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윤진식 등 깜짝 지원에 ‘낙하산’ 가능성 촉각…‘사법리스크’ 없는 윤경림 사장 등 내부 도전도 만만찮아
#KT 대표 지원자 면면 살펴보니
KT는 지난 20일 오후 1시 차기 대표 지원서 접수를 마감했다. 정치권 인사로는 권은희 전 새누리당 의원,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의원,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김종훈 전 새누리당 의원, 윤종록 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등이 지원했다. 김진홍 전 KT스카이라이프 경영본부장, 남규택 전 KT 마케팅부문장, 송정희 전 KT 부사장, 임헌문 전 KT매스총괄 사장, 한훈 전 KT 경영기획부문장, 박윤영 전 KT기업부문장 등 전직 KT 출신들도 KT 대표에 도전장을 던졌다. 박종진 IHQ 부회장, 최두환 전 포스코ICT 사장 등 KT 근무 경력이 있는 외부 인사도 지원했다.
KT 내부에서는 구현모 대표를 포함한 KT 본사 부사장급 이상 인사 16명이 대표에 지원했다. 구현모 대표의 심복으로 불리는 윤경림 KT그룹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내부 인사 16명과 외부 인사 18명, 총 34명이 공개 경선을 치르게 됐다.
외부인사는 KT 출신 11명, 순수 외부인 7명으로 나뉜다. 여권 인사들이 대거 지원한 점이 눈에 띈다. 대부분 새누리당이나 자유한국당 시절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최근 선거에서 공천 탈락하거나 낙선했던 경험이 있다. 주요 정치권 인사로는 권은희 전 의원, 김성태 전 의원, 김종훈 전 의원, 윤진식 전 장관 등이 꼽힌다. 권은희 전 의원은 일찌감치 1호 지원자임을 공개하고 “구현모 대표의 디지코를 이어 ‘디지코 2기’를 이끌겠다”는 출사표까지 던졌다. 권 전 의원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KT에서 24년간 일했다. KT하이텔 경영부문장, KT네트웍스 전무 등을 역임했고 2012년 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김성태 전 의원은 한국정보화진흥원장(NIA)을 역임했고, 20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활동했다. 현재는 대통령 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권 전 의원과 김 전 의원은 IT 관련 경력을 지닌 여권 인사로 이전부터 차기 KT 대표 하마평에 올랐다.
반면 김종훈 전 의원과 윤진식 전 장관은 이번 공개 경선에서 깜짝 등장한 인사로 평가 받는다. 외교관 출신의 김종훈 전 의원은 과거 한미 FTA 수석대표를 맡으면서 협상을 주도한 인물로 유명하다. 현재는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으로 활동 중이다.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관세청장, 경제수석비서관, 대통령실 정책실장 등을 역임했다. 역시 새누리당에서 18·19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이 밖에 박종진 IHQ 부회장은 기자 출신으로 2018년 재보궐 선거, 21대 총선에 출마했지만 연이어 낙선했다. 윤종록 전 차관은 KT 부사장까지 역임한 인물로 박근혜 정부 시절 ‘창조경제’ 추진의 핵심 인사다.
#'윤심' 인물 드러나나
정치권 인사가 KT 대표에 대거 지원하자 재계에서는 '정권발 낙하산'의 실체가 드러났다고 평가한다. 김종훈 전 의원과 윤진식 전 장관의 경우 IT 관련 경력이 없음에도 KT 대표에 지원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통신업계에서 “윤심을 받은 인물이 드디어 등장했다”고 분석할 정도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권은희·김성태 전 의원은 일찌감치 KT 대표 지원 사실을 밝히고 관련 경력을 강조해왔지만 사실 정권이 낙점한 인물이라기에는 약한 감이 있었다”며 “김종훈 전 의원과 윤진식 전 장관이 정권이 염두에 둔 인물이 아니겠냐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KT 대표의 지원 자격은 △경영·경제에 관한 지식과 경력이 풍부하고 △기업경영을 통한 성공 경험이 있으며 △최고경영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정보통신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보유한 사람이다. 김종훈 전 의원과 윤진식 전 장관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지원한 이유는 ‘믿을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는 뒷말이 나온다.
