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임단협 등 악재 처리할 수장이 구속 신분…“그럴 처지 아냐, 여론 조성 잘못하면 역풍” 지적
대전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12일 오후 10시 9분쯤 대전 대덕구 목상동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58시간 만에 완전히 꺼졌지만 8만 6000㎡ 부지의 1개 물류창고와 2공장 전체가 전소되고 타이어 21만 개가 불에 탔다. 한국타이어의 화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2년 금산공장을 시작으로 2006년 대전공장, 2010년 금산공장, 2014년 대전공장 등 꾸준히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대전공장에서만 세 번째 화재다.
한국타이어는 지난 13일 대전공장 생산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대전공장 매출은 2021년 연간 매출액 기준 1조 1677억 원으로 당해 전체 매출의 16.4%를 차지했다. 지난해는 3분기 누적 8263억 원에 달한다. 하루 4만 5000여 개의 타이어를 생산하고 있다. 한국타이어의 8개 공장 중 생산 능력은 단연 최대이며 아시아에서도 최대 규모의 타이어 생산기지로 꼽힌다.
한국타이어는 보험으로 피해액을 최소화할 예정이다. 13일 공시에 따르면 한국타이어는 간사사인 KB손해보험과 참여사인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해보험 등 4개사가 공동 인수한 재산종합보험에 가입돼 있다. 대전공장 기준 재산종합보험가입금액은 1조 7031억 원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타이어가 사고로 사업을 중단했을 때 기업에 필요한 경비를 제공하는 ‘기업 휴지’ 담보에는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한국타이어가 실제로 받을 수 있는 보험금 규모는 3000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으며, 대전공장의 생산 중단 기간이 늘어날수록 누적 피해액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지금 단계에서 확인해드릴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한국타이어는 올해 목표로 삼았던 계획들을 전면 수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조현범 회장 취임 후 전기차용 타이어 등 글로벌 신사업 확장과 투자에 탄력을 붙이고 있다. 올해는 전년 대비 매출 5% 이상 성장을 목표로 삼았다. 또 약 1조 원 내외를 미국 테네시 공장 증설, 유지 보수 및 현대화에 사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화재 수습 외에도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임금·단체협약에서 노사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올해로 협상이 미뤄진 상황이다. 설상가상 악재들을 해결해야 할 수장도 구속됐다. 조현범 회장은 지난 9일 200억 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됐다. 조 회장은 한국타이어가 2014년 2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약 4년간 계열사 한국프리시전웍스(MKT)가 제조한 타이어 몰드를 다른 제조사보다 비싼 가격에 사주는 방식으로 부당 지원한 혐의를 받는다. 조 회장은 2020~2021년에는 현대자동차 협력사 리한에 계열사 한국프리시전웍스(MKT) 자금 약 130억 원을 빌려줘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도 받는다. 또 회사 돈으로 집을 수리하거나 외제차를 구입하는 등 개인 비리 혐의도 있다.
한국타이어는 이수일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를 중심으로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화재 발생 직후 현장 수습도 이수일 대표가 지휘한 것으로 전해졌다. 화재 발생 3일 뒤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과문도 이수일 대표의 이름으로 게재됐다.
일각에서는 한국타이어가 최근 구속된 조현범 회장이 경영 정상화를 이유로 불구속 수사를 요청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의사결정권자인 회장의 부재는 악재 수습을 더디게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타이어도 조 회장 구속 당시 입장자료를 통해 “기업 경영 환경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룹 리더십 공백으로 인해 대규모 투자, 인수·합병 지연 등 신성장동력 개발의 위축이 걱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재계 한 관계자는 “불구속 수사 전환 요청이야 자유롭게 할 수 있겠으나 한국타이어가 그럴 처지가 아니다. 검찰이 부당 지원을 배임으로 고발했기 때문에 분위기가 썩 좋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자세로 나가는 게 안전할 것으로 보인다. 괜히 여론 조성을 잘못했다가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죄가 있다면 그 값을 달게 받고 새롭게 시작하는 게 옳다고 본다. 한국타이어도 대형 로펌을 이용해 회장을 꺼내려하기보다 이제는 정공법으로 돌파하는 게 어떨까 싶다. 이후 지배 조 투명화 등 ESG 경영을 위해 힘쓴다면 한국타이어를 바라보는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현재 한국타이어는 이수일 대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사고 수습이나 공장 피해 복구 모두 이수일 대표가 관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현범 회장 불구속 수사 전환과 관련해서는 답변을 거부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