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모양·옷차림 등 목격 진술 달라…박준영 변호사 “각 목격자 진술 형성 과정 다시 봐야”

무기수 이민형 씨의 재심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목격자들의 진술이 형성된 과정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 사람이 목격한 남성이 과연 ‘동일인’이 맞느냐는 것이다.
#짙은 남색 체육복을 입은 20대 중반의 남자
목격자들은 각각 다른 곳에서 범인으로 추정되는 자를 목격했다고 했다. 먼저 A 씨는 사건 발생 당일인 1998년 1월 3일 오후 3시쯤, 창문 너머로 장미비디오 가게 문을 열고 나오는 한 남성을 본 목격자다.
A 씨 진술조서(1998. 1. 4.자)경찰은 A 씨의 진술을 토대로 용의자 차림새를 ‘짙은 남색 체육복’으로 특정했다. A 씨는 남자가 비디오테이프를 반납하고 오는 것처럼 매우 태연해 보였다고 했다. 주머니에 손까지 넣은 채 말이다. 이는 혼비백산 상태였기에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았다는 이 씨의 자백과는 사뭇 다르다. 세탁실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A 씨는 남성에게서 특이점을 느끼지 못해 곧바로 창문을 닫았다고 했다. 이런 까닭에 A 씨의 진술엔 용의자의 생김새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담기지 않았다.
문: 장미비디오에서 어떤 남자가 나오던가요.
답: 키가 약 170cm 정도이고 머리형은 스포츠보다 약간 긴 편이고 짙은 남색 종류의 추리닝을 입었으며 나이는 약 20대 중반 정도인 것 같았습니다.
문: 그때가 몇 시쯤 되었는가요.
답: 15:00가 조금 넘었는 것 같습니다.
(수사기록 85쪽)
문: 그 남자가 손에 무엇을 들고 있지 않았는가.문제는 사건의 직접 목격자인 피해자 아들이 증언한 범인의 모습과 A 씨가 본 남자의 외양이 다소 달랐다는 점이다. A 씨의 진술을 정리하면 용의자는 ‘스포츠머리보다 약간 긴 머리’에 ‘짙은 남색 종류의 추리닝’을 입었으며 ‘손에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키 170cm의 20대 중반 남성’이었다.
답: 손에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습니다. 왜 그것을 알고 있는가 하면 그때 그 남자가 비디오 가게 문을 닫고 나서 약국 쪽으로 내려갈 때 두 손을 추리닝 주머니에 넣고서 내려갔습니다.
문: 남자가 나올 때 어떠한 행동을 하면서 나오던가요.
답: 제가 보았을 때는 아주 자연스럽게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서 갖다주고 나오는 사람처럼 가게 문을 열고 나와서 닫고 난 후 약국 쪽으로 걸어서 내려갔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갔다면은 제가 더 유심히 보았을 것입니다. 아주 태연하였습니다.
(수사기록 85~86쪽)
반면, 피해자의 아들은 범인에 대해 ‘짧은 스포츠머리’에 ‘검정색 옷을 입고 검정색 구두를 신은 아저씨’로 ‘가방을 들고 와 돈을 챙겨 도망쳤다’고 진술한 바 있다. A 씨가 본 남성이 범인이라면 피해자 아들이 본 가방은 가게 문을 연 순간 사라진 셈이 된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는 “태연히 걸어 나왔다는 진술에 비춰보면 A 씨가 본 남자는 범행 전 가게를 찾은 일반 손님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며 “A 씨는 자신이 본 남성을 범인으로 특정하거나 의심된다는 진술을 한 적이 없고, 남성을 본 시간도 얼굴의 특징도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못했다. 결국 ‘체육복을 입은 남성이 범인’이라는 초동 추정은 그 근거가 매우 취약하다”고 강조했다.
A 씨의 진술은 당시 수사기관이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특정하는 최초 단서로 채택돼 이후 수사의 출발점이 됐다는 점에서, 해당 진술이 어떤 논리로 신빙성을 인정받았는지는 확인이 더 필요하다.
#카센터 앞 가죽점퍼를 입은 남자
두 번째 목격자는 B 씨다. 학원을 가던 B 씨는 사건 발생 약 1시간 20분 뒤인 오후 4시 30분쯤 카센터 모퉁이에서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는 한 남성을 봤다고 했다.
B 씨 진술조서(1998. 1. 8.자)B 씨는 자신이 본 남성에 대해 “남들보다 인상이 너무 강해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앞서 남성의 외양에서 특별한 점을 느끼지 못해 곧바로 창문을 닫았다는 A 씨와는 대조적이다.
문: 그 일시 및 장소를 말하시오.
