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러시아 데이터센터 구축 공들였지만 전쟁에 발목…구 대표 연임도 변수, KT “상황 지켜보는 중”
KT는 수년 전부터 러시아 시장에 관심을 보였다. KT는 2018년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연해주 주정부와 ‘스마트시티 구축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KT는 이어 지난해 9월 러시아 극동개발공사와 건강검진센터와 IDC(인터넷데이터센터) 구축 사업과 관련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KT의 러시아 진출은 올해 들어 급물살을 탔다. KT는 지난 1월 러시아 현지에 해외 투자 업무를 담당하는 법인 ‘KT RUS LLC’를 설립했다. 2월에는 러시아 1위 통신 업체인 MTS와 사업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KT는 당시 “IDC 구축 및 운영노하우를 바탕으로 러시아 내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운영하는데 협력할 것”이라며 “MTS가 플랫폼 사업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KT 기가지니를 활용한 MTS 인공지능(AI) 스마트 스피커 사업협력을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KT는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IT 역량을 강화하고, 유럽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2020년 12월 보고서를 통해 “한국과 러시아 모두 IT 기술 혁신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성장잠재력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국가 차원의 정책적 노력을 쏟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 방향이 일치한다”며 “기술적 측면에서 러시아는 IT 소프트웨어, 한국은 IT 하드웨어 부문에 강하므로 협력 환경이 조성될 경우 민간의 자발적 협력이 수월할 뿐 아니라 협력의 지속성도 보장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러시아가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가 시작되면서 러시아 현지 사업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러시아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진 것도 기업들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결국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는 러시아에서 사실상 철수했고, 현대자동차도 러시아 내 생산 및 판매를 중단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러시아 제재에 힘을 싣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3월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를 만나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고, 제재에 동참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현 상황에서 KT가 러시아 사업을 강행하면 비판 여론에 휩싸일 수 있고,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KT는 최근 러시아에 데이터 서비스 업체 ‘KT Primorye IDC(Primorye)’라는 법인을 설립했다. KT는 지난해 9월 러시아 극동개발공사와 업무협약을 맺은 후 법인 설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러시아 당국의 허가가 늦어지면서 최근에야 Primorye 법인이 설립된 것이다. KT에 따르면 법인은 설립됐지만 국제 정세로 인해 본격적인 사업은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KT 홈페이지 내 해외 법인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해 12월 설립된 필리핀 법인 정보는 확인되지만 러시아 법인과 관련한 정보는 찾아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로는 러시아 사업 관련 내용의 외부 공개를 자제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KT가 러시아 진출을 포기하지는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시에 따르면 알렉세이 오를로프 예카테린부르크 시장은 지난 7월 KT 대표단과 업무 회의를 가졌다. KT와 예카테린부르크시는 이날 스마트 자동주차 시스템, 의료센터 도입 등을 논의했다. 또 Primorye 설립 절차를 진행한 것도 러시아 시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KT 관계자는 “지난해 9월 러시아 현지에 헬스케어, IDC 사업을 추진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으며 (Primorye는) 협력 연장선상에서 설립된 법인”이라면서도 “국제정세에 따라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구현모 KT 대표와 러시아의 인연도 깊다. KT는 2018년 9월 영국 어센드케어와 러시아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 진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때 KT 측 대표로 참석한 사람은 당시 커스터머&미디어부문장이었던 구 대표였다. 지난해 10월 KT 인터넷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할 때도 구 대표는 러시아 출장 중이었고, 결국 러시아 현지에서 서면으로 사과문을 작성했다.
구현모 대표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구 대표는 연임 의사를 밝혔지만 연임에 실패하면 KT의 러시아 사업에도 영향이 예상된다. 구 대표의 연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구 대표 취임 이후 KT의 실적이 개선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지만 ‘사법 리스크’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 KT 전·현직 임직원들은 국회의원 불법 후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구 대표 역시 1500만 원의 벌금형 약식 명령을 받았지만 이후 정식 재판을 청구해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KT새노조는 성명을 통해 “최종적으로 구현모 대표의 유죄판결이 내려질 경우 결국은 이사회가 주주와 온 국민을 우롱한 것이 되고 말 것”이라며 “이사회가 구 대표의 연임을 결정한다면 그에 따른 모든 리스크는 사외이사 전원이 구 대표와 함께 연대책임질 것을 결의한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단독] 포천시 물류센터 건립 나선 KT의 속내
KT는 지난 5월 특수목적법인(SPC) 포천정교리개발을 설립하고 물류센터 건립에 나선다. 포천정교리개발은 KT 측이 지분 80.9%를 갖고 있으며 KT 퇴계원지사에 본사를 두고 있다.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포천정교리개발의 사업목적은 △포천시 가산면 정교리 2XX-X 일원 토지 지상 물류센터의 건축·개발·매각·분양 등 개발 사업 △개발 사업을 위한 회사 자산의 매입·취득·투자·관리 △회사 자산의 관리·운영·임대·처분 등이다. 포천시 가산면 정교리 2XX-X는 과거 기숙학원이 있었던 곳이다. 해당 기숙학원은 지난해 가평군으로 이전했고, 기존 부지와 건물은 부암산업이 매입했다.
KT는 물류사업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KT는 지난해 12월 쿠팡과 협력을 맺고 △물류센터 소방안전 분야의 지능화 및 디지털화 △쿠팡 물류센터 대상 KT 소방안전 DX솔루션 적용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올해 6월에는 콜드체인 전문 물류 기업인 팀프레시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KT는 포천정교리개발을 통해 물류 사업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개발 계획이 발표된 것은 아니다. 일요신문이 지난 24일 정교리 2XX-X를 방문해보니 기존 건물은 철거됐지만 특정 공사가 진행 중인 것도 아니었다.
이와 관련, KT 관계자는 “포천정교리개발은 포천시 지역 물류센터 개발을 위해 설립한 SPC로 KT에스테이트가 지분 참여하고 있다”며 “(현 토지 소유주인) 부암산업은 KT와 관계가 없으며 부암산업 측에서 인허가를 완료하는 대로 물류센터를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