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헬스케어 ‘필키’ 알고케어 ‘나스’ 표절 주장…“협력 결렬 후 나스와 유사한 영양제 분배기 시제품 선보여”
2022년 3월 롯데지주는 700억 원을 출자해 롯데헬스케어를 설립했다. 롯데헬스케어 사업 중 현재까지 구체화한 건 영양제 분배기 필키가 거의 유일한데, 바로 이 제품이 표절 의혹을 받고 있다.
사건은 2021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롯데헬스케어가 설립되기 전, 아직 롯데지주 ESG실 산하 신성장팀일 때 A 상무가 알고케어에 협력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여러 이슈 때문에 롯데와의 협력 논의가 결렬되었다. 알고케어는 롯데가 이때 미팅에서 획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필키를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협의 결렬 뒤 3일 만에 국민신문고에 당시 롯데지주 직원이 알고케어 사진과 자료를 사용해 똑같은 사업모델을 해도 되는지 합법성을 질의하면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알고케어와 같은 사업을 할 것이 아니면 그런 질의를 올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롯데헬스케어에서 시제품까지 나온 것을 보고 공론화 및 소송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알고케어를 운영하는 정지원 대표는 국내 최대 법률사무소 김앤장 출신 변호사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정 대표 주변에는 법조인들이 많다. 그런 정 대표이기 때문에 이번 소송은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주목 받고 있다. 정 대표가 이 소송에서 진다면 앞으로 스타트업 업계에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으로 이길 사람은 없을 것이란 얘기가 많다. 특히 변호사 출신이기 때문인지, 프로젝트 관리 소프트웨어인 ‘노션’을 통해 증거와 녹취록을 동시에 첨부하는 꼼꼼함까지 보여줬다.
정 대표도 “이번 이슈에서 꼭 이겨야 하는 이유는 알고케어 사태를 스타트업 업계 전체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진다면 상당수의 스타트업이 ‘예전에 알고케어도 졌는데 내가 어떻게 싸우나’하면서 싸움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알고케어는 언제 창업하게 됐나.
“김앤장에서 일하다가 사회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변호사는 한 번에 의뢰인 한 명에게 영향을 끼친다면 사업은 여러 명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2019년 창업한 알고케어는 두 번째 창업이다. 30년 전과 비교하면 영양제는 변한 게 전혀 없다. 구매처가 온라인으로 바뀐 것 이외에는 여전히 입소문으로 사 먹고, 여러 종류로 복잡하거나 깜빡하고 챙겨 먹지 못하는 날도 많다. 이 부분을 혁신시킨다면 여러 사람에게 긍정적인 임팩트를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영양제 분배기 사업은 언제 생각하게 됐나.
“아직도 그날이 생각난다. 2020년 1월 12일 밤 12시 반이다. 영양제 회사를 만들긴 했는데 뭘 해야 하나 싶어서 2개월 동안 잠잘 때도 영양제 생각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노부부가 찬장에 수십 종류 영양제를 두고 조금씩 쪼개서 섞어 먹는 것을 보고 ‘나도 누가 저렇게 챙겨줬으면 좋겠다’고 하다 갑자기 떠올랐다. 매일 건강 상태에 따라 영양제를 알아서 분배해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였다. 그때는 우주선으로 달나라도 가는데 만들기는 어렵지 않겠다 싶었다. 그 무지함의 대가를 호되게 치렀다. 시제품이 나온 건 그때로부터 1년 7개월 걸린 뒤였다.”
―세계 최대 규모 ICT(정보통신기술) 융합 전시인 CES(국제 전자제품 박람회)에서 3년 연속 혁신상을 탔다. 삼성전자 C랩 아웃사이드의 지원을 받고, 중소벤처기업부 아기 유니콘에도 선정됐다.
