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사모사채 부담에 실적도 부진…점유율 15%인 일본 노선 재개가 정상화 관건
제주항공은 다른 항공사와 비교해도 사정이 좋지 않다. 대한항공은 화물 운송에 집중하면서 1분기 7000억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제주항공과 같은 저비용항공사(LCC)인 티웨이항공은 적자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증권가 예상보다는 양호한 성적을 거뒀다. 증권가에서는 티웨이항공이 430억~550억 원의 영업손실을 거둘 것으로 내다봤지만 실제 영업손실 규모는 390억 원이었다. 나민식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티웨이항공에 대해 “L/F(적재 가능 여객 수 대비 실제 여객 수송 비율) 개선이 눈에 띈다”며 “항공 수요 급증으로 지난해 1분기 38%에서 올해 1분기 48%로 탑승률이 개선돼 실적이 추정치를 상회했다”고 설명했다.
항공업계는 제주항공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시국에서 유독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해 수익성 개선이 늦어졌다고 진단하고 있다. 자금력도 부족해 연이율 7.4%의 조건으로 신종자본증권(사모사채) 발행을 추진 중이다. 제주항공이 경쟁력을 되찾지 못하면 애경그룹 전반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내년 금리 12.4%로 뛰는 제주항공 사모사채
제주항공은 지난 5월 17일 1500억 원 규모의 무보증 사모사채를 발행한다고 공시했다. 630억 원 규모의 사채는 지난 5월 12일 납입 완료됐고, 나머지 870억 원 사채 발행은 26일 마무리된다. 투자자들이 누구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대규모 자금 조달은 제주항공 주주들이 원했던 일이다. 제주항공은 경쟁사 대비 자금력이 취약해 자금 수혈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있었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말 KDB산업은행을 통해 영구전환사채 300억 원, 기간산업안정기금 1200억 원 등 총 1500억 원을 조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금이 부족해 사채 발행에 나선 것이다.
충격적인 것은 이자율이다. 제주항공은 최초 이자율 7.4%의 조건으로 사모사채를 발행했고, 발행 1년 후에는 이율이 5%포인트(p) 가산된다. 연내 상환이 어렵다는 것을 감안하면 무려 12.4%의 고금리로 돈을 빌린 셈이다. 또 2년 후부터는 기존 이율에 1%p가 매해 추가된다. 이외에도 대주주가 변경될 경우 직전 이자율에서 2.50%를 가산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제주항공이 원하면 조기상환할 수 있는 조건이 부여돼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율이 워낙 높은 탓에 제주항공의 영업력이 조속히 정상화되지 못하면 자금 부담이 이중으로 커질 수 있다. 1년 차 이자 비용은 연간 111억 원이지만 2년 차에는 186억 원으로 급증한다. 대부분 전문가가 여행시장 완전 정상화는 2023~2024년으로 보고 있는 만큼 내년까지는 이자 부담이 상당할 전망이다. 안 그래도 제주항공의 부채비율은 올해 3월 말 기준 919.9%에 달한다.
#화물기 전환 너무 느렸다
제주항공의 한 발 느린 판단력 때문에 위기가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화물기 전환이다. 대한항공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제안으로 2020년 3월부터 여객기의 좌석을 뜯어내 화물기로 전환했다. 덕분에 2020년 2분기 화물사업 매출이 크게 늘어 표면상으로나마 흑자 전환을 이뤄냈다. 대한항공 한 관계자는 “당시 조 회장이 직접 코로나19 상황이 금세 잦아들 것 같지 않으니 화물 사업에 승부수를 두자고 제안했다”며 “글로벌 항공사 중 2020년 2분기에 흑자를 낸 것은 대한항공이 유일했다”고 설명했다.
제주항공도 화물기 전환을 수차례 검토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최종 결정은 오미크론 변이가 대거 확산한 지난 4월에야 이뤄졌다. 그나마도 고작 1대뿐이며 투입 시기도 6월 중으로 상대적으로 늦다. 제주항공은 국내 LCC 중 최초로 전용 화물기를 도입한다고 자평했지만 제주항공이 2012년 국제 화물운송 면허를 취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공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로운 기종 도입 일정을 늦춘 것도 아쉬움 남는 결정이라는 평가다. 당초 제주항공은 올해부터 2026년까지 5년에 걸쳐 B737-맥스 기종을 도입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이를 내년으로 미뤘다. B737-맥스는 기존 기종보다 항속거리가 1시간가량 길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합병으로 반납하게 될 중장거리 노선 중 일부 노선을 운항할 수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티웨이항공 등 다른 후발주자들이 A330 등을 도입해 중거리 노선을 욕심내는 것에 비하면 제주항공은 너무 보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노선 재개 기대감 무럭무럭
반전의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제주항공이 강점이 있는 일본 노선 재개 기대감이 무르익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자격으로 지난 4월 말 파견한 한일정책협의대표단은 귀국 인터뷰에서 한일 노선 재개와 비자 면제 복원, 격리 면제 확대 등을 긍정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빠르면 6월 중 김포-하네다 노선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제주항공은 2019년 기준 일본 노선 점유율이 15%다. 또 2017~2019년 국제선 매출의 32%를 일본 노선에서 벌어들였다. 일본 노선이 정상화돼야만 제주항공의 2023년 흑자전환이 가시화되는 구조다.
제주항공 모회사 AK홀딩스 입장에서도 제주항공 정상화가 시급하다. 애경그룹의 항공·유통 계열사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직격탄을 맞았다. 화학 계열사인 애경케미칼이 그나마 선방했지만 올해는 국제유가 급등으로 애경케미칼의 실적 전망도 부정적이다.
배기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일본은 경상수지 적자 전환, 엔화 가치 하락 방어 등을 위해 관광경제 진흥을 꾀할 가능성이 있다”며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하늘길이 예상보다 빨리 열린다면 제주항공을 비롯한 LCC들이 모두 수혜를 입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제주항공 관계자는 “일부 항공사가 지난해 자금을 조달한 바 있는데 당시 기준금리 상황을 감안하면 제주항공의 이율이 특별히 높다고 보기 어렵고, 당장 제주항공의 운영자금은 문제가 없지만 포스트 코로나19 전략을 세우면서 자본을 우선 확보해야 추후 투자 등의 움직임이 수월하다”며 “일본 노선이 활성화되는 것도 좋은 신호지만 일본 당국이 최대 입국자 수 제한 등 정책적인 제한을 해제해준다면 제주항공도 충분히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