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당 1000만 원” 강도 알바 모집해 50여 건 범행…주범 와타나베 보이스피싱으로 600억 원 챙기기도
‘한 건당 100만 엔(약 980만 원) 고액 아르바이트 모집합니다.’ 와타나베 용의자는 휴대전화를 이용해 SNS에 접속, 이른바 ‘어둠의 아르바이트’ 광고를 내걸었다. 그러자 10대 후반부터 30대까지 젊은이들이 대거 몰렸다. 이렇게 모인 공범들에게 와타나베는 범행 대상자와 수법을 지시했으며, 그때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루피’라는 가명을 썼다. 인기 만화 ‘원피스’의 주인공 이름을 따온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도쿄 인근 가정에 집단 강도가 침입했다. 이들은 폭행과 금품탈취, 운전 등의 역할을 나눠 현금 3000만 엔(약 2억 9000만 원)과 금품 800만 엔(약 7800만 원)어치를 순식간에 훔쳐 달아났다. 경찰에 의하면, 동일 범죄단 소행으로 보이는 강도 사건이 2021년 여름 이후 50여 건이나 발생했다고 한다.
‘루피’ 일당의 존재가 알려진 계기는 1월 19일 도쿄 고마에시에서 일어난 강도살해 사건이다. 당시 단독주택에 사는 90세 여성이 지하 1층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시계 3점과 귀금속 등을 도난당했다. 이후 경찰은 사건에 사용된 렌터카 차내에서 스마트폰을 입수했는데, 여기에는 여성의 주소와 함께 ‘장갑과 모자를 준비하라’ ‘지하에 현금’ 등의 지시가 내려진 텔레그램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덜미가 잡힌 범인들은 결국 “루피라는 ‘지시역’에게서 메시지를 전달받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일본 매체 ‘슈프레뉴스’에 따르면 “와타나베 용의자 일행은 강도단 외에도 특수사기(보이스피싱) 범죄로 거액을 챙겼다”고 한다. 2018년 11월부터 2020년 6월까지 필리핀을 거점으로 일본에 사기 전화를 걸어 60억 엔(약 590억 원) 이상을 벌어들였다는 것. 매체는 “와타나베 일행이 2021년 여름 이후 특수사기에서 강도로 범행 행태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와타나베의 전 부하라고 밝힌 A 씨는 “특수사기를 칠 때부터 와타나베 무리는 ‘미치광이’로 유명했다”고 전했다. “우리는 안전한 장소(필리핀)에 있으니 뭘 해도 상관없다는 분위기로, 마치 게임을 하듯 범행을 서슴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A 씨에 의하면, 필리핀에는 80여 명의 부하가 있었고 와타나베는 그들에게 ‘보스’라 불렸다.
저널리스트 이시하라 유키오 씨는 “필리핀의 경우 대부분 휴대전화가 선불제 방식이라 이용자 정보를 등록하지 않고도 개통이 가능하다는 점이 범죄에 악용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와타나베 일행은 체포됐지만, 앞으로 흉악 강도사건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모방범에 대한 걱정이다.
특수사기는 여러 명의 ‘상담원’이 하루 수백 통씩 전화를 걸어야 하며, 현금 수거와 송금 담당 등 인력과 시간이 많이 든다. 게다가 최근에는 경찰 단속이 심해져 성공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시하라 씨는 “이번 사건을 보고 ‘귀찮은’ 특수사기보다 한탕 범죄(강도)가 낫다고 생각하는 ‘한구레(신종 폭력조직·半グレ)’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와타나베 일행이 단 한 번의 강도 범행으로 수억 원씩 갈취했다”는 점을 들며 “꽤 정확한 ‘암거래 명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는 추측도 나온다. 암거래 명부란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빼돌린 정보로 만든 명단이다. 가령 이름과 주소, 휴대전화 번호가 있는 경영자 명단이나 명품의류 구매자, 고급시계·귀금속 구매자 명단 등을 입수한다. 이후 복수 명단에 게재된 개인정보를 통합함으로써 ‘사장이자 고급품을 정기 구매하는 진짜 부자’를 추려낼 수 있는 것. 이렇게 데이터를 축적해가며 정확도 높은 ‘어둠의 명부’가 재탄생한다.
일본 언론에 의하면 “와타나베 일행은 구글맵에서 범행 대상자의 주소를 검색해 이웃집과의 거리나 파출소의 위치까지 꼼꼼히 체크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 범행을 실행한 것은 트위터를 통해 모집한 아르바이트생들이었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실행역’들은 대부분 20~30대로, 대학생과 직장인도 있었다. 일부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끌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헛된 욕망에 발을 들였다간 결코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경찰에 붙잡힌 강도들은 “아르바이트 정체를 알고 그만두고 싶었지만, 두목 ‘루피’가 사전에 신분증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요구했으며 가족신상까지 알고 감시해 지시대로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한편, 와타나베 용의자는 필리핀 현지에서 저지른 범죄로 수용소에 갇혀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휴대전화를 써 범행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전에도 필리핀에서는 일부 재소자들이 성인용품, 필로폰, 총기 등을 두고 생활했다는 사실이 발각돼 논란이 된 바 있다.
이와 관련, 헤수스 크리스핀 레물라 필리핀 법무장관은 “비록 일본과 범죄인인도조약을 체결하진 않았으나, 필리핀이 초국가적 범죄에 맞서 싸우는 데 있어 이웃 국가들과 협력할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며 와타나베 용의자들을 추방했다. 레물라 장관에 의하면 “필리핀 당국은 용의자들로부터 휴대전화 24대를 압수해 일본 당국에 증거품으로 건넸다”고 한다.
강도단 합류한 '미스 콘테스트' 출신 여성 화제
3월 11일, 필리핀 입국관리국은 “일본인 후지타 카이리 용의자(24)와 구마이 히토미 용의자(25)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지난 2월 일본으로 강제송환된 와타나베 유키 용의자 관련 특수사기·강도단의 일원으로, 이른바 ‘연락책’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인터넷상에서는 구마이 용의자가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다름 아니라 구마이가 모델 활동을 했으며, 대학교 1학년 때는 ‘미스 콘테스트’에도 출전했기 때문. 미스 콘테스트는 ‘일본 제일의 신입생을 결정’하는 대회로, 지금까지 수많은 아나운서와 탤런트를 배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주간여성프라임’에 따르면 “구마이 용의자는 조부가 시의원이었으며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한다. 학창시절에는 일본 적십자사 봉사활동도 성실히 해왔던 그가 대체 어떤 연유로 필리핀으로 건너가 강도단에 발을 들이게 됐는지 일본인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