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플린도 ‘빨간’ 꼬리표 미국서 쫓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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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미활동위원회를 이끌었던 ‘매카시즘’의 근원 조셉 매카시와 동료를 고발하고 살아남은 루실 볼, 엘리아 카잔. | ||
1951년에 열렸던 2차 청문회의 첫 타자는 래리 파크스였다. <졸슨 스토리>(1946)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그는 젊은 시절 좌파 정치 운동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 그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은 없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압박 속에서 결국은 동료의 이름을 댔고 그의 비참한 굴욕 이후 끝없는 ‘이름 대기’가 이어졌다. 사실 반미활동위원회는 그들의 증언을 통해 리스트를 확보하거나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그들은 나름의 리스트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잔인한 과정을 거친 건 100퍼센트 정치적인 제스처였다. 위원회를 이끌었던 닉슨과 조셉 매카시는 이 과정을 통해 위원회의 파워를 보여주며 자신들의 정치적 권위를 과시하려 한 것이었다. 그 결과 동료를 고발했던 많은 영화인들이 자괴감에 빠졌으며 그들의 인간성은 서서히 파괴되어갔다.
최악의 순간은 1952년에 왔다. 당대의 명감독이었던 엘리아 카잔이 증언대에 선 것이다. 그는 <신사협정>(1947)과 <워터프론트>(1954)로 두 번이나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비겁했다. 아예 그는 위원회가 원하는 이름을 그대로 댔는데 여기엔 함께 ‘액터스 스튜디오’를 설립했던 동료 리 스트라스버그도 있었다. 그렇게 8명의 동료를 고발한 후 그는 빠져나올 수 있었고 그 대가로 메이저 영화사에서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결국 1950년대 할리우드 영화인은 크게 세 부류였다. 첫 번째 부류는 추방당한 324명. 그들 중 일부는 채플린(영국), 줄스 다신(프랑스), 조셉 로지(영국)처럼 유럽으로 갔지만 대부분 생업을 접었다. <앤서니 애드버스>(1936)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던 게일 손더가드 같은 배우는 20년 동안 배우 활동을 하지 못하다가 70세에 컴백하기도 했다. 오스카 후보에 두 번이나 올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1947) 같은 영화로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존 가필드 같은 배우는 영화계에서 퇴출된 뒤인 1952년, 39세의 젊은 나이에 울화병으로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자살한 사람들도 많았고, 몇몇 작가들은 ‘프론트’, 즉 이름을 빌려주는 사람을 내세워 수수료를 주고 몰래 작품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할리우드 텐’ 가운데 한 명이었던 작가 달턴 트롬보는 <로마의 휴일>(1954)과 <브레이브 원>(1957)으로 두 번이나 오스카 각본상을 수상했는데, 모두 가명 혹은 프론트를 내건 상황이었다.
두 번째 부류는 블랙리스트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살아난 사람들이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1930)의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1931) <우리 생애 최고의 해>(1946)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던 프레드릭 마치, <시라노>(1950)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호세 페러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세 번째 부류가 바로 청문회에 출석해 동료들을 고발하고 자신은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왈가닥 루시’로 유명한 루실 볼을 비롯해 스털링 헤이드나 로이드 브리지스(제프 브리지스의 아버지) 등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할리우드 텐’의 일원이었던 에드워드 드미트릭 감독도 여기에 포함되며, <모두가 왕의 부하들>(1949)로 오스카 감독상을 수상했던 로버트 로젠 감독은 무려 57명의 동료를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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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에 불었던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의 결과는 참혹했다. 앞에서 언급했던 달턴 트롬보의 말처럼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우리 모두가 희생자”였던 셈이며, 이후 그 여파는 브로드웨이와 TV와 라디오로 번져나갔다. 이후 할리우드는 한동안 심각한 주제의 영화를 만들지 않았고, 도덕적 아노미 상태 속에서 지성 마비 현상을 겪었다. 1940년대 말부터 1960년대 말까지 ‘잃어버린 20년’이었던 것이다.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는 영화와 영화인들이 이념적 잣대로 평가될 때 벌어질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뼈저린 교훈이자 확실한 예방 주사가 되었다. 현재 수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자신의 정치적 지향성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건, 바로 그런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리석었던 역사에서 확실한 그 무엇을 배웠고, 그 역사를 다신 반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