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 당 지도부 장악하며 ‘당·대 동일체’ 완성…윤 대통령 지지율 떨어질 경우 원심력 커질 수도
#압도적인 '용산'의 힘
김기현 신임 대표는 선거전 내내 컷오프를 통과한 3명의 다른 후보들로부터 이른바 ‘울산 땅투기 의혹’ 제기에 시달렸다. 황교안 후보는 “부정한 방법으로 땅 투기를 한 사람은 당대표 자격이 없다”며 대놓고 김 대표를 향해 후보 사퇴 요구를 했다. 하지만 당원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윤심을 등에 업은 김 대표는 52.93% 과반 득표를 하면서 결선투표 없이 당선됐다.
윤 대통령과 대선 후보 단일화를 이뤄냈던 안철수 후보조차 용산 대통령실의 김기현 지원사격에 속수무책으로 무장해제 당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안 후보는 전당대회 레이스 초기 ‘윤힘 후보’를 자처하고 ‘윤안 연대’(윤석열-안철수 연대)를 내세우는 등 윤 대통령과의 거리를 좁히는데 주력했다. 윤심을 장착해 ‘김기현 대세론’을 흔들어보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용산의 반응이 돌아왔다. 안 후보의 ‘윤안 연대 언급’ 등이 나오자 윤 대통령은 “실체도 없는 ‘윤핵관’ 표현으로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사람” “윤안 연대 운운한 것은 극히 비상식적 행태” 등의 강한 비판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단일화 주역이었던 안 후보가 한순간에 반윤 후보로 낙인찍힌 것이다.
안 후보는 23.37%의 득표율을 얻으면서 선전했다는 평가도 받긴 한다. 하지만 김기현 대표보다 훨씬 높은 정치적 지명도를 안 후보가 오랫동안 가졌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전당대회는 그의 개인 역량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한 구도였다. 용산 쪽으로부터 공개 저격을 받을 때마다 안 후보 여론조사 지지율은 출렁였고,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에게 밀린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전당대회 출마를 준비했다가 갑자기 뜻을 접은 이들의 모습에서도 원거리에서 전해진 용산의 강력한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나경원 전 의원조차 출사표를 던지지 못했다. 비록 비상근이지만 그는 여러 공직에서 ‘해임’되는 수모까지 당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실은 물론, 친윤계로부터 “반윤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이냐” 등의 십자포화를 맞았고, 결국 나 전 의원은 백기를 들어야만 했다.
권성동 의원의 전당대회 불출마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오랫동안 당대표 선거를 준비해왔지만 올해 초 갑작스레 불출마로 선회했다. 이 역시 나 전 의원에게 작용된 힘과 동일한 것으로 정치권은 받아들였다.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도부 선출 규정이 바뀐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국민의힘은 당헌·당규를 개정, 당원 70%+여론조사 30%였던 전당대회 룰을 당원 100%로 바꿨다. 결선투표 제도도 도입했다. 윤심 후보를 강하게 미는 동시에 일반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달렸던 유승민 전 의원을 출마할 수 없도록 만든 봉쇄조치 아니냐는 해석이 주를 이뤘다.
이번 전당대회는 지나친 당무개입이라는 논란에도 불구, 후보들 간 지상 전투가 아닌 용산의 전략에 의해 승부가 갈릴 수밖에 없는 판이었다. 거대 야당으로 인해 여당이 입법 과정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국회를 보면서 당원은 물론, 일반 지지층에서도 당과 대통령실이 똘똘 뭉쳐 국회 상황을 반드시 고쳐놔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중 대통령 지지율도 우상향하면서 ‘대통령 중심으로 달려가 보면 되겠다’는 에너지가 더 커졌다”고 귀띔했다.
#원팀의 완성
이번 전당대회에서 지도부가 모두 친윤으로 구성되면서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은 글자 그대로 동일체가 됐다. 모든 언론에서 직할체제, 일심동체 등의 어휘를 동원해 윤 대통령 중심의 수직적 지휘체제가 작동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바꿔 말하면 단일대오에 역행하는 일체의 다른 목소리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논리와도 연결된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지도부가 당무 접수 첫날부터 쏟아낸 이른바 ‘이준석계’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이를 잘 반영해주고 있다.
최고위원 선거에서 득표율이 가장 높았던 김재원 최고위원은 3월 9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친이준석계 후보들의 전원 낙선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이 전 대표가 보여준 수많은 태도에 대해 당원들 중에는 ‘항상 당의 진로에 방해가 되고 심지어는 당을 망가뜨리려 한다’는 인식을 갖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다”며 “경기장에서 난폭한 관중을 ‘훌리건’이라고 하는데, 이분들은 실제 선수로 뛰어든 훌리건 아니었나”라고 몰아세웠다.