답: 1998. 1. 3. 16:30경 대구시 남구 대명11동 소재 ㅇ카센터의 모퉁이입니다.
문: 어떤 남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던가요.
답: 곤색 체육복에 상의는 가죽잠바 같은 것을 입고 있고 쪼그려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주위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수사기록 201쪽)
문: 어떻게 하여 그 사람을 보게 되었는가요.B 씨의 진술이 작성된 것은 이 씨가 체포된 지 사흘 뒤인 1월 8일이다. 용의자가 곤색 체육복을 입었다는 전단지 내용을 본 뒤 카센터 앞에서 본 남자를 떠올리게 됐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사건 이후 노출된 정보가 목격자의 기억에 끼어들어 원래 기억과 뒤섞이는 현상을 ‘사후정보효과’라고 한다.
답: 제가 학원을 가면서 보니까 인상이 너무 남들보다 강하게 느껴져서 제가 똑똑히 보아 두었습니다.
(수사기록 201쪽)
문: 진술인이 제보를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어쩌면 A 씨와 B 씨가 같은 사람을 봤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곤색 체육복은 당시 학교에서 흔히 맞춰 입던 색상으로, 주거지 인근에서 일상복처럼 착용하던 통상적 차림이기도 했다.
답: 저녁에 학원에 갔다가 온 후 전단지가 집에 있는 것을 보니까 곤색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는 것을 보고 혹시 범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제보를 하게 되었습니다.
(수사기록 201쪽)

또 하나 의문은 B 씨가 본 남성의 행동이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범인은 피해자를 흉기로 13회나 찔러 살해했다. 몸이나 옷에 피가 묻었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범행 직후 서둘러 현장을 벗어나려 했을 것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B 씨의 진술대로라면 범인은 범행 1시간 20분이 지난 후에도 현장 주변에 머물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박 변호사는 “이 사건은 대낮에 발생한 강력범죄로, B 씨가 남성을 목격한 장소 역시 사람들 왕래가 예상되는 지점으로 보인다”며 “범행으로부터 1시간이나 지난 시점에 범인이 현장 인근에 머물렀다는 설명이 자연스러운지 의문이 남는다”고 반문했다.
#‘귀공자 타입’의 호리호리한 남자
세 번째 목격자는 C 씨다. 인근 다방에서 일하던 그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오후 2시쯤 오토바이를 타고 관문시장 골목을 지나던 중 한 젊은 남성을 목격했다. C 씨가 본 20대 초반의 남자는 호리호리한 체격에 귀걸이를 한, 소위 말하는 ‘귀공자 타입’이었다.
C 씨의 진술조서(1998. 1. 6.자)
문: 진술인이 배달을 하면서 검정색 계통의 옷을 입은 20대 초반의 남자 1명을 보았다는데 사실인가요.
답: 예, 사실입니다.
문: 그 일시와 장소를 말하시오.
답: 1998. 1. 3. 14:00경 대구시 남구 대명11동 소재 새마을금고 못 미쳐 시장골목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으며, 재차 가게 내에서 배달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조금 전에 본 그 남자가 커피를 마시고 계산을 하고 나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문: 그때 당시 그 남자를 본 기억을 말하시오.
답: 얼굴이 곱상하게 생겨 귀공자 타입으로 잘 생겼으며 몸이 호리호리하고 귀걸이를 왼쪽에 하고 있어…
(수사기록 144~146쪽)
“며칠 뒤 경찰에서 강도살인 용의자를 잡았다고 하며 와 보라고 해 경찰서에 가보니 그때 보았던 남자였다.”초기 진술 당시 C 씨는 자신의 기억에 강한 확신을 보였다. 그는 ‘귀공자 타입’ ‘호리호리한 체격’ ‘귀걸이 착용’ 등 남성 외모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 “(남자를) 오늘 다시 봐도 확인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옷차림에 대해서도 “검정색 계통의 캐주얼 외투와 검정색 일자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C 씨 진술에는 앞서 A 씨와 B 씨가 말한 곤색 체육복이나 가죽점퍼가 등장하지 않았다.
