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주자로 나서 구쯔하오 9단 잡고 우승 결정…“판팅위 다승 기록 넘어 한국에 더 많은 우승 안기고파”
신진서 9단이 중국 구쯔하오 9단을 꺾고 농심배 세계바둑 대회에서 한국에 우승을 안겼다. 지난 24일 막을 내린 제24회 농심배 세계바둑최강전 최종국에서 신진서가 중국 구쯔하오에게 백을 잡고 200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이로써 한국은 국가대항전인 농심배에서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이 농심배에서 3연패를 달성한 것은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의 전성기 시절인 1∼6회 대회 연속 우승과 10∼12회 대회를 제패한 데 이어 세 번째다.
#3년 연속 자신의 손으로 우승 결정지어
박정환 9단이 일본의 이야마 유타 9단과 커제 9단을 꺾을 때만 해도 올해 농심배 우승은 떼어논 당상처럼 보였다. 일본은 이미 전원탈락한 상태고, 중국도 남은 주자가 구쯔하오 9단밖에 없었기 때문. 그에 반해 한국은 박정환, 변상일, 신진서 등 국내랭킹 1~3위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 구쯔하오가 이 벽을 넘긴 어려워 보였다. 게다가 셋 모두 구쯔하오과의 상대전적도 앞서 있어 더 그렇게 생각됐다.
그런데 박정환이 3일 연속 계속되는 대국에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지 못하며 낙마하더니 변상일도 중반 인공지능 예상승률 92%를 지키지 못하고 무너지면서 주장 신진서의 출장이 불가피해졌다.
심상찮은 분위기에서 신진서가 등판했지만 걱정은 기우일 뿐이었다. 초반 좌변에서 불을 뿜은 전투에서 신진서의 수읽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밀했고 반대로 신진서를 만난 구쯔하오는 전과는 달리 힘을 쓰지 못했다.
승부는 한순간 갈렸다. 좌변에서 구쯔하오의 방향착오를 포착한 신진서는 뛰어든 흑에 맹공을 퍼부으며 승기를 잡았다. 일찌감치 형세가 불리해진 구쯔하오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뒤집기를 노렸지만 신진서는 깔끔한 마무리로 추격을 허용하지 않고 항서를 받아냈다.
대국 개시 2시간 45분, 200수 만에 거둔 통쾌한 불계승이었다. 신진서는 구쯔하오와의 상대전적도 6승 4패로 차이를 벌렸고 ‘세계랭킹 1위’, ‘농심배 끝판왕’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목표는 농심배 최다승, 최대한 우승 이끌고 싶어
신진서의 농심배 매조지는 이번이 세 번째다. 2년 전 22회에서는 막판 5연승으로 한국 우승을 결정했고, 23회 때는 4연승으로 우승을 결정한 바 있다. 2연속 대역전 우승을 일궈낸 신진서는 올해도 자신의 손으로 우승을 결정하며 이창호 9단에 이은 또 하나의 ‘농심배 수호신’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농심배에서 우승을 유난히 강조하는 것은 한중일 국가대항 단체전인 이 대회는 준우승이나 3위는 상금이 없어서다. 농심배는 우승국이 5억 원의 상금을 독식한다. 즉 우승이 아니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신진서는 대국 후 “초반은 잘 모르는 변화가 나와 어려웠고 중반 구쯔하오에게 기회가 있었던 것 같다”며 “상대가 그 기회를 놓치면서 확실히 좋다고 보았고, 이후 큰 위기는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농심배 10연승을 이어간 신진서 9단과 열전을 치른 현장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먼저 우승 소감부터 들려 달라.
“올해는 선배 기사들이 잘해 주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3 대 1로 유리하게 싸웠던 것 같다. 그래도 많이 긴장됐는데 어쨌든 결과가 좋아 다행이다. 내년에도 끝까지 잘해서 (우승을) 결정짓고 싶다.”
―승리를 확신한 장면은 언제쯤인가.
“중반부터 잘 풀려서 일찍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종반에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 반발이 있었다. 그래서 1%라도 찝찝한 길을 걸었던 것 같다. 다음에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면 아마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에 동료들이 연패를 당해 부담이 컸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굉장히 컸다. 연승하며 마지막 대국을 맞을 때는 연승을 한 게 있어 조금 괜찮다. 그런데 이번에 제가 만약 져버리면 앞서 동료들의 성과를 말아먹는다고 해야 하나(웃음), 결국 우승을 못하는 거라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상대보다 체력적으로 나았고, 준비기간도 있어 내용은 괜찮았던 것 같다.”
―안 나올 수도 있었다. 어떤 심정으로 기다렸나.
“처음엔 둘 수도, 안 둘 수도 있다고 봤다. 중간에는 안 두겠지 싶었는데 차례가 왔다. 하지만 3 대 1에서 1 대 1 승부가 된 것이라 체력적인 면에서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해 큰 문제는 없었다.”
―구쯔하오 9단과의 대국을 앞두고 어떤 준비를 했나.
“포석 연구를 조금 했다. 사실 구쯔하오 9단이 포석을 정해놓고 두는 스타일이 아니라 특별한 준비는 없었다.”
―어제 변상일 9단이 지는 것을 보았을 텐데, 어땠는지.
“중요한 승부라 급박한 전투는 피하려고 했는데 두다 보니 초반부터 전투 바둑이 됐다. 하지만 제가 유리한 전투라 마지막까지 깔끔하게 정리가 됐다.”
―농심배에서만 10연승이다. 목표가 있다면.
“과거 이창호 사범님이 말도 안 되는 승률을 올렸는데 그 승률은 깨질 수 없는 기록이다. 다승 부문은 판팅위 9단이 1위인 것으로 아는데 제가 그 기록을 넘어 한국팀에 더 많은 우승을 안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