크지 않아 차세대 먹을거리로 각광받는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식품을 주업으로 하는 기업들은 환율이나 원자재 가격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아 영업이익이 크지 않다”며 “그래서 식품과 조금이나마 연결 지을 수 있는 바이오나 헬스케어 등을 신사업군으로 정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식품기업들의 바이오 분야 진출에 대해 제약‧바이오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기존에 하던 주력 사업이 아니다보니 임상적인 측면이나 비용 등에서 난관에 부딪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 원장은 “병을 치료하거나 연구하는 분야는 까다롭고 어려운 부분이 많다”며 “식품기업들이 임상적인 측면에서 난관에 부딪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비용과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 바이오 사업을 식품기업이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를 표했다. 정 원장은 “의약품이나 신약 개발 등은 개발 비용이 천문학적 수준에 이를 수 있다”며 “제약‧바이오는 막대한 비용을 오랫동안 투자해야 하는 분야고, 성공률도 낮은데 이 부분을 식품기업들이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순하게 주가 부양이나 수익성만 고려하다 보면 식품기업에서 제약바이오 연구 개발이 굉장히 제한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업계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신약 개발은 10~15년, 진단키트 개발은 약 5년이 걸린다. 비용의 경우 적게는 3000억 원, 많게는 조 단위의 투자가 필요하다. 앞의 식품업계 관계자는 “전문분야가 아니다보니 겉에서 보는 것과 달리 실질적으로 연결되는 실적이 잘 안 나올 수 있어서 빛 좋은 개살구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며 “또 업계 경쟁력도 치열해서 기존에 하던 사업이 아니라면 실패에 대한 리스크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는 “자본력을 갖춘 회사들이 바이오 분야에 투자하고, 산업 성장을 위해 같이 나서주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라며 “대신 식품사업은 유통 쪽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면 제약바이오 분야는 생명공학 기반의 기술 베이스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실력과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은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한창 바이오 버블이라고 할 때 기업명에 바이오만 붙이면 혹은 바이오 사업만 한다고 하면 주주들이나 VC(벤처캐피탈) 투자자들에게 주목을 받으며 일종의 투자 유인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분명 있었다”며 “기업이 제약‧바이오산업에 진심을 갖고 투자를 해서 사업을 키워나갈 생각이 아니라 그냥 바이오라는 간판만 얻고 싶어 한다면 시장 건전성을 해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경험 많은 제약·바이오 기업들과 전략적인 제휴를 맺거나 회사 인수를 통해 사업을 확장해나갈 것을 제안했다. 정윤택 원장은 “기업 자체 내부의 인력 등을 키우기보다 경험 많은 제약기업과 얼라이언스 파트너십을 구축하거나 자금력이 된다면 인수합병을 하는 전략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완전 새로운 사업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많고, 능력 있는 인재를 많이 확보하거나 기업 인수가 적극적인 방안이 될 수 있으며 가장 빠른 방법은 아무래도 기업 인수다”라며 “큰 기업이 신규 사업에 대한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내부 사업 부서를 새로 만들기보다 신규 자회사를 만드는 것이 효율적인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