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포탕’ 내세웠지만 당직 인선 역시나 ‘친윤탕’…대통령 지지율에 의존하다 총선서 부메랑 맞을 수도
#김 대표 '용산 채무' 부담
3·8 전당대회에서 과반 득표로 선출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판사 출신으로 윤석열 대통령 서울대 법대 1년 선배다. 4선 국회의원에 울산시장을 지냈으며 지난 대선 과정에서는 당대표와 대선후보와의 갈등관계 국면 속 원내대표로서 적극적 중재자를 자처했다. 법조인, 지방정부 수장, 다선 의원 등 경력만 놓고 보면 당대표로서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김 대표에 대해 인격적으로도 높은 점수를 준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김 대표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울산 땅 투기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긴 했다. 하지만 의원과 울산시장 때 본인의 사생활 문제로 구설수에 크게 오른 적은 거의 없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그런데 지금 김기현 대표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자력으로 고지에 오른 것이 아니라 오직 윤 대통령 측 지원사격에만 기댔다는 혹평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3월 14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 김 대표를 향해 “(본인) 능력이 아니고 (윤석열) 대통령께서 점지해주신 것”이라고 끌어내렸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이 움직이니까 꼴등 후보가 1등으로 둔갑했다. 김기현 후보의 개인기가 아니다. (대통령실이 개입할 거라면) 차라리 대통령께서 임명하면 된다”라고도 몰아붙였다.
김기현 대표가 ‘용산의 대행자’라는 프레임에 자꾸 갇히면서 당대표 권위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대표 행보를 바라보는 언론도 현상 그대로의 해석을 넘어 색안경을 쓴 분석을 자꾸 생산해낸다.
3월 13일 김 대표를 비롯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윤 대통령과 만찬 행사를 가졌는데 김 대표는 이날 윤 대통령에게 폴더 인사를 하는 모습이 언론 사진에 포착됐다. 3월 16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의 윤 대통령 방일 배웅 행사에서도 김 대표의 90도 인사가 나왔다. 옆자리에 서있던 주호영 원내대표가 묵례를 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김 대표는 뒤따라오는 김건희 여사에게도 90도 인사를 했다.
정가에선 김 대표가 이런 상황을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진다. 윤 대통령과 거리가 가까운 장제원 의원과 힘을 합치는 김장연대로 경선 레이스를 출발한 이후, 경쟁후보가 치고 나오는 고비 때마다 용산의 지원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김 대표가 짊어져야 할 채무가 너무 많이 늘어났다는 이유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전당대회가 끝난 직후 시점에서 김 대표의 당선 과정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 또렷하다보니 김 대표의 권위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나오는 것”이라며 “시간이 약이 되겠지만 향후 김 대표도 권위 없는 대표라는 말을 유념해서 이를 적극적으로 방어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연포탕 아닌 친윤탕
김기현 대표는 3월 13일 이뤄진 첫 당직 인선에서 예상대로 친윤계를 대거 발탁했다. 전당대회 때부터 ‘연포탕’을 구호로 내걸었던 김 대표였던 만큼 실제 당직 인선 식탁에 연포탕이 올라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연포탕이 아니라 ‘친윤탕’이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사무총장은 친윤계 핵심으로 꼽히는 재선의 이철규 의원이 꿰찼다. 사무총장은 내년 총선 공천 실무를 담당하는 막강한 자리다. 이 자리를 윤 대통령의 최측근이 맡았다. 이 사무총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할 전략기획부총장과 조직부총장에도 친윤계인 초선 박성민 배현진 의원이 각각 임명됐다.
나머지 당직도 마찬가지다. 수석대변인에 초선 유상범 강민국 의원이 임명됐고, 대변인으로는 윤희석 전 서울 강동갑 당협위원장, 김예령 전 대선 선대위 대변인, 김민수 전 경기 성남 분당을 당협위원장 등 3명이 들어왔다.
