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자는 분위기와 자연재해 많은 환경 영향…물렁한 겐코볼 도입도 대투수 배출 배경 꼽혀
최근 10여 년간 일본 야구계의 괴물급 신인이 이와테현에서 차례차례 등장하고 있다. 오타니와 사사키 외에도 2019년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기쿠치 유세이(31·토론토 블루제이스), 지금 일본 프로야구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유망주 사사키 린타로(17·하나마키히가시고교) 역시 이와테현 출신이다. 왜 유독 이와테현에서 초일류 선수가 탄생하는 걸까.
#가설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
시속 160km가 넘는 강속구를 던지는 데 큰 키와 긴 팔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러나 일본인 남성 중 신장 180cm를 넘는 인구 비율은 약 6.5%에 그친다. 190cm 이상은 0.1%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오타니의 신장은 193cm, 사사키는 192cm로 둘 다 장신이다.
스포츠 저널리스트 니노미야 세이준은 “유전자의 영향도 크겠지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한다. 총무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와테현민의 평균 기상시각은 6시 17분으로 일본 전국에서 가장 빠르다. 평균 수면시간도 7시간 54분으로 긴 편이다.
‘아이들은 자는 만큼 자란다’는 말이 있다. 성장호르몬이 밤 10시에서 새벽 2시 사이 수면 중에 주로 분비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일본 매체 ‘닛칸스포츠’는 “2000년대 이와테현에서는 아이의 키 성장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드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유행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사사키의 경우 초등학교 시절 밤 9시 전에 반드시 취침했다고 한다. 사사키는 “지금도 수면시간 확보를 최우선으로 한다”고 덧붙였다.
오타니도 “매일 잘 자는 게 중요하다”며 수면을 이도류 활약의 비결로 꼽은 바 있다. “하루에 최소 8~9시간은 잔다”고 한다. 오타니는 침구회사와 계약을 맺어 몸에 꼭 맞는 침구를 제공받는 등 수면 관리에도 철저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설② 자연·지리적 환경으로 인내심이 강하다
이와테현은 기후가 한랭하고 대부분의 땅이 산지다. 현 전체가 시골이라 변변한 산업 하나가 없는 낙후지역이었다. 1982년 도호쿠신칸센이 개통하면서 수도권으로의 접근성이 극적으로 개선, 왕래가 비로소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흔히 “이와테현 사람들은 인내심이 강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시인 다카무라 고타로는 이와테 출신의 기질에 대해 ‘천천히, 진득하게 목표를 달성한다’고 표현했다. 오타니 또한 성실 근면의 대명사로, 자타공인 노력 중독자다. 일례로 오타니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작성한 목표 달성표가 유명하다. 그가 세운 목표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지역 전략연구가 야노 신이치는 “변화무쌍한 자연환경과 잦은 지진으로 인해 확실히 이와테현에는 참을성 있고 견실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언급했다. 2011년에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이와테현의 모든 해안에 쓰나미가 밀려와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기도 했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사사키는 쓰나미로 아버지와 조부모를 잃은 아픔을 겪었다.
사사키는 인터뷰에서 “자연재해 경험이 날 강하게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소중한 가족과 일상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을 경험했다”며 “그러기에 매일매일 충실히 살고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설③ 중학야구 겐코볼 보급이 빨랐다
이와테현에서 좋은 투수가 계속 나오는 배경을 묻자, 시립중학교의 야구부 코치 스즈키 겐타는 “겐코볼의 영향인 듯싶다”고 추정했다. 겐코볼은 물렁한 고무제지만, 크기와 무게는 딱딱한 경식구와 같은 공을 말한다. 내부가 비어 있어 몸에 맞아도 충격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일본의 중학생 야구는 학교 밖에 있는 클럽팀에서 경식야구를 하느냐, 학교 동아리 활동으로 연식야구를 하느냐로 나뉜다. 겐코볼은 중학교 연식야구에서 고등학교 경식야구로 자연스럽게 전환할 수 있도록 2000년 개발된 공이다. 이와테현은 지바현과 함께 일본에서 가장 먼저 겐코볼을 도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이와테현은 겐코볼을 사용한 중학 야구대회가 개최 중이며, 독자적인 룰이 있다”고 한다. 가령 스트라이크존이 넓고, 보내기 번트가 금지다. 볼넷을 기다리거나 잔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배트를 휘두르도록 함으로써 타력 향상을 노렸다. 아사히신문은 “이것이 투수 입장에서는 볼넷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던질 수 있게 돼 투수력 향상으로도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가설④ 승리 지상주의를 배제한 지도력
스포츠 칼럼니스트 오이카와 아야코는 오타니가 어렸을 때 소속했던 야구팀 ‘미즈사와 리틀’의 경기를 견학한 후 “지도자가 승리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시합에서는 번트를 시키지 않고 과감하게 치라고 격려한다. 공을 치는 즐거움을 위해서다. 또한, 설령 수비 에러가 나더라도 도전하는 자세를 높이 평가한다. 소년야구는 무엇보다 ‘야구를 즐기면서 배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마키히가시고교 시절, 오타니는 사사키 히로시 감독의 지도를 받아 일본 무대를 점령했다. 히로시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나는 시속 160km의 공을 던져본 적이 없으므로 그 방법을 가르쳐줄 순 없었다. 하지만 지도자로서 반드시 가르쳐야 되는 것은 기술보다도 ‘생각하는 방법’일 것”이라는 소견을 드러냈다. 그가 오타니에게 “쓰레기는 사람들이 떨어뜨린 행운이다. 쓰레기 줍는 것을 행운을 줍는다고 생각해라. 그러면 스스로 행운을 가져올 것이다”라고 가르쳤던 일화도 유명하다.
한 기자가 이와테현의 ‘비밀’을 묻자 기쿠치 선수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꽃이랑 똑같다. 햇빛과 물을 주고, 마음을 담아 가만히 지켜본다. 그런 환경이 예쁜 꽃을 키운다고 들은 적 있다. 마찬가지로 이와테 사람들은 야구 소년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준다. 그런 토양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