(수사기록 242쪽)
그런데 C 씨의 기억은 법정에 와서 다소 흐려진 모습을 보였다. 그는 “경찰서에서 본 이 씨가 목격 당시와 같은 겉옷을 입고 있었느냐”는 검찰관의 질문에 “얼굴은 확실한데 옷은 기억에 없다. 잘 모르겠다”고 번복했다. 이어 “시장과 다방에서 남성을 제대로 봤느냐”는 군판사의 질문엔 “스쳐봤지만 시장에서 본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C 씨 증인신문조서(1998. 8. 11.자)C 씨가 목격 사실을 경찰에 처음 알린 경위도 분명하지 않다. C 씨는 목격자 제보를 하게 된 경위에 대해 “동네에 수사본부가 차려져 파출소 경찰관과 대화를 하다가 목격 사실을 말했다”고 했다가 법정에 와서는 “당일 ‘비번’인 경찰관이 다방에 찾아와 수상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서 답했다”고 말을 바꿨다. 주목할 점은 이 씨가 체포되기 전 수사기록엔 C 씨의 진술이 없다. C 씨의 말을 들었다는 경찰관의 진술이나 비번 경찰의 다방 탐문에 관한 수사보고 등 그 어떠한 자료도 남아 있지 않았다.
군판사 배순도
재판장에게 고하고 증인에게
문: 비번이라는 경찰관이 와서 20대 초반의 츄리닝(곤색)을 입은 사람을 봤냐고 물어왔는가요.
답: 그런 것이 아니고 그냥 낯선 사람, 수상한 사람 본 적이 있냐고 물었고, 제가 20대 초반의 사람이 귀걸이 하고 인상이 굉장히 찬 사람을 보았다고 얘기한 사실이 있습니다.
문: 다방에서 확실히 보았나요.
답: 스쳐봤지만 시장에서 본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문: 경찰에서 대질 시 시장에서 본 옷과 경찰서에서 본 옷이 맞던가요.
답: 옷은 잘 기억이 없습니다.
(공판기록 154, 155쪽)
수사 자료에 따르면 C 씨는 이 씨가 붙잡힌 뒤 등장한 목격자였고, 경찰서 안에서 수갑을 찬 이 씨와 일대일로 대면했다. 목격 당시의 독립적인 기억과 대조할 만한 사전 기록이 없는 상태에서, 이미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을 마주하고 동일인 여부를 판단한 셈이다.

반면 당시 군사법원은 C 씨 진술을 유죄 판단의 핵심 증거로 인정했다. C 씨가 범행 약 1시간 전 현장 인근에서 이 씨를 두 차례 봤고, 그 진술이 사실이라면 당시 여인숙에 있었다는 이 씨의 알리바이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C 씨가 좁은 시장 골목에서 오토바이를 서행하며 이 씨를 가까이서 본 데다, 약 20분 뒤 다방에서 다시 마주쳤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씨가 희고 갸름한 얼굴에 왼쪽 귀걸이를 한 눈에 띄는 외모였다는 점도 들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아직 미혼의 젊은 여자인 C 씨가 이러한 점 때문에 피고인을 눈여겨보았고 그 인상착의를 분명히 기억하게 됐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사건 직후부터 법정까지 같은 취지의 진술을 이어온 점까지 종합해, C 씨의 진술은 일반적인 목격 진술보다 “훨씬 더 강한 신빙성”을 가진다고 판단했다.
#네 사람이 본 남자는 같은 사람이었을까
세 사람과 범행을 직접 목격한 피해자의 아들까지 네 사람의 진술을 시간순으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1998년 1월 3일 오후 2시쯤 대구시 남구 대명11동 관문시장 골목에 검은색 외투와 일자바지를 입은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성이 나타났다. ‘귀공자’같이 생긴 남자는 시장 골목을 지나 인근 다방에 들어가 차도 한 잔 마셨다. (C 씨의 진술)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각, 곤색 체육복을 입은 남자가 장미비디오 문을 열고 나왔다. 비디오테이프를 반납하고 나오는 사람처럼 태연했던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인근 약국 쪽으로 걸어갔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A 씨의 진술)
비슷한 시각 장미비디오 안으로 짧은 스포츠머리의 흉측한 얼굴을 한 20대 남성이 들어왔다. 검은색 구두를 신고 한 손에 가방은 든 남자는 피해자를 살해한 뒤 돈통에서 돈을 꺼내 가방에 넣어 달아났다. (피해자 아들의 진술)
범행 약 1시간 20분 뒤인 오후 4시 30분, 장미비디오에서 멀지 않은 카센터 모퉁이에서 곤색 체육복 위에 가죽점퍼를 걸친 남성이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B 씨의 진술)
피해자 아들을 제외한 세 사람은 범행 장면을 직접 보지 않았다. 각기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낯선 남성을 봤을 뿐이다.
그렇다면 네 사람이 본 남자는 정말 한 사람이었을까. 서로 다른 남성에 대한 목격담이 수사 과정에서 하나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그 남자가 이민형 씨였다고 단정할 근거는 충분했을까. 사건 발생 28년 만에 재심에 나선 이 씨는 다시 한 번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