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집안 돌아가며 회장 맡는 LS가 등 세부적 차이…LX·LIG는 가풍 따를 듯, 아워홈·LF는 예외 가능성
#유교 가풍이 원칙이라지만…
LS그룹은 장자 승계 원칙을 따르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LG그룹과는 차이가 있다. LS그룹은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동생인 고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고 구평회 E1 명예회장, 고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 등 세 사람이 연합해 탄생한 기업집단이다.
LS그룹은 2003년 LG그룹으로부터 분리될 당시 구태회·구평회·구두회 명예회장 일가가 돌아가면서 회장을 맡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LS그룹의 초대 회장은 구태회 명예회장의 장남 고 구자홍 LS그룹 회장이 맡았고, 2대 회장은 구평회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자열 현 한국무역협회 회장, 3대 회장은 구두회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자은 회장이 현재 맡고 있다. 구태회·구평회·구두회 명예회장의 각 장남이 돌아가며 회장을 맡는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LS그룹만의 장자 승계 원칙이 후대에도 이어질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LS그룹의 원칙대로라면 구자은 회장이 물러난 후 구자홍 회장의 장남 구본웅 씨가 LS그룹 회장을 맡아야 한다. 하지만 구본웅 씨는 투자회사 포메이션그룹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LS그룹 경영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고 있다. 적지 않은 LS가 오너 4세가 LS그룹 계열사에 근무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행보다. LS그룹 관계자는 후계구도에 대해 “현재로는 정해진 것이 없다”고 밝혔다.
LS그룹 내 여성 경영 참여는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구평회 명예회장의 장녀 구혜원 푸른그룹 회장과 구두회 명예회장의 장녀 구은정 태은물류 대표는 각자의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그러나 푸른그룹과 태은물류는 모두 LS그룹 계열사가 아니므로 구혜원 회장과 구은정 대표가 그룹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푸른그룹은 구혜원 회장의 남편 고 주진규 전 푸른그룹 회장이 이끌던 곳이다. 주 전 회장이 1999년 사망한 후 구혜원 회장이 회사 경영을 이어 받았다. 태은물류는 구은정 대표와 그의 장남 김태식 씨, 장녀 김지선 씨, 차녀 김국선 씨 등 네 명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구 대표 개인 회사다.
LG그룹에서 2021년 분리된 LX그룹의 경우에는 당분간 장자 승계 원칙이 이어질 전망이다. 구본준 LX그룹 회장의 자녀는 장남 구형모 LX MDI 대표와 장녀 구연제 씨 두 명뿐이다. 재계에서는 구형모 대표가 첫째이자 장남인 만큼 차기 LX그룹 경영권도 그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LX그룹의 여성 경영 참여설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구본준 회장은 2021년 구형모 대표와 구연제 씨에게 각각 LX홀딩스 지분 11.14%, 8.52%를 각각 증여했다.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장녀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와 차녀 구연수 씨에게 각각 (주)LG 지분 2.01%, 0.51%를 상속한 것을 감안하면 구연제 씨는 상당히 많은 지분을 받은 셈이다.
구연제 씨는 현재 마젤란기술투자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LX홀딩스는 지난해 사업목적에 금융업을 추가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구연제 씨의 LX그룹 합류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LX홀딩스는 당시 사업목적 추가에 대해 “신사업 추진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LX그룹 측은 구연제 씨의 경영 참여 가능성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LIG그룹도 현재까지는 장자 승계가 이어지고 있다. LIG그룹을 현재 이끄는 사람은 고 구자원 LIG그룹 회장의 장남 구본상 LIG그룹 회장이다. 구본상 회장의 두 누나 구지연 씨와 구지정 씨는 LIG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구본상 회장은 장녀 구연주 씨와 장남 구창모 씨 등 1남 1녀를 두고 있다. 구본상 회장의 자녀들은 아직 20대 초반에 불과하고, 보유 중인 (주)LIG 지분도 없다. 이들이 LIG그룹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도 않아 승계를 논하기는 이르다.
희성그룹은 LG가의 가풍을 따르기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자녀는 장남 구광모 회장과 장녀 구연서 씨, 두 명이었다. 그런데 구광모 회장이 구본무 회장의 양자로 입적되면서 구본능 회장의 현재 자녀는 구연서 씨뿐이다. 구본능 회장이 구연서 씨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면 LG가에서는 이례적인 사례가 된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구광모 회장이 희성그룹까지 승계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 바 있다. 일요신문은 LG그룹과 희성그룹에 이와 관련해 질의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구씨 일가는 아니지만 LG그룹에서 분리된 GS그룹은 장자 승계와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고 허만정 LG그룹 공동창업주의 장남과 차남은 애초에 LG그룹이나 GS그룹 경영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현재 GS그룹 경영을 주도하는 인물은 허만정 창업주의 삼남 고 허준구 LG건설(현 GS건설) 명예회장의 자녀들이다. 허준구 명예회장의 장남 허창수 GS건설 회장이 초대 GS그룹 회장을 맡았고, 현재는 5남 허태수 GS그룹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허준구 명예회장은 아들만 다섯을 둔 관계로 여성의 경영 참여 이슈도 크게 불거지지 않았다.
