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물갈이 움직임·사법 리스크는 숙제…KT “정관상 연임 성사 후엔 경영진 교체 우려 없어”
#국민연금 보유 지분 줄면서…KT 구현모 연임 가능성 굳히나
국민연금은 KT의 최대주주다. 국민연금은 오는 3월 KT 정기주주총회에서 지분 10.12%만큼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2021년도 말 12.68%과 비교하면 2.56%포인트가량 줄어든 숫자다.
국민연금은 최근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KT는 2002년 민영화된 기업으로 다른 지배주주가 존재하지 않는 탓에 국민연금의 입김이 강한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2022년 3월 주주총회 당시 구현모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던 박종욱 KT 각자대표(경영기획부문장·안전보건총괄)의 연임 역시 국민연금의 반대 끝에 결국 불발됐다. KT 한 관계자는 “당시 주주명부 마감 전에 일반 주주들한테까지 의결권 위임을 받으러 다니면서 우호 지분 확보에 총력을 다했으나 결국 국민연금과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박 전 이사가 자진 사퇴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올해는 지난해와 상황이 다르다. 주주 구성이 상당히 바뀐 탓이다. 특히 KT 입장에서는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대주주가 생겼다. 현대자동차·현대모비스가 대표적이다. KT는 2022년 9월 현대차·현대모비스와 자사주 맞교환을 했다. 구체적으로 현대차가 보유한 자사주 1.04%(221만 6983주)를 KT 자사주 4.56%(1201만 1143주)로, 현대모비스가 보유한 자사주 1.46%(138만 3893주)를 KT 자사주 3.1%(809만 4466주)로 맞교환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 기존 보유 지분 0.09%를 더해 현대차·현대모비스가 보유한 KT 지분은 7.79%로 크게 늘어났다. 자사주와 달리 맞교환한 주식은 의결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KT가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자사주를 처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KT와 현대차의 관계가 최근 한층 긴밀해졌다. 자율주행차나 도심항공교통(UAM) 분야 등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데다 임원진 간 인적 교류도 활발하다. 구현모 대표의 측근으로 꼽히는 윤경림 KT그룹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도 2019년부터 2년간 현대자동차 오픈이노베이션전략사업부 부장(부사장)으로 재직한 적이 있다. 서정식 현대오토에버 대표, 김지윤 현대오토에버 기술총괄사업부장 등도 모두 KT 출신이다.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곳은 또 있다. KT가 2022년 1월 신한금융지주 주식 총 2.1%를 4375억 원에 취득하고, 신한금융지주의 자회사인 신한은행이 기존 KT의 대주주였던 NTT 도코모(DoCoMo)가 보유하던 KT 주식 5.48%를 같은 금액에 인수했다. 신한은행이 가진 KT 총 지분은 5.58%에 이른다. KT가 우호지분 확보를 위해 우리사주에도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주장도 나온다. KT 한 직원은 “2022년 1월부터 성과급을 현금 대신 주식으로 받아서 1년 보유할 경우 취득가의 10%를 현금으로 추가 지급한다는 방침이 정해졌다. 연말까지 보유하고 있던 우리사주 지분 역시 지난해 주총처럼 의결권 위임을 받으러 다닐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문제는 정치·사법 리스크?
KT의 현재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지분을 모두 합하면 국민연금이 보유한 지분을 훌쩍 넘어선다. 하지만 상황을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정치·사법적 변수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권이 바뀌면서 구현모 대표를 포함해 지난 정권 인사가 포진한 KT를 ‘물갈이’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실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인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월 6일 KT 차기 대표 선정 과정을 ‘밀실 담합’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KT 내부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용산에서 구 대표 연임을 탐탁잖아 하는 바람에 김영식 의원이 총대를 멨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현대차가 KT랑 관계가 긴밀하다지만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을 최대주주로 두고 있는 신한금융지주 측은 더 몸을 사릴 가능성이 있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는 “신한은행이 KT 지분을 취득한 지난해 1월에는 분위기가 지금과 달랐다. 윤석열 정부가 공세를 가하기 시작하며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니까 한창 고민에 빠져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계 투자사 실체스터의 의결권 또한 변수로 꼽힌다. 실체스터는 의결권 행사 내역을 공시하지 않고 있지만 지난해 3분기 기준 5.0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연임에 성공하더라도 사법 리스크가 남아 있다. 구현모 대표는 과거 '상품권깡'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국회의원들에게 쪼개기 후원을 한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다. 약식재판에서도 이미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는 데다 2022년 6월 동일한 혐의로 재판에 선 다른 임원들 역시 유죄 판결이 확정돼 전망이 밝지 않다. 게다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지난해 12월 일감 몰아주기 혐의로 자회사인 KT텔레캅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점도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의 KT 관계자는 “실제 인력보다 인건비를 부풀려 청구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있는 걸로 안다. 이에 따라 공정위뿐만 아니라 검경에서도 두루 살피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조 측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KT 구성원 대다수가 가입한 제1노조는 연임 찬성 의사를 밝혔으나 복수노조인 새노조는 참여연대와 함께 ‘깜깜이’ 심사 논란을 불러 온 KT 이사회의 ‘현직 대표이사 연임 우선 심사’ 제도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다. KT 새노조 측은 “복수의 변호사들을 통해 위법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받았다. 주총이 끝난 후 연임이 성사될 경우 해당 내용을 기반으로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편에서는 KT의 이전 대표이사들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남중수, 이석채 전 대표이사는 정권교체기에 연임에 성공했으나 개인 비리로 구속 등 사법처리가 진행되며 불명예 퇴진한 바 있다.
이와 관련, KT 측은 “정관에 나와 있는 결격사유와 구현모 대표의 경영 계약서 내용을 살펴보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때만 면직 처리하도록 되어 있다. 지금 정식재판 진행 중인 건이 있지만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에 따라 원심보다 중한 형을 내릴 수 없게 되어 있으므로 연임 성사 후 경영진이 교체될 우려는 없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