“해외에서 인정받으면 한국에서 도입하기 더 쉬워지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전했다. 주변에서는 어려운 상을 계속 받는 걸 보고 대단하다고도 하는데 그렇지 않다. 진짜 어려운 건 시장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논란이 된 롯데와 협력 논의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2021년 9월 롯데와 논의는 ‘시그니엘 호텔에 입점시켜주겠다’는 롯데 측 제안이 매력적으로 다가와 얘기하게 됐다. 시그니엘 호텔의 이미지 때문에 적극적으로 임했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당시 롯데지주 A 상무와 논의를 했다. 첫 번째, 두 번째 미팅까지는 못 느꼈는데 세 번째 미팅부터 이상함을 느꼈다. 갑자기 ‘알고케어 거버넌스를 고민해보자’, ‘롯데가 더 잘할 수 있는 사업이다’ 등 이상한 얘기를 했다. 알고케어 거버넌스를 왜 롯데가 고민하나. 그 이후 미팅에서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를 하길래 논의는 결렬됐다. 이 같은 대화 내용은 녹음으로 다 남아 있다.”
―협력 결렬 이후 언제부터 이상함을 감지했나.
“당시 ‘알고케어를 보고 많은 생각이 파생되었다’고 하면서 롯데지주와 협력이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신동빈 회장에게 보고했다는 사업계획서에 알고케어 이름이 들어갔다. 진단과 치료는 각각 특정 업체와 병원이 적혀 있었고 제공은 알고케어가 들어갔다. 결정적인 건 국민신문고 글이었다. 2021년 10월 롯데 직원이 대놓고 알고케어 자료와 사진으로 ‘알고케어와 똑같은 사업모델에 대해 규제에 걸리지 않는지, 사업이 가능한지 확인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사업을 안 할 거면 이런 글은 왜 올리겠나. 당시 글을 올린 롯데 직원에게 ‘알고케어 자료와 사진으로 왜 그런 질의를 올렸냐. 똑같은 거 하시려고 하냐’고 따지자 ‘알고케어와 비슷한 거 하려는 건 아니다’라면서 ‘미안하다, 신문고 글을 철회하겠다’고 답했다. A 상무도 ‘롯데지주는 알고케어가 하는 것처럼 카트리지 형태를 얘기한 게 아니라 일반 영양제를 기계에 붓는 방식을 하는 거다’라면서 단순 분배기 형태인 외국 히어로 모델을 얘기했다.”
―그런데 현재 롯데헬스케어 모델은 단순 분배기가 아닌 알고케어와 같은 카트리지 모델이다.
“당시 롯데헬스케어가 알고케어를 카피한다는 소문이 있어 2022년 5월 A 상무에게 찾아가 식약처 질의 사례, 업계 소문과 롯데헬스케어가 낸 ‘개인 맞춤 건강기능식품 서비스’ 보도자료 등을 언급하며 카피 여부를 따졌다. 당시 A 상무는 ‘솔직히 말하면 알고케어는 정말로 지분 투자까지 들어가고 싶은 회사였다. 만약 그렇게 풀렸다면 지금 우리가 이렇게 이런 얘기도 안 해도 됐을 텐데’라고 말했다. 알고케어가 자체 브랜드가 아닌 롯데헬스케어 브랜드로 제품 판매를 수락했으면 일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란 얘기였다. 또한 A 상무는 ‘만약에 알고케어를 카피했다고 생각하시는 거면, 뭐 힌트가 아예 없었다고 할 순 없죠’라며 ‘먼저 출시하게 시간은 드릴게요’라더니, ‘(롯데헬스케어 제품이) 안 나온다고 그러면, 알고케어가 진짜로 잘 될까. 그럼 막으면 알고케어도 진짜 잘될까’ 등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이 사건은 2023년 1월 롯데헬스케어가 CES에 시제품을 내면서 화제가 됐다.
