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링 앱 ‘오르조’와 비상교육 앱 ‘기출탭탭’ UI·UX·디자인 흡사…슬링 측 내용증명 발송, 비상교육 “검토 중”
#스타트업이 비상교육에 내용증명 발송, 왜?
일요신문 취재 결과, 최근 슬링은 비상교육이 출시한 앱 ‘기출탭탭’이 슬링이 출시한 앱 ‘오르조’와 유사하다고 주장하며 비상교육에 내용증명을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강민 슬링 대표는 “디자인권 침해 소송,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여부의 확인을 통한 법률적인 절차를 고려하고 있으며,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 적극적으로 모색해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르조는 슬링이 2021년 3월 출시한 태블릿 전용 수능공부 앱이다. 이용자들은 앱을 활용해 기출문제와 사설 모의고사 등을 풀어볼 수 있다. 앱에는 타이머, 오답노트, 학습플래너, 자동채점 등의 기능이 장착됐다. 슬링은 오르조를 토대로 2021년 3월 네이버 스프링캠프로부터 시드 투자를, 지난해 10월에는 70억 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1월 기준 오르조의 누적 다운로드 수는 20만 건이다.
지난해 12월 출시된 비상교육의 태블릿 전용 수능공부 앱 기출탭탭도 자동채점, 문항별 타이머, 오답노트 등 오르조와 같은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통상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서비스는 다른 기업이 벤치마킹해 유사 서비스를 내놓는 경우는 흔하다. 그러나 문제는 두 앱의 디자인은 물론, UI(사용자 환경), UX(사용자 경험)가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점이다.
일례로 슬링 앱 오르조의 국어 기출문제 화면을 보면 화면의 왼쪽에는 지문이, 오른쪽에는 각 지문에 대한 문항만이 나와 있다. 문제마다 위쪽에 긴 타원형 모양의 번호가 적힌 칸이 배치돼 있고, 사용자들은 이 칸을 클릭해 답을 표시한다. 채점 선택을 위한 칸은 화면 오른쪽 위에, 다음 문제로 넘어가는 칸은 화면의 오른쪽 아래에 나타나 있다. 비상교육 앱 기출탭탭도 유사하다.
특히 문제와 문제풀이 화면이 분할되는 기능, 좌우 분할된 영역의 크기를 편하게 조절하는 기능 등도 두 앱에 똑같이 구현돼 있다. 두 앱 모두 ‘분할 기능’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슬링이 해당 기능이 구현된 여러 개의 정적, 동적 디자인에 디자인권을 출원해 등록된 상태다.
비즈니스 모델이 유사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슬링은 오르조 출시 이후 3일 무료 체험 서비스를 도입했고, 이용자들이 매일 10분 무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월 구독이나 프리미엄 패스를 구매하면 이용자들이 유료 기능을 제한 없이 활용할 수 있다. 현재 슬링은 10분 무료 혜택을 없애고 대부분 기능을 무료화한 상태다. 비상교육의 기출탭탭도 일반 회원은 매일 10분씩 무료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또 월 구독이나 수능 패스 결제 시 유료 기능을 제한 없이 사용 가능토록 했다.
안 대표는 “IT 업계 특성상 디자인, UI, UX 등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흔한 일이라고 해도, 대기업이 시장에서 검증받은 서비스의 비즈니스 모델과 특허까지 받은 디자인을 그대로 차용한 것은 그동안 우리 팀이 쌓아온 노고에 대한 권리 침해”라고 지적했다.
두 기업이 디자인권 침해 소송을 벌인다면 소송에서 앱 디자인의 유사성을 따져봐야 한다. 배문설 로담특허 변리사는 “디자인권이 등록된 후 제3자가 똑같은 디자인으로 상업적인 활동을 하면 기본적으로는 침해에 해당한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아도 유사 정도에 따라 디자인권 권리 범위에 속하는 침해 여부가 나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비상교육 관계자는 “내용증명을 받고 검토 중인 상황으로 조만간 해당 스타트업 측에 답변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중기부 권한 강화, 대‧중견기업 윤리 의식 필요 목소리
대‧중견기업과 스타트업 사이 표절 논란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가장 최근에는 롯데헬스케어가 스타트업 알고케어가 개발한 제품의 아이디어를 탈취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문제가 된 제품은 카트리지 방식의 영양제 디스펜서(정량 공급기)다. 롯데헬스케어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박람회 ‘CES 2023’에서 공개한 제품 ‘캐즐’이 알고케어의 ‘뉴트리션 엔진’과 제품 구조, 디자인, 콘셉트 등이 흡사하다는 것이 알고케어 측의 주장이다.
특히 롯데헬스케어가 제품 출시 전인 2021년 알고케어에 투자 제의를 하며 IR(기업 설명)을 요청한 사실이 있다는 게 알려지며 논란이 커지는 분위기다. 롯데헬스케어와 알고케어의 사업 협의는 불발됐지만, 당시 알고케어는 제품 제조 기술과 작동 원리, 사업 방식 등에 대한 내용을 롯데헬스케어와 공유했다. 알고케어 측은 롯데헬스케어를 영업비밀침해 등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제출할 계획이다.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도 기술침해 행정조사 전담 공무원을 파견하며 조사에 나섰다. 롯데헬스케어 측은 개인맞춤형 영양제를 제공하는 사업은 이스라엘 회사가 먼저 발표한 일반적인 사업모델이며, 영업비밀을 침해한 적 없다고 맞서고 있다.
LG유플러스가 2021년 출시한 집안일 중개앱 ‘홈인’도 스타트업 생활연구소 ‘청소연구소’ 앱의 UI와 UX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LG유플러스는 2019년 생활연구소에 전략적 투자 유치를 제안했지만 이후 투자 협약이 결렬됐다. 생활연구소 측은 LG유플러스가 논의 과정에서 주된 사업 자료를 넘겨받고 협상 결렬 이후 앱의 디자인 일부를 베껴 서비스를 출시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LG유플러스는 영업비밀침해는 아니라면서도 유사한 디자인을 수정했다. LG유플러스의 홈인은 사업성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출시 반년 만인 지난해 5월 종료됐다.
대‧중견기업이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탈취할 경우 스타트업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송을 진행하려면 시간과 비용을 쏟아야 한다. 자원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소송에서 이긴다 해도 실익이 크지 않다. 이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스타트업도 허다하다는 것이 스타트업 업계의 목소리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표절 의혹이 불거졌을 때 중기부가 해당 대‧중견기업에 강제적으로 조치를 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기부가 행정조사에 나서도 기술분쟁조정을 강제하거나 징계, 과징금을 부과할 권한이 없어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는 “네이버는 신사업을 할 때 사내 컴플라이언스팀에서 다른 스타트업 생태계에 영향이 있지는 않은지, 스타트업 아이디어 도용이 아닌지를 검토하고 통과해야 신사업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네이버도 단번에 이러한 방식을 도입한 것은 아니고, 과거 표절 논란을 겪은 후 점차 보완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안강민 슬링 대표는 “특허 등록 등 벤처 기업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를 했음에도 표절하는 경우, 강력한 행정조사와 함께 강화된 징벌적 손해배상이 뒤따라야 높은 진입 장벽을 뚫고 시장에 진입한 스타트업의 혁신 의지를 꺾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