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김종인 올리고 물러난 문재인처럼…이 대표도 하반기 스스로 비대위원장 모셔올 수도
‘이탈표 정국’의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친명계와 비명계가 이탈표 색출, 향후 대응 등을 놓고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결국 비상대책위원회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친명계 일각에서는 과거 ‘문재인 모델’을 벤치마킹하자는 방안이 거론되는 모습이다.
#무더기 이탈표 발생에 당 내홍
위례신도시·대장동 개발 특혜 및 성남 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부결은 많은 이들이 예상한 대로였지만, 세부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민주당 지도부는 ‘압도적 부결’을 자신했다. 2월 21일 비공개 의원총회 이후 체포동의안 처리와 관련해 ‘부결’ 당론 채택이 아닌 자율 투표에 맡기기로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대표적인 ‘비명계’인 설훈 의원조차도 “부결시키자” 주장했다는 말이 전해지며 단일대오 무게를 더했다.
하지만 막상 투표함 뚜껑을 열자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은 여야 의원 297명이 참석한 무기명 투표 결과 찬성 139명, 반대 138명, 무효 11명, 기권 9명이 나왔다. 찬성 또는 무효·기권 의사를 표시한 ‘이탈표’가 상당수 나온 셈이다. 민주당에서는 이탈표가 40표 