#예외도 있는 법
범 LG가의 원칙이 확고하다보니 경영권과 관련해 충돌을 빚은 사례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분위기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아워홈은 2021년 남매 간 경영권 분쟁을 겪은 바 있다.
아워홈은 2021년 6월 주주총회를 열어 구본성 전 아워홈 부회장을 대표에서 해임시켰고, 구 전 부회장의 동생인 구지은 전 캘리스코 대표를 신임 아워홈 대표로 선임했다. 구본성 전 부회장은 당시 보복 운전 등 구설수에 휘말렸고, 아워홈의 실적마저 하락해 신뢰를 잃은 것으로 전해진다. 구본성 전 부회장은 2022년 주주총회에서 우호 세력을 아워홈 이사로 선임하려고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이로써 구지은 대표는 범 LG가 중에서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유일한 여성 CEO(최고경영자)가 됐다.
재계에서는 구지은 대표가 아워홈의 특수성 덕에 대표 선임이 가능했다고 분석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아워홈은 여성 직원 비율이 50%가 넘고, 여성 임원이나 팀장도 많다”며 “LG그룹에서 분리된 지 20년이 넘은 상황에서 원활한 회사 운영을 위해서라도 LG그룹의 기업 문화를 그대로 반영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재계에서는 LF그룹에 주목한다. LF도 아워홈과 마찬가지로 여성 직원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LF의 직원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여성 773명, 남성 437명이다. 구본걸 LF 회장은 자녀로 구민정 씨, 구성모 씨, 구경모 씨 등 2남 1녀를 두고 있다. 구민정 씨가 현재 LF 지분 1.10%를 갖고 있고, 구성모 씨와 구경모 씨는 1.18%, 0.13%를 보유 중이다. 지분율 차이가 크지 않아 구본걸 회장의 의중에 따라 차기 경영권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 LF 관계자는 “현재 구본걸 회장의 자녀는 LF에 근무하지 않고 있다”며 “이들의 경영 참여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온 것은 없다”고 말했다.
LG가 세 모녀의 상속 자산 살펴보니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보유한 (주)LG 지분 11.28% 중 지분 8.76%가 구광모 LG그룹 회장에게 상속됐다. 구연경 대표와 구연수 씨가 상속받은 (주)LG 지분은 각각 2.01%, 0.51%다. LG그룹은 “LG가 전통에 따라 상속인 4인은 수차례 협의를 통해 구광모 회장이 (주)LG 지분 등 경영권 관련 재산을 상속했다”며 “구본무 회장의 아내 김영식 씨와 두 딸은 (주)LG 주식 일부와 개인 재산인 금융투자상품, 부동산, 미술품 등을 포함해 5000억 원 규모의 유산을 받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구본무 회장의 한남동 자택은 김영식 씨, 구연경 대표, 구연수 씨가 각각 40 대 30 대 30의 비율로 지분을 물려받았다. 국토교통부 공시지가에 따르면 해당 자택의 가치는 2018년 기준 90억 4000만 원이었다. 이후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2022년에는 152억 2000만 원으로 가치가 올랐다.
세 사람이 받은 유산 5000억 원은 대부분 (주)LG 지분에 해당한다. LG그룹은 구연경 대표와 구연수 씨가 상속받은 지분의 가치가 각각 3300억 원, 830억 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LG그룹이 산출한 가치와 실제 주식 시장에서 평가 받는 가치에는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LG그룹이 ‘상속세 및 증여세법’을 기준으로 지분 가치를 계산했기 때문이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는 상장 주식의 가치를 사망일 전후 2개월의 종가 평균액으로 산출하며 대기업 최대주주의 경우에는 20% 할증까지 붙는다.
구본무 회장 지분 상속이 이뤄진 2018년 11월 1일의 (주)LG 종가 6만 5200원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구연경 대표와 구연수 씨가 상속 받은 지분의 가치는 각각 2258억 5280만 원, 568억 5440만 원으로 LG그룹이 산출한 가치에 미치지 못한다. 다만 (주)LG의 현재 주가는 약 9만 원이므로 구연경 대표와 구연수 씨의 지분 가치도 각각 3117억 6000만 원, 784억 8000만 원으로 늘어났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