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노동 정책에 힘 실어, 4대그룹 재가입 가능성도…시민단체 “정경유착 의도” 우려 제기
#전경련과 윤석열 정부의 허니문
전경련은 지난 2월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을 회장 직무대행으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김병준 직무대행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 국민의힘 세종시당위원장,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여당과 가까운 인사가 전경련을 이끌게 되면서 정경유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김 직무대행은 이러한 비판을 의식했는지 기자간담회에서 “나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자유시장 경제의 가장 기본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경련은 김병준 직무대행의 발언이 무색할 정도로 최근 정부 정책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16일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만나는 등 일본과의 관계 회복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전경련은 이에 발맞춰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와 같은 달 17일 일본 도쿄에서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RT)’을 개최했다.
전경련과 게이단렌은 ‘한일·일한 미래 파트너십 기금’도 창설했다. 전경련이 10억 원, 게이단렌이 1억 엔(약 10억 원)을 각각 출연하고, 추후 회원사의 출연을 받아 기금 규모를 키울 계획이다. 재계에서는 해당 기금 일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에 사용될 것으로 내다본다. 정부는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강제징용 피해자를 배상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재원은 민간의 자발적 기여를 통해 마련한다. 포스코는 지난 15일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40억 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전경련도 기금 창설 소식을 밝히면서 “한국 정부로부터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에 관한 조치가 발표됐다”며 “한일 정치·경제·문화 등의 분야에서 교류가 강력하게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가 표명됐다”고 언급했다. 다만 전경련 관계자는 “해당 기금의 구체적인 사용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뿐 아니라 노동 정책에도 보조를 맞추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근무일 간 11시간 휴식을 둔 주 69시간 또는 주 최대 64시간 근무’라는 내용의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에 전경련은 “개편안을 계기로 기업들은 산업현장의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고, 근로자들이 삶의 질을 제고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라며 “연장 근로 시 11시간 연속 휴게시간 부여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주 64시간 상한을 도입한 점 등은 근로 시간 선택의 자율성을 확대한다는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라고 지지했다.
전경련은 지지 성명 발표에 그치지 않았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지난 3월 15일 윤석열 정부의 노동 정책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한경연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기업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고용 증가에 미치는 영향은 없고 경영성과를 악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에 대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정부와의 관계를 상당히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이 BRT에 참석해 전경련의 노력에 화답했다. 기시다 총리는 BRT에 참석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BRT에서 “한일 양국이 공급망, 기후변화, 첨단 과학기술, 경제안보 등 다양한 글로벌 의제에 공동으로 협력하고 대응해 나가자”라며 “디지털 전환,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미래 첨단 신산업 분야에서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나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는 특별한 역할이 없었다. 전경련이 다른 경제 단체를 제치고 대일 경제 외교를 주도한 셈이다. 향후 대일 경제 관련 이슈를 주도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됐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번 대일 외교 최대 수혜자는 전경련이란 말이 나올 정도”라고 평가했다.
전경련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전경련은 과거 박근혜 정부와 정경유착 논란을 겪은 후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전경련과 윤석열 정부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두고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전경련 해체까지 요구될 정도로 여론이 악화되던 당시 스스로 언급했던 혁신 또한 말뿐이었고,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전경련이 재벌이익 옹호를 넘어 정권과 유착하려는 의도를 다시금 내비치고 있으니 개탄할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4대그룹 재가입하나
전경련과 게이단렌이 주최한 BRT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그룹 총수도 모두 참석했다. 4대그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전경련을 탈퇴했다. 하지만 4대그룹 총수가 전경련 주최 행사에 참석하면서 이들의 전경련 재가입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4대그룹 모두 전경련 재가입과 관련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전경련이 정부와 관계를 회복하고, 4대그룹까지 재가입하면 과거의 위상을 상당 부분 회복할 전망이다. 4대그룹은 국내를 넘어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업이다. 이들이 전경련에 힘을 실어준다면 국제무대에서 전경련의 발언권도 상승할 수 있다.
4대그룹이 재가입하면 전경련 수익이 늘어나는 실질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전경련은 수익의 상당 부분을 회원사 회비에 의존하고 있다. 4대그룹이 2016년 말 전경련을 탈퇴하면서 전경련의 회비수익은 2016년 409억 원에서 2017년 113억 원으로 급감했다. 전경련의 2021년 회비수익은 97억 원에 불과했다. 전경련의 전체 수익 역시 2016년 937억 원에서 2017년 674억 원으로 줄었고, 2021년에는 616억 원을 기록했다. 2022년 수익은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김병준 직무대행도 4대그룹 재가입에 관심을 두고 있다. 김 직무대행은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국민들로부터 지지받는 전경련을 만들어 4대그룹뿐 아니라 국내 기업이면 전경련과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4대그룹의 전경련 재가입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재가입 가능성이 제기된 기업의 한 관계자는 “4대그룹의 BRT 참석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경련 행사라서 참석했다기보다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참석한 측면이 크다”며 “국민들의 여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니 4대그룹의 전경련 재가입이 당장 이뤄질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경련은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