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흐름상 그럴 듯하지만 ‘파괴력’ 적어 개연성 낮아…박민영 소환도 검찰이 보도 자제 요청한 사안
영화 ‘더 킹’에 나오는 양동철 검사(배성우 분)의 대사다. 실제로 검찰이나 경찰이 사건을 잘 익히고 있다가 여론의 관심을 돌려야 할 때 적절히 터트리는 것일까. 이 영화에선 한강식 전략부 부장검사(정우성 분)가 위기에 놓이자 여자 연예인의 성관계 동영상 사건을 터트리는 에피소드까지 등장한다.
정계에서 대형 악재가 터질 때마다 일부러 대형 연예 이슈를 터트려 여론의 관심을 돌리려 한다는 음모론은 꽤 오래전부터 계속돼 왔다. 최근 이런 음모론이 다시 힘을 받고 있다. 같은 날 오후와 저녁 시간 연이어 불거진 ‘곽상도 50억 무죄’ 이슈와 ‘유아인 프로포폴’ 이슈가 음모론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됐기 때문이다.
2월 8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준철)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곽상도 전 의원은 화천대유에서 근무하다가 퇴사한 아들 병채 씨가 퇴직금과 상여금 명목으로 50억 원을 수수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바로 세간의 관심이 ‘곽상도 50억 무죄’라는 이슈로 집중됐다.
그리고 이날 저녁 9시 반 무렵 TV조선이 30대 영화배우가 프로포폴 상습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고 단독 보도했다. 그리고 90여분 뒤인 밤 11시 즈음 유아인의 소속사 유에이에이가 “유아인 씨는 최근 프로포폴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며 “모든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으며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 소명할 예정”이라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이렇게 2월 8일은 오후 내내 ‘곽상도 50억 무죄’가 이슈를 주도하다 늦은 밤부터 9일 내내 ‘유아인 프로포폴’이 이슈를 주도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이런 상황을 두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음모론이 강하게 대두됐다. ‘곽상도 50억 무죄’라는 민감한 이슈에서 여론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유아인 프로포폴’을 터트린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두 이슈가 불거진 시간 흐름만 놓고 보면 나름의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사건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우선 유아인이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에서 소환 조사를 받은 것은 2월 6일로 보도되기 이틀 전이다. 가장 중요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마약류 정밀 감정 결과는 2월 10일에서야 나왔다. 소변에서 일반 대마 양성 반응이 나오면서 프로포폴보다 더 중대한 대마초 사건으로 수사 방향이 급변했다. 사건이 김치라면 익기는커녕 아직 재료 준비만 하고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기도 전 상태였다. 경찰 입장에선 소환 사실을 미리 알아내 2월 8일에 단독 보도한 TV조선이 얄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음모론의 시각에선 ‘그만큼 급했다’고 볼 수도 있다. ‘곽상도 50억 무죄’가 워낙 크게 이슈가 되자 아직 마약류 정밀 감정 결과도 나오지 않은 ‘유아인 프로포폴’ 사건을 급하게 터트린 거 아니냐는 주장이다.
결정적인 한계는 ‘유아인 프로포폴’ 이슈가 ‘곽상도 50억 무죄’를 덮을 만큼 파괴력 있는 이슈가 아니라는 점이다. 프로포폴 상습 투약은 분명 심각한 사안이지만 연예계에서 그리 치명적인 사안은 아니다. 오히려 연예인의 휘말리는 각종 물의 가운데 가장 연예계 복귀가 빠른 사안 가운데 하나가 프로포폴 상습 혹은 불법 투약이다. 실제로 ‘유아인 프로포폴’는 금세 대중의 관심에서 밀려났지만 여전히 ‘곽상도 50억 무죄’ 이슈는 힘을 잃지 않고 그 다음 주까지 계속 화제가 됐다.
그 이후 상황을 보자. 10일에는 유아인 대마 양성 반응이 이슈가 됐고, 하이브가 이수만의 SM엔터테인먼트 지분을 인수했다는 소식도 크게 이슈가 됐다. 그렇지만 하이브의 SM 지분 인수 같은 거액이 오가는 기업 행위는 여론 돌리기에 활용되는 이슈와 무관할 수밖에 없다.
14일에는 ‘박민영 검찰 조사’ 이슈가 화제가 됐다. 배임,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 빗썸 실소유주 의혹을 받는 강종현 씨(41) 관련 사건에 참고인 신분으로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검사 채희만)에서 조사를 받은 것이다. 강 씨는 박민영의 옛 연인으로 강 씨의 전환사채 차명 거래에 박민영의 이름이 사용돼 검찰은 박민영이 강 씨 부당이득에 관여했는지 여부 등을 두고 소환 조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검찰이 박민영을 출국 금지했다는 소식까지 더해졌다.
사실 14일에 더 화제가 된 이슈는 ‘40대 영화배우 A 씨의 음주운전’이었다. 연예인 음주운전이 워낙 화제성이 큰 데다 이니셜 보도는 네티즌의 이니셜 찾기를 유발해 화제성을 더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몇몇 배우들이 소속사를 통해 음주운전 의혹을 공식 부인하는 상황까지 이어지며 이슈를 더 키웠다.
이렇게 14일 하루 연예계 이슈로 사회가 떠들썩했는데 음모론의 시각에서 보면 하루 전인 13일 오후 검찰이 항소하면서 ‘곽상도 50억 무죄’가 다시 이슈가 된 다음날이 바로 14일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상황은 전혀 다르게 보인다. 우선 ‘40대 영화배우 A 씨의 음주운전’ 이슈는 오해가 빚은 해프닝에 불과했다. 실제로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40대는 영화배우가 아니었다. 단지 이름이 같은 동명이인이었다.
박민영 검찰 소환은 오히려 서울남부지검이 출입 기자들에게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던 사안이다. 박민영 소환 조사 이후 관련 내용이 보도되면 상황이 악화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서울남부지검이 기사화되지 않게 하기 위해 상당히 애를 썼다는 후문이다. 만약 ‘곽상도 50억 무죄’와 같은 이슈를 덮을 목적이었다면 굳이 보도 자제를 위해 애를 쓸 이유가 없다. 다만 일반 시민들은 이런 검찰의 움직임을 알 수 없는 터라 음모론에 더 힘이 실리고 만 셈이다.
사실 이런 음모론이 주기적으로 불거지는 데에는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이 이슈로 이슈를 덮으려 했던 일들이 실제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9년 4월 불거진 주지훈 마약 사건이다. 2009년 4월 26일 경찰은 주지훈 등 연예인 연루 마약사건 중간 브리핑을 했다. 아직 수사가 끝나지 않은 사안에 대한 이례적인 중간 브리핑이었다. 기자들도 관련 질문을 했는데 이에 경찰도 “통상 수사를 완결해서 검찰 송치 시점에 발표를 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심지어 “연예인 7~8명이 더 연루돼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혀 세간의 이슈가 주지훈 등 연예인 마약 사건에 집중됐는데 결국 추가 연예인 연루자는 없었다.
이날 경찰 중간 브리핑은 장자연 부실수사 이슈를 덮기 위함이라는 게 당시 언론의 대체적인 평가였다. 이틀 전인 4월 24일 경찰은 ‘장자연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는데 수사 내내 불거진 각종 의혹이 대부분 해소되지 못한 부실 결과였던 터라 경찰에 비난 여론이 집중됐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김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