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에 대한 전언 엇갈리며 당내 공방…양산 사저 책방 ‘친문 사랑방’ 될 수도
‘이재명 지도부 체제’에 대한 문재인 전 대통령 입장 전언이 엇갈리며 더불어민주당에선 공방이 벌어졌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문 전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에 힘을 실어줬다고 밝혔다. 박 전 원장은 3월 10일 양산 사저로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이후 17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인터뷰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현재 민주당이 총단합해 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잘해야 되는데 그렇게 (분열해) 나가면 안 된다. 지금 이재명 대표 외에 대안도 없으면서 자꾸 무슨’ 그 정도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을 맞아 이 대표가 양산 사저를 예방했을 때도 “이 대표를 중심으로 민주당이 뭉쳐 민생과 경제를 해결하는데 노력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한 바 있다. 박 전 원장에게 그때와 같은 입장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는 것이다.
반면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을 3월 17일 예방한 자리에서 이재명 대표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고, 오히려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민주당이 달라져야 하고 결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했다. 박 의원은 3월 2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표의 ‘이’ 자도 안 나왔냐”는 질문에 “자꾸 전직 대통령을 당내 현안 이야기의 소재로 하는 건 안 맞다고 본다”면서 “(이 대표 관련 얘기를) 나는 여쭤보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 전 대통령이) 지금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건 모든 국민이 안다. 민주당은 달라져야 되고 그러려면 뭔가 결단해야 되고, 그런 속에서 서로 단결하고 화합하지 않으면 어떻게 선거를 이기겠나. 너무 당연한 말씀을 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화’와 ‘결단’을 주문한 것은 박 전 원장이 밝힌 전언과는 뉘앙스가 다르다는 분석이 따라붙었다.
두 사람의 엇갈린 전언에 민주당 인사들이 첨언을 더하면서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비명계 중진 이상민 의원은 박 전 원장 전언에 “우리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하냐”고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친문계 윤호중 의원은 3월 2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누구 외에는 뭐가 없다’는 지금 (이재명) 당 대표를 믿고 뭉쳐서 잘 단합해서 승리해라 이런 취지의 말일 것”이라면서도 “(박 전 원장의 전언은) 문 전 대통령 화법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반면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같은 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훨씬 이전에도 그런 말씀(이 대표가 아니면 지금 달리 방법이 없다)이 있었다”고 박 전 원장의 손을 들어줬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책임자였던 이인규 변호사가 출간한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에서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등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4월 30일 대검 중수부에 출석해 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받은 명품시계 관련 조사 진행한 과정을 묘사하면서 이인규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 뒤에 앉아있던 문재인 변호사가 앞으로 나와 (시계) 사진을 보며 ‘시계가 이렇게 생겼군요’라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노 전 대통령이 궁색한 변명으로 궁지에 몰리는 상황에서 문 변호사의 뜬금없는 행동에 실소가 나왔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 서거 원인의 상당 부분을 변호인으로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무능과 무책임’ 탓으로 돌렸다. 문 전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검찰이 박 회장의 진술 말고는 아무 증거가 없다는 것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이인규 변호사는 “검찰 수사기록을 보지도 못했고, 검찰을 접촉해 수사 내용을 파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의견서 한 장 낸 적이 없는데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변호인으로서 문 전 대통령이 검찰을 찾아와 솔직한 검찰의 입장을 묻고 증거관계에 대한 대화를 통해 사실을 정리해 나갔더라면 노 전 대통령이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는 변호를 맡지 말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문 전 대통령을 향해 “슬픔과 원망과 죄책감을 부추기는 의식(문 전 대통령 저서 ‘운명’ 발간)을 통해 검찰을 악마화하고 지지자들을 선동했다”며 “노무현의 주검 위에 거짓의 제단을 쌓아 대통령이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정치적 해석을 야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8일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신간 ‘조국의 법고전 산책’을 소개하며 “저자의 처지가 어떻든 추천하고 싶은 좋은 책”이라며 “학자이자 저술가로서 저자의 역량을 새삼 확인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다”고 적었다.
당시는 조 전 장관이 자녀 입시비리와 유재수 전 부시장 감찰 무마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지 5일이 지난 시점이다. 특히 문 전 대통령이 조 전 장관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언급한 것은 사법부의 판결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것으로 읽혀 부적절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현재 문 전 대통령은 양산 사저 인근에 대외활동 공간인 ‘평산마을 책방’ 오픈을 준비 중이다. 책방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저자와 독자가 만나 토론하는 공간, 평산마을 주민 휴식공간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평산마을 책방이 문 전 대통령과 ‘친문계’의 활동 재개 거점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전직 대통령의 무게감은 크다.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가 부여될 수밖에 없다. 문 전 대통령이 책방에 매일 나와 정치인들과 시민들을 만나면 그 자체가 정치적 행위가 된다. 잊힌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과 달리 정치권의 중심으로 주목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이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에 몸담은 바 있는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 정치인들이 문 전 대통령을 예방하고, 그 자리에서 나온 말을 언론에 전하고, 이슈를 만들어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얻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엇갈린 전언에 대해서는 “문 전 대통령은 두 사람에게 아마 원론적인 말을 했을 것이다. 민주당이 단결하면 좋겠다는 건 당연한 입장 아니었겠느냐”며 “이를 박 전 원장과 박 의원이 자신의 생각에 맞게 해석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인규 변호사의 회고록에 대해서는 “문 전 대통령은 이미 ‘운명’을 통해 노 전 대통령 검찰 조사 당시 상황을 세세하게 적었다. 이 변호사의 회고록에 다른 내용이 나왔다 해서 대응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 정치권이 문 전 대통령을 둘러싸고 시끄럽지만, 문 전 대통령은 여러 논란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지난 2월 21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서울편’ 감상평 이후 한 달여 동안 SNS 활동도 하지 않고 있다. 이인규 변호사의 회고록에 대해서도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에서 보도자료 등을 통해 반박했을 뿐, 문 전 대통령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만약 문재인 전 대통령이 현안에 대한 입장을 낸다 해도 이 대표 체제를 흔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한 전략통은 “문 전 대통령은 원칙적인 사람이다. 이 대표는 전당대회라는 정당한 절차를 통해 선출된 당대표다. 이러한 당대표를 흔들어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여의도 정치에 입장을 낸다면 오히려 이 대표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여파는 차기 총선 과정에서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더 곤란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