KT 대표 지원자들이 상대적으로 고령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지원자들의 평균 연령대가 1959년생으로 올해 만 64세다. 외부 지원자 18명 중 13명이 60대 이상인 것이다. 공교롭게도 ‘윤심’을 받았다는 말이 나오는 윤진식 전 장관과 김종훈 전 의원은 각각 77세, 71세로 '유이한' 70대다.
한편, 권은희 전 의원의 경우 과거 인터뷰가 재발굴돼 화제에 오르고 있다. 그는 지난 2013년 말 “통신 사업과 무관한 외부 인력이 특채로 채용돼 주요 보직을 담당해 KT 구성원들이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며 “의사 결정권이 있는 경영층의 통신 분야 전문성 부족이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인터뷰 시점은 박근혜 정부가 이석채 전 KT 회장의 사퇴를 종용하던 때다. 시간이 흘러 현 KT 대표 선임에 똑같이 적용 가능한 발언이다.
#내부 지원자도 만만찮네
구현모 대표의 경쟁자는 정치권 인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KT의 소위 ‘올드보이’들도 만만치 않은 상대다. 임헌문 전 KT매스총괄 사장, 박윤영 전 KT기업부문장(사장), 최두환 전 포스코ICT 사장 등은 2019년 KT 회장 선임 과정에서 구현모 대표와 최종 경선에 올랐던 인물들이다. 특히 박윤영 전 사장은 당시 면접에서 최고점을 받았지만 이사회 최종 투표에서 1표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내부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본사 부사장 급 이상 임원 16명 중 사장급은 강국현 커스터머부문장, 박종욱 경영기획부문장, 윤경림 그룹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사장)이 있다. 윤경림 사장의 경우 황창규 전 KT 회장과 구현모 대표의 ‘복심’으로 불린다. 황 전 회장은 미래융합전략실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CJ그룹에서 근무하던 윤 사장을 영입했다. 윤 사장은 2019년 현대자동차로 이직했지만 2021년 구 대표의 부름에 다시 복귀해 그룹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을 맡고 있다.
윤경림 사장은 구현모 대표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꼽히는 ‘국회의원 뇌물공여’ 혐의에서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구 대표를 비롯한 KT 임원들은 황 회장 시절 ‘상품권깡’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국회의원들에게 쪼개기 후원을 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KT 법인은 2심에서도 벌금형을 선고 받았고 구 대표도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구 대표 입장에서는 순수 능력과 도덕성 기반으로 경쟁했을 때 외부 낙하산보다도 두려운 상대가 윤 사장”이라며 “윤 사장이 차기 대표 경선에 진심으로 임한다면 구 대표는 브루투스를 보는 카이사르의 심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현모 대표도 나름대로 반전을 노리는 모양새다. KT는 최근 몽골 정부와 ‘광물자원과 디지털 금융 관련 사업 협력을 위한 복수의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구 대표는 오는 2월 27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통신 전시회 MWC를 찾을 예정이다. KT의 면접 대상자 선정일은 2월 28일(한국시각)이다. 비슷한 시점에 구 대표가 MWC에서 기조연설을 한다는 점을 특기할 만하다.
그러나 정부는 KT와 관련해 묘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당초 MWC에서 토론에 나서려던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장관은 관절염을 이유로 불참하기로 했다. 이 장관 대신 참가 예정이었던 홍진배 과기정통부 네트워크정책실장까지 통신경쟁TF 등 현안대응을 이유로 불참한다. 구 대표의 기조연설은 이 장관 연설 직후에 이뤄질 예정이었다. 이 때문에 통신업계에서는 과기정통부가 구 대표와의 만남을 꺼리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오가고 있다. 그러나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이종호 장관의 MWC 불참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일 뿐”이라고 구현모 대표와의 불화설을 일축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