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중국 등 해외 항공사에 넘기면 인수 효과 축소 우려…“인천공항 제4 활주로 개설 추가 슬롯 기대” 다른 의견도
대한항공은 지난 3월 1일 영국 경쟁당국(CMA)으로부터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한 기업결합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로써 대한항공은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의 승인만 받으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대한항공은 “이번 영국 경쟁당국의 승인 결정이 진행 중인 미국, 일본, EU의 심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영국의 승인을 두고 국내 항공 산업 경쟁력을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현재 인천-런던 노선에 각각 주당 10개, 7개 슬롯을 보유하고 있다. 두 항공사의 슬롯을 합치면 총 17개다. 그런데 대한항공은 기업결합 승인 조건으로 17개 인천-런던 슬롯 중 7개 슬롯을 영국 버진애틀랜틱에 넘기기로 했다.
대한항공이 앞서 지난해 12월 중국 경쟁당국의 승인을 받을 때도 일부 슬롯을 반납해야만 했다. 당초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인천-장자제, 인천-시안, 인천-선전, 부산-칭다오, 부산-베이징 등 5개 노선이 경쟁 제한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중국 경쟁당국은 해당 5개 노선에 더해 인천-상하이, 인천-베이징, 인천-창사, 인천-톈진 등 4개 노선에도 경쟁 제한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대한항공은 9개 노선에 대한 슬롯을 일부 반납하기로 한 후 중국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대한항공은 중국 노선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몇 개 슬롯을 반납할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대한항공이 슬롯을 반납하면 아시아나항공 인수 효과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한화투자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나머지 국가 경쟁당국도 유사하게 독과점 노선에 대한 슬롯 반납을 요구할 전망”이라며 “이 같은 조건부 승인 이후 합병 시 ‘1+1<2’ 효과 및 인수·통합 비용 발생 등으로 단기적으로는 투자 매력이 다소 떨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내부에서는 슬롯을 반납하면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는 성명을 통해 “아시아나항공의 보유 노선은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확보하고 지켜왔을 뿐 아니라 국가가 어렵게 확보하고 지켜온 주권의 영역”이라며 “대한항공 경영진이 무슨 권리와 자격으로 해외기업에게 넘겨주고 있는가. 이에 따라 항공기도, 노동자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로 인한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해왔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 관계자는 “영국 경쟁당국의 심사기준과 절차에 따른 것”이라며 “슬롯이 줄어드는 것과 구조조정은 전혀 상관이 없으며 신규 노선에 취항해도 되고, 기존 다른 노선을 강화해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천-런던 노선과 같은 수요가 높은 슬롯을 반납하고 상대적으로 수요가 낮은 신규 노선에 취항하면 대한항공의 수익성 악화는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대한항공의 슬롯 반납은 대한항공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대한항공의 인기 노선 슬롯이 해외 항공사에 넘어가면 그만큼 해외 항공사의 점유율이 상승하게 된다. 항공 산업은 일종의 기간산업이기 때문에 국내 항공사가 최대한 많은 슬롯을 확보해야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제 중국 슬롯의 경우 국내 저비용항공사(LCC)에게도 기회가 열려있다. 국내 LCC 업체 한 관계자는 “중국 슬롯에 관심이 있으며 어떤 형태로 재배분될지는 모르겠지만 기준이 구체적으로 나온다면 당연히 준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만 한다. 항공업계에서는 한국-중국 노선은 알짜로 평가받기에 중국 항공사도 해당 슬롯에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보고 있다. 더구나 국내 LCC 중 에어서울, 에어부산, 진에어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자회사이므로 해당 슬롯을 배분받을 수 없다. 그나마 중국은 국내 LCC에게 기회가 열려있지만 영국은 버진애틀래틱이라는 특정 항공사에 슬롯이 배분돼 국내 항공사는 참여 시도조차 할 수 없다. 버진애틀랜틱이 인천-런던 노선을 포기하거나 일정 기간 운항하지 않아야만 국내 항공사들에게 슬롯 취득 기회가 다시 열리게 된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런던 노선의 경우 아쉬운 부분이 아무리 장거리라도 국내 LCC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줄 수도 있는데 너무 합병이 되는 쪽으로만 생각한 것 같다”며 “특히 외국에서는 슬롯을 비싼 가격에 거래하기도 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산을 유출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부도 LCC가 장거리 노선 취항을 시도할 경우 적극 지원한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반납한 슬롯에 들어갈) 대체 항공사나 시정 조치 등에 대해서는 각국의 경쟁당국이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면서도 “국내 LCC가 아시아나항공 자리를 대신할 수 있도록 육성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LCC가 장거리 노선을 취항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항공업계 다른 관계자는 “단거리 노선과 장거리 노선은 항공기나 조종 방식 등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LCC가 장거리 노선을 취항하는 것은 새로운 회사를 차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LCC들은 리스크를 떠안고 싶어 하지 않는 분위기고, 그만한 투자를 할 여력도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대한항공이 다른 장거리 노선인 미국과 EU 노선의 슬롯을 반납할 경우 외국 항공사가 이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항공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의 미국과 EU 슬롯 일부 반환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2월 9일(현지시각) “소식통에 따르면 EU 경쟁당국은 바르셀로나, 프랑크푸르트, 파리, 로마 등 4개 노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에선 슬롯 반납에 대한 우려가 과도하다는 의견도 있다. 양승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슬롯 이전 및 운수권 양도는 이를 요구하는 경쟁사가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노선 축소가 될 것이라는 우려는 과도하다”며 “오히려 인천국제공항 제4 활주로 개설로 연간 수용 능력이 기존 연간 7200만 명에서 1억 600만 명으로 확장됐기 때문에 인천공항의 추가 슬롯 개설도 기대되고, 항공 회담을 통해 추가 운수권 확보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