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임성재·김주형 등 활약 변방 지위 벗어나…LPGA 2011년 이후 최저 승수 ‘부진’
여자 골프에선 상황이 다르다. 역대 200승을 넘게 쓸어 담으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를 평정한 한국인 골퍼들의 활약에 제동이 걸리는 모양새다.
#시즌 상금 순위 톱30에 3명
이번 시즌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나서고 있는 한국인 선수는 안병훈, 배상문, 임성재, 강성훈, 김성현, 김시우, 김주형, 이경훈, 노승열, 9명이다. 이는 골프의 원산지로 불리는 잉글랜드(12명)에 이어 가장 많은 숫자다. 미국과 맞닿아 있는 캐나다보다 많은 숫자다.
이들 중 김주형이 2022년 10월, 김시우가 2023년 1월 우승을 차지해 2승을 합작했다. 시즌 종료까지 30여 개 대회가 남아 있다. 이번 시즌 한국인 남자 골퍼들이 몇 개의 트로피를 추가할지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3월 첫 주말에 열린 지난 대회에선 이들에 더해 시니어 투어에서 활약 중인 최경주까지 PGA 투어 대회에 나서 총 10명의 한국인 선수가 대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10명의 골퍼가 대회장을 누비는 모습은 마치 한국인 선수들이 득세하는 LPGA 투어를 연상케 했다.
김주형(14위), 김시우(20위), 임성재(21위)는 상금 순위 30위권 이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들 모두 이번 시즌 각각 200만 달러(약 26억 원)를 벌어들였다. 이경훈, 김성현, 안병훈을 더하면 이들이 올 시즌 기록한 상금은 100억 원이 넘는다.
달라진 한국 남자 골프의 위상은 지난해 9월 열린 프레지던츠컵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 대표팀과 인터내서널팀의 맞대결로 펼치는 이 대회에서 한국 골프는 출전 선수 12명 중 4명을 배출했다. 이는 2011년 3명 이후 역대 최다 출전 기록이었다. 출전한 4인방은 인터내셔널팀이 거둔 11승 중 9승을 합작하며 기대에 부응했다.
#한국 여자 골퍼들 부상 시달려
반면 한국인 선수들이 장기간 전성시대를 이어왔던 LPGA 투어에서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한때 시즌 15승을 합작하기도 했던 한국 골퍼들은 지난 2022년 고진영, 김효주, 지은희, 전인지가 1승씩을 거두며 4승만을 기록했다. 2011년 3승 이후 최저 기록이다.
이전까지 3년간 고진영과 김세영이 주고받던 '올해의 선수'는 리디아 고(뉴질랜드)에게 넘어갔다. 한국인 선수가 상금왕, 최저타수, 신인왕 등 주요 개인 타이틀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은 2008년 이후 처음이다.
한국인 선수들의 부진 배경에는 부상이 있다. 약속이나 한 듯 주요 선수들이 동반 부상에 시달렸다. '골프 여제' 박인비는 손 통증으로 시즌의 절반만 소화했다. 김효주가 담 증세 등으로 후반기에 주춤했으며 고진영(손목), 전인지(어깨)도 통증을 호소했다.
신인 부재도 원인이다. 지난 2년간 LPGA 신인왕은 태국 선수들이 차지했다. 앞서 2015년부터 5년 연속(김세영-전인지-박성현-고진영-이정은) 한국인 선수들이 휩쓸었던 트로피다.
흥미로운 분석도 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의 성장이 되레 적극적인 LPGA 진출을 막는다는 것이다. 2023시즌 KLPGA는 32개 대회, 총상금 312억 원 규모로 진행된다. 후원 규모가 나날이 확대되고 있다. 남자 선수 없이 여자 선수로만 팀을 꾸리는 후원사가 부지기수다. 투어 중계권료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에 지난 시즌 LPGA 투어 퀄리파잉 시리즈에 나선 KLPGA 투어 출신 선수는 단 1명이었다.
#반가운 고진영의 ‘부활’
장기간 한국인 선수의 우승 소식이 없었던 LPGA 투어에서 지난 6일 고진영이 승전보를 전해왔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HSBC위민스월드챔피언십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지난해부터 18개 대회 동안 침묵했던 한국인 골퍼의 우승 소식이었다.
대회 첫날 이븐파를 기록했던 고진영은 2, 3라운드에서 연속 7언더파를 기록하며 승기를 잡았다. 고진영은 개인 통산 14번째 우승이었지만 남다른 소감을 밝혔다. 마지막 홀에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는 "이번 우승이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하다. 프로 데뷔 첫 우승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라이벌 넬리 코다(미국, 세계랭킹 2위)를 누르고 우승했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고진영은 이번 우승으로 세계랭킹을 5위에서 3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고진영은 부진했던 LPGA 투어에서 한국 여자 골퍼의 선전을 이끌 선수로 꼽히고 있다. 고진영은 앞서 LPGA 투어의 지배자로 활약한 바 있었다. 2018년 신인왕을 시작으로 두 번의 올해의 선수와 상금왕에 올랐다. 2019년부터 세계랭킹 1위에 올라 정상권을 꾸준히 지켰다. 하지만 지난해 부상 등으로 부침을 겪었고 혹독한 동계훈련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반가운 점은 HSBC챔피언십에서 한국인 골퍼들이 좋은 성적을 보였다는 것이다. 대회 첫날부터 선두권을 형성한 김효주가 공동 8위로 톱10에 들었으며 지은희와 김아림이 각각 공동 11위와 공동 14위를 기록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