조수진 최고위원도 같은 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대통령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엄석대에 비유하고…. 일종의 ‘양두구육 시즌2’”라며 “전략이라고 포장한다고 해도 아주 나쁜 전략이다. 어떻게 보면 엄석대는 이 전 대표였다”고 직격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이준석계를 포함한 친윤 이외 계파는 사실상 와해됐다. 친윤 단일 계파로 일원화됨으로써 당에 대한 윤 대통령 입김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향후 윤 대통령이 당과의 접촉도 더 늘릴 것이라는 게 대통령실의 전언이다.
윤 대통령은 3월 13일 대통령실에서 국민의힘 새 지도부와 회동한다. 윤 대통령은 전당대회 결과가 나온 직후 김 대표를 비롯해 새로 선출된 최고위원들에게 축하 전화를 하면서 곧 대통령실로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가 윤 대통령을 단독으로 예방해 전당대회 결과를 보고하고 향후 협조 방안을 협의하는 자리가 마련될 것이란 얘기도 흘러나온다.
윤 대통령과 김 대표 간 정례 회동을 신설하는 방안도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은 당 총재로서 여당 대표로부터 매주 한 차례 청와대에서 당무 보고를 받고 현안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대통령실과 당의 거리가 가까워짐으로써 당 안팎의 관심은 내년 총선 공천권으로 벌써부터 옮겨가고 있다. 겉모양은 그렇지 않더라도 실제 공천권을 휘두르는데 용산의 힘이 강력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김기현 대표 개인적 특성상 용산에 대해 할 말을 세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천 사무를 총지휘할 당 사무총장으론 친윤 핵심인 이철규 의원이 유력하다. 이 의원의 사무총장 임명은 결국 용산 영향력을 더욱 강화시킬 전망이다. 정치권에서는 윤핵관으로 불려온 권성동 장제원 의원보다 이철규 의원이 오히려 윤 대통령과의 거리가 더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고문인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3월 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국민의힘이) 완전한 ‘윤석열당’으로 재창당했다”고 평가했다. 박 전 원장은 ‘상향식 공천, 탕평인사가 가능할 것으로 보나’라는 물음에는 “말로만 그런 것”이라며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승자의 저주 걸릴 수도
당내 질서가 1호 당원인 윤 대통령 중심으로 잡힘으로써 이제 국민들에게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됐다는 긍정적 평가가 일단 나온다. 하지만 모든 무게가 너무 대통령 쪽으로 실리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많다. 현재의 구도가 계속된다면 ‘용산 출장소’라는 꼬리표 역시 끊임없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흔들리는 일이다. 이 경우 내년 총선 판세는 어려워지고, 내년 총선 시점을 기준으로 해도 임기가 3년이나 남는 윤 대통령 국정수행도 차질을 빚게 된다. 더욱이 갈수록 악화되는 경제 상황이 내년 총선 때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여 이 부분도 걸리는 대목이다.
현재 윤 대통령 지지율은 30% 후반에서 40% 초반이다. 대표 사법 리스크로 인해 제1야당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권으로선 아쉬운 수치다. 야당에 호재, 대통령에게 악재가 닥치면 지금의 지지율조차 지키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 ‘윤심’을 업고 탄생한 현 지도부를 상대로 거센 원심력이 고개를 들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대통령 중심, 친윤 일색이라는 것도 부담이지만 김기현 대표가 울산을 지역구로 둔 영남 출신이라는 점도 편치 않은 부분이다. 내년 총선 때 당 외연 확장에 부정적일 것이란 견해가 나오기 때문이다. 유승민 나경원 전 의원, 안철수 의원 등이 모두 뒷방으로 밀려났고 이들이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당의 주류와 거리를 너무 많이 벌려놔 다시 당의 중심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지금으로서는 낮다. 수도권 선거에서 먹힐 만한 간판이 절대 부족해진 것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30% 여론조사 반영 룰을 없앰으로써 민심을 읽는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아쉬움도 뒤늦게 나온다. 내년 총선은 당원들만 투표장에 나오는 것이 아닌데 당 지도부가 당의 확장성을 가져올 중도의 목소리를 담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다.
당 내부에서는 4월로 예정된 원내대표 선거에서 이런 부분을 보완할 만한 후보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윤심’을 견제할 수 있는 비 영남권 의원이 원내대표에 올라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미 원팀 경로에 오른 이상 새 원내대표 역시 친윤 단일대오의 연장선에서 나올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