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 논란에서 골든글러브까지 복잡했던 심경 토로…“장기계약 부담 있지만 안정감도 느껴”
2023시즌 LG 트윈스 주장은 지난 해에 이어 오지환이 맡게 됐다. 스프링캠프 시작하기 전 비FA 다년계약으로 6년 최대 124억 원(보장액 100억 원, 옵션 24억 원)에 합의하면서 2029년까지 LG에서 뛰게 된 그는 구단 최초의 비FA 다년계약 선수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2009년 LG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오지환은 14시즌 동안 통산 1624경기에 출전, 타율 0.265 146홈런 1466안타 745타점 240도루를 기록했다. 2022시즌 오지환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유격수 최초로 20홈런-20도루를 달성했고,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바 있다. LG 스프링캠프에서 진행된 오지환과의 인터뷰를 정리한다.
아무래도 인터뷰의 첫 질문이 다년계약에 대한 내용일 수밖에 없었다. 스프링캠프 직전에 계약을 마무리 지은 터라 그 소감이 궁금했다. 오지환은 “계약 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며 미소를 짓는다.
“물론 그에 따른 부담과 책임감이 크지만 확실히 안정감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내 인생에서 이런 형태(비FA 다년계약)의 계약을 맺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만 기회가 주어졌고, 구단의 배려 덕분에 좋은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프로 데뷔 3년 차에 억대 연봉에 진입했을 정도로 오지환과 LG는 줄곧 궁합이 맞는 관계였다.
“신인 때는 정성훈, 조인성, 이병규, 이진영, 박용택 선배님 등이 받는 연봉을 보면서 억대 연봉이 굉장히 멀게만 느껴졌다. 선배님들 정도의 위치가 돼야 받는 대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비교적 빠른 시기에 억대 연봉 대열에 올라섰다. 당시에 그 대우가 기쁘기보단 내가 잘하지 못했는데도 돈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발전하는 선수가 돼 그에 걸맞은 선수로 인정받고 싶었다.”
오지환은 이후 성장을 거듭했고 KBO리그 최고의 유격수로 인정받으면서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 대우를 받으면 조금 느슨해질 법도 한데 성격상 그게 잘 안 된다. 계속 다음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아마 선수 생활 끝날 때까지 그렇게 할 것만 같다. 2009년 LG 입단 후 15년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자칫 방심하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래서 비시즌 동안 치열하게 준비한 다음 스프링캠프에 임했다.”
어느 한 사람 쉬운 인생이 있을까. 특히 프로 선수라면 단 한 순간도, 한 시즌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지환은 “그때 일을 겪고 나서 더 노력해야 한다고 다짐했다”며 말을 흐렸다. 기자가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냐”고 묻자 오지환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당시엔 모든 걸 인정하려 했다. 내 실력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대표팀 발탁이 ‘논란’으로 확대됐다는 것을. 그러나 당시 어떤 논란에도 내 입으로 말한 건 하나도 없었다. 주위에서 아무 이야기도 하지 말고 인내하라고 해서 애써 말을 아꼈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내가 많이 힘들어하는 걸 알고 부모님이 절대 술 마시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을 정도였다. 행여 술 마시고 안 좋은 행동을 할까봐 걱정하신 것이다. 난 프로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쳤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세상이 무너지는 절망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오지환은 포기하지 않고 잘 버텨냈다. 당시 ‘어둠의 터널’을 잘 지나온 덕분에 야구 실력으로 팬들의 사랑을 불러 모았고, LG의 캡틴으로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고진감래’란 사자성어가 떠오른다”며 회한에 젖은 모습을 보였다.
오지환은 이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30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아시안게임, 올림픽 무대에선 활약했지만 WBC 대표팀은 처음이다. 유격수에선 김하성과 함께 오지환이 나설 예정인데 그는 김하성의 백업으로 출전한다고 해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며 마음을 열었다.
“하성이가 후배지만 그의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리스펙’이란 말이 떠오를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키움 시절보다 한층 발전된 모습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점이 자랑스럽다. 하성이가 선발 출전한다면 뒤에서 언제든지 교체선수로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다.”
오지환은 시즌 중 시간이 날 때마다 김하성 경기를 챙겨본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성이가 어떻게 경기를 준비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하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지금도 메이저리그에서 인정받고 있지만 하성이한테는 여전히 더 올라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아직 한계에 이르지 않은 것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참 멋있는 친구다.”
오지환은 지난 도쿄올림픽을 통해 한일전을 경험했다. 이번 WBC대회에서도 일본대표팀은 피할 수 없는 숙적이나 다름없다. 올림픽과 달리 WBC 대회에는 다르빗슈 유, 오타니 쇼헤이, 스즈키 세이야 등 메이저리거들이 참가하는 터라 일본의 전력은 한층 강화될 수밖에 없는 터. 하지만 오지환은 일본대표팀과의 맞대결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나타냈다.
“야구 잘하는 선수들만 모였다고 해서 우승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랬다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몸값 비싸고 잘한 선수들로만 구성된 팀이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야구는 이름값으로 하는 게 아니라 탄탄한 조직력이 우선시돼야 한다. 우리의 응집력은 일본보다 앞서 있다. 그래서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1, 2점 차이로 우리가 이길 것으로 예상한다.”
오지환은 인터뷰 말미에 절친인 채은성과 최근 식당에서 만나 식사하며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채은성은 FA를 통해 6년 90억 원에 한화 유니폼을 입었고, 오지환은 6년 최대 124억 원의 몸값으로 비FA 다년계약을 맺은 이후였다.
“서로 엄청난 대우를 받는 선수인데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찌개와 순대국밥이더라. 더 좋은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먹을 수 있음에도 좋아서 찾는 건 김치찌개라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돈은 벌었지만 우린 여전히 야구와 씨름하며 김치찌개와 순대국밥에 행복을 느끼는 그런 친구였다.”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