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비해 공급 턱없이 부족해 몸값 폭등…대학가에선 ESG 스터디 열풍
중국 항저우의 한 IT 기업은 얼마 전 ESG 부서의 부주임을 채용했다. 그런데 연봉이 160만 위안(약 3억 20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세간을 놀라게 했다. ‘고스펙’의 구직자들이 왜 앞 다퉈 ESG에 몰리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장면이다.
ESG는 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등 비재무적 요소가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이다.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기업들은 빠른 속도로 ESG를 경영에 도입하고 있다. 한 기업 임원은 “ESG는 새로운 투자 개념이고 기업 평가 기준이다. 이 부분에 많은 기업들이 공감대를 갖고 있다. 경영의 필수적 요소가 될 것”이라고 했다.
2022년 말 기준 중국 본토 주식시장 A주에 상장된 회사는 1472개다. 이중 사업보고서에 ESG 보고서를 공개한 비율은 30.86%에 달한다. 회사 3곳 중 1곳은 ESG 보고서를 공개한 셈이다.
2022년 8월부터 2023년 2월까지 ESG 관련 채용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수요가 가장 많은 직군은 회계 및 법률 컨설팅 업종, 증권·선물·투자 분야였다.
이처럼 기업들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ESG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ESG 직원들의 몸값이 치솟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비즈니스 컨설팅을 주로 하는 알파컨설팅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ESG 분야 전문가들이 신입으로 입사했을 경우 연봉은 평균 50만 위안(약 9400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임금이 얼마나 높은지는 다른 고소득 직군과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외국계 투자회사는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어 구직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 중 하나다. 이 회사의 3년 차 직원 연봉은 40만~50만 위안(약 7600만~9500만 원)이다. 5~6년 경력자는 60만~80만 위안(약 1억 1000만~1억 5000만 원)가량이다. 중국 선두권 증권회사 3년차 종사자 연봉은 평균 40만 위안이다.
여러 채용 게시판에 올라온 ESG 급여 사례는 놀랍기만 하다. 얼마 전 상하이의 한 IT 회사는 ESG 총감독을 채용했는데, 연봉은 최소 120만 위안(약 2억 2800만 원)을 보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하이의 또 다른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는 ESG 데이터 분석가에게 연봉 288만 위안(약 5억 5000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이직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더 높은 봉급을 주는 회사로 직장을 옮기기 때문이다. 취업난이라는 것은 ESG 분야만큼은 먼 나라 얘기나 다름없어 보인다.
ESG 관련 직원들의 평균 근무 기간은 6개월이 채 못 된다. 중국 인력 컨설팅 업계의 왕신은 “경력이 짧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헤드헌터들이 ESG 직원들을 꾸준히 접촉하며 관리한다. 이들의 근속기간은 3개월에서 6개월”이라면서 “특히 기업들이 사업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시즌에 ESG 직원들의 이직이 활발해진다”고 귀띔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는 제대로 된 ESG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가 뒤늦게 ESG 학과를 개설하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현장의 수요를 맞추긴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 ESG 직군 지원자 중 대다수는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내 ESG 직업훈련기관이 각광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얼마 전 한 ESG 기관이 수강생을 모집했는데 구름떼처럼 구직자들이 몰렸다. 2일에 3500위안(약 66만 원)이라는 높은 수강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현재 기업이 인증하는 ESG 자격증은 4가지 정도다. 이 자격증을 따면 원하는 회사는 골라서 갈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자격증을 따기까지 평균 월 5500위안(약 104만 원)을 지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수강생 입장에선 감당하기 쉬운 금액이 아니다.
중국 대학생들 사이에선 ESG 스터디가 열풍이다. 우한 소재 한 대학에 다니는 학생은 “스터디가 생긴 지 3년 됐다. 그 전에 스터디에 함께했던 선배들이 모두 취업에 성공했다. 따로 전공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ESG 스터디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산점을 받았다고 한다”면서 “우리 스터디에 들어오기 위해 경쟁이 치열하다”고 전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