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서 양딩신 만나 일방적으로 국면 주도 2연승…‘밀레니엄둥이’ 첫 챔프 탄생 중국 바둑계도 경사
딩하오는 앞서 열렸던 1국에서도 216수 만에 백으로 불계승을 거뒀었다. 한편 패한 양딩신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LG배 결승에 올랐지만 전기 대회에서는 신진서 9단에게, 이번 대회에선 딩하오 9단에게 패하며 2년 연속 준우승에 그쳤다.
#일찍이 ‘타도 신진서’ 선봉 꼽힌 유망주
2000년생으로 신진서 9단과 동갑인 딩하오는 중국에선 일찍부터 ‘타도 신진서’의 선봉 주자로 꼽혀온 유망주였다. 이제까지 획득한 총 타이틀 개수는 5개. 커제, 양딩신 등에 가려 국내엔 덜 알려져 있었지만 신진서가 2021년 춘란배 우승 후 가진 인터뷰에서 언급해 주목을 받았다. 신진서는 향후 위협적인 상대를 묻는 질문에 당시만 해도 별 볼 일 없었던(?) 딩하오를 언급해 화제를 모았다.
3번기로 치러진 결승전은 단 두 판으로 승부가 가려졌을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1국에서 백을 든 딩하오는 초반 하변에서 발생한 접근전에서 올린 포인트를 끝까지 지켜내며 완승을 거뒀다. 상대 양딩신에겐 전혀 찬스가 주어지지 않았으며, 눈에 띄는 실착 하나 없이 안정적으로 국면을 주도했다. 이틀 후 속개된 2국도 마찬가지였다. 결과는 흑을 든 딩하오의 반집승이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줄곧 딩하오가 주도했다는 평이 많았다.
딩하오의 이번 LG배 우승은 중국바둑계로서는 희소식이다. 그동안 중국은 한국의 ‘밀레니엄둥이’ 신진서(2000년생)에 1997년생 커제, 1998년생 양딩신, 1996년생 판팅위 등이 맞서왔는데 딩하오가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하면서 중국도 2000년대생 챔피언을 갖게 된 것이다.
딩하오는 우승 후 가진 인터뷰에서 “세계대회 우승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고향 인근에선 적수가 없어 선생님이 베이징에 한번 가보라고 했지만 도장 학비가 비쌌다. 그럼에도 부모님이 보내주셨지만 우리의 선택은 마치 도박과도 같았다. 어려움이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 것이 오늘을 만들어준 것 같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많은 기사들이 하루에 10시간씩 훈련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나는 시간을 집계해 본 적은 없지만 7~8시간 정도 집중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번 결승전을 앞두고서는 4500시간 정도 인공지능(AI)과 대국하며 컨디션을 조율했다”면서 “이번 우승은 개인적으로 최고의 영예이며 정점이다. 좀 더 발전해서 몇 번 더 우승하고 싶다. 그 이후에는 바둑 외적으로도 다른 가능성을 넓힐 수 있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말했다.
#준우승 양딩신, 명예회복 기회 놓쳐
한편 2019년 제23회 LG배 우승자 양딩신은 두 번째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이 무산됐다. 2019년 삼성화재배 결승에선 탕웨이싱 9단에게 1 대 2로 패했고, 2022년 LG배 결승에서는 신진서에게 0 대 2로 고배를 마신 데 이어 2년 연속 LG배 준우승에 머물렀다.
양딩신으로서는 못내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결과다. 사실 양딩신은 이번 LG배 결승전을 명예회복의 기회로 여겼기 때문이다. 양딩신은 지난해 말 열렸던 춘란배 4강전에서 신진서를 상대로 인공지능이 추천한 수와 높은 일치율을 보이며 완승을 거둔 리쉬안하오 9단을 향해 ‘치팅이 의심된다’는 글들을 소셜미디어(SNS) 등에 수차례 올린 바 있다. 당시 양딩신의 리쉬안하오 저격은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얼마 후 중국바둑협회는 ‘양딩신 9단이 중국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실질적 증거가 없는 상황 하에 위챗을 통해 리쉬안하오 9단의 치팅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것은 중국바둑의 품위, 바둑팬들의 열정을 훼손했다’는 이유를 들어 LG배 결승전과 단체전인 중국 갑조리그를 제외한 6개월 시합정지 처분을 내렸다. 더불어 댓글을 통해 양딩신의 의견에 동조한 기사들에게도 국가대표팀 관련 조항에 어긋난다며 경고를 내렸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양딩신으로서는 이번 LG배 결승전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실력으로 증명할 기회로 삼고자 했으나 아쉽게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이번 결승전은 한국에도 큰 숙제를 남겼다. 한국이 세계바둑 패권 다툼에서 새로운 신예를 발굴하지 못하고 신진서 한 명에 의존하는 반면, 중국은 딩하오를 비롯해 셰커, 리웨이칭, 왕싱하오, 투샤오위 등 2000년대생 선수층이 두텁다. 때문에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10년 후쯤에는 한국은 바둑 2류 국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27회 LG배의 우승 상금은 3억 원, 준우승은 1억 원이다. 국가별 우승 횟수는 한국 12회, 중국 12회, 일본 2회, 대만 1회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