지명직 최고위원 자리에 유승민계로 분류되던 초선 강대식 의원이 임명됐는데 겉으로만 보면 탕평 인사 같았지만 실제로는 아니다. 강 의원은 유승민 전 의원 지역구였던 대구 동구에서 구청장을 지내면서 오랫동안 유 전 의원 계파로 불렸다. 그러나 강 의원은 탈유승민계로 꼽힌다. 지난 전당대회 과정에서 나경원 전 의원 불출마를 압박하는 초선의원 연판장에 강 의원이 이미 이름을 올리면서 친윤계로 돌아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직 인선과 관련, 당내 중진인 윤상현 의원은 3월 16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나와 “당정일체, 친윤계 지도부 일색 아닌가”라며 “연포탕으로 불리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수직적인 당청관계나 대통령실 하속 기관, 이런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도 평가했다.
김기현 대표는 당직 인선에 이어 경선 경쟁자였던 안철수 의원과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를 연이어 만났지만 연포탕을 시원하게 끓일 만한 재료를 충분히 얻어내지 못했다. 치열한 경선 과정에서 많은 갈등이 있었는데 이를 완전히 해소할 만한 호재를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김 대표는 3월 13일 안철수 의원에게 맞춤형 제안을 했다가 바람을 맞았다. 당내에 과학기술 관련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려 한다며 안 의원에게 위원장직을 맡아달라고 제안했으나, 안 의원은 이를 고사했다. 안 의원은 “제가 2년간 선거를 5번 치러서 많이 지쳐 있고 힘을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거절했다.
안 의원은 이날 만남 뒤 ‘수도권 승리를 위해 김기현호가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민심을 제대로 반영 못 하는 정부는 항상 실패했다. 그걸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이번 전대는 100% 당심으로 하다 보니 민심과는 좀 동떨어졌을 가능성이 있지 않나”라는 답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김기현 대표 체제에 대한 안 의원의 불신을 반영하는 뼈있는 말로 받아들였다.
황교안 전 대표와의 만남도 비슷한 평가를 낳았다. 김 대표는 안 의원과 만난 다음날인 3월 14일 황 전 대표와 회동했다. 이 만남에선 황 전 대표가 최근 제기하고 있는 전당대회 모바일 투표 조작 의혹이나 전당대회 당시 불거진 김 대표의 울산 땅 의혹 등의 얘기가 나오지 않아 경선과정에서의 앙금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만 기댔다가는…
여권은 내년 총선이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에 의해 그 성적이 좌우되리라고 전망한다. 여당 간판이라 할 수 있는 지도부 면면의 무게감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내부 균열이 없는 탄탄한 원팀 식탁만 잘 만들어놓으면 대통령 지지율, 즉 용산의 메뉴로 모든 것을 돌파해나갈 수 있다는 전략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기억을 되살려보면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때 모두 대통령 지지율로 총선을 치렀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말에는 박근혜라는 차기 유력 대선주자의 힘에 의존해 총선에 임했다”며 “선진국에서는 아니라고 하는 학자들이 많지만 여당을 대통령당이라고 인식하는 우리나라 정치문화에서는 이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본과의 외교 문제를 푸는 방식, 거대 노조에 대한 강경 조치, 반도체 등 기업의 투자를 화끈하게 이끌어내는 모습 등에서 윤 대통령의 직진 정치가 지지층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내부 판단을 여당 내부에서는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명박·박근혜 전임 대통령과 달리 국민의힘 강력 지지기반인 TK(대구·경북)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 약점으로 거론됐었다. 하지만 이번 전당대회에서 TK의 공고한 지지 덕분에 김기현 후보가 과반 득표로 당선된 것을 보면 윤 대통령이 이명박·박근혜의 길을 갈 경로가 열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당의 콘크리트 지지세력을 확실한 우군으로 만든 것이 확인됐으니 향후 충청권을 거쳐 수도권까지 올라오는 세력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당 위험성에 대한 경고도 나온다. 최근 근로시간 개편 과정에서 과도한 노동이라는 MZ세대의 강한 반발이 터져 나오면서 윤 대통령 지지율이 출렁거린 사례가 거론된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3월 1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가 국민의힘을 두고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형태가 됐다”며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에서 큰 희망을 걸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그리고는 “문재인 정부 시절 조국 사태 때 민주당 의원들의 행태나 다를 게 없다”고 비판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권위에만 의존해 국정을 밀어붙이다 정권을 뺏긴 민주당 사례를 소환했다.
김 전 위원장은 그러면서 ‘총선에서 과반을 못 얻으면 그때부터 레임덕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당연히 레임덕”이라고 답변, 대통령과 여당이 동시에 치명타를 맞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