“CES에서 전시하고 있는데 관람객이 ‘롯데가 만든 것하고 똑같다’는 얘기를 했다. 무슨 얘긴가 싶어 롯데 전시장에 가봤더니 기계 색깔부터 모양과 형태, 카트리지 구조, 모터가 돌아가서 영양제가 나오는 방식까지 다 똑같았다. 2023년 1월 5일 첫날 관람객이 찍은 영상에서 ‘경쟁자가 있냐’는 질문에 롯데헬스케어 B 팀장은 ‘디스펜서는 알고케어와 같다’며 ‘알고케어가 경쟁사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8일 내가 직접 롯데헬스케어 전시장에 바로 그 B 팀장에게 ‘알고케어 전시장에서는 롯데하고 똑같다는 얘기 많이 들어봤는데 못 들어봤냐?’고 하자 B 팀장은 ‘알고케어라는 회사를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의도적으로 거짓말하라는 회사 차원의 지시나 결정이 있지 않고서야 갑자기 말이 달라지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알고케어는 관련 특허가 있나. 롯데는 스타트업 아이템을 탈취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특허 신청은 다 했다. 하지만 특허는 방패가 아니라 창이다. 보고 만들면 피해 갈 수 있는 우회할 수 있는 구멍이 있다. 특허 외에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에 저촉된다고 확신한다. 세부적 디테일은 다를지라도 기계가 개인별 건강검진 데이터를 받아, 그걸 기반으로 영양제를 각 개인에 맞게 자동으로 분배해주는 그 사용 경험이 완전히 같게 만들어졌다. 요즘 대기업은 이 정도로 베끼지 않는다. 전직 특성상 주변에 법조인이 많아 나와 관련 없는 사람에게도 물어봤다. 문제가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롯데가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나는 김앤장에서 컴플라이언스 업무도 하였는데 롯데가 이번 사건을 들고 왔다면 ‘문제가 되니 강행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고민하라’고 조언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롯데가 외부 로펌에 이 사건 검토 받아 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롯데 측은 “개인 맞춤형으로 영양제 등을 추천하고 분배기를 활용해 섭취하도록 하는 모델은 해외에서는 소위 정수기처럼 일반적인 개념이다”라며 “개인맞춤형 영양제를 제공하는 사업은 2020년에 이스라엘 회사 ‘뉴트리코’가 발표하기도 했던 일반적 사업 모델이라고 주장한다.
“전형적인 논점 흐리기 발언이다. 롯데가 그렇게 정수기처럼 흔하다는 해외 모델을 대보면 좋겠다. 어떤 모델이 지금 알고케어와 롯데 같은 형태를 하고 있나. 롯데가 2022년 5월 ‘따라 하지 않겠다’며 말한 ‘히어로’ 모델은 약을 잊지 않고 챙겨 먹게 하는 용도지 영양제 분배기도 아니고 수동으로 작동하는 모델이다. 일일이 내가 챙겨 넣어서 다음에 꺼내 먹어야 하는 구조다. 또한 뉴트리코는 2020년 CES에서 시제품만 전시되었을 뿐 영업도 하지 않는다. 도대체 뭘 참고했다는 건가.”
―변호사로서 객관적으로 소송에서 이길 확률은 얼마로 보나.
“반드시 이긴다. 다만 소송이 5년 이상 걸릴 수 있다. 워낙 오래 걸리는 소송 탓에, 이겼지만 그사이 롯데 저가 공세에 시장에서 밀리는 게 걱정일 뿐이다.”
―스타트업 대표로서 부정경쟁방지법을 겪어보니 제도에 문제도 있나.
“손해액을 계산하기가 어렵다. 알고케어가 10억 원 팔고, 롯데헬스케어가 100억 원 팔면 알고케어 손해액이 100억 원이라고 할 수 없다. 손해 입증을 피해자가 해야 하는데, 롯데헬스케어가 없으면 알고케어가 110억 원 매출 나온다는 입증을 어떻게 하나. 공정위 과징금처럼 배상 기준을 매출액을 기준으로 바꿔야 한다. 과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법 취지가 아이디어 도용 행위를 못 하게 하는데 초점이 있는 만큼 진짜 안 할 수 있도록 매출액을 기준으로 잡아야 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대기업이 몇 푼 쥐어주고 강행할 수 있다. 또, 나는 비록 특허 등 관련 법에 전문성은 없지만 주변에 조언을 구할 사람이 워낙 많다. 그런데 나도 대응하려고 보니 과정도 복잡하고 힘들더라. 아예 법조계와 무관한 사람은 얼마나 힘들겠나. 원스톱 대응센터를 만들어서 스타트업이 어떻게 대응할지 조언해주는 기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신동빈 회장이 신년사로 ‘각 사업 분야에서 선한 가치를 의사결정의 최우선에 두고 고객과 주주, 파트너사와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미래로 걸어가자’고 당부했다. 롯데헬스케어 대표가 롯데그룹 ESG 부문을 총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ESG가 뭔지 다시 한 번 돌아봐 달라. 국회에서도 이 사건에 큰 관심을 가져주고 계신다. 앞으로 법적 소송은 물론이고 국회 차원에서도 대응하는 데 적극 협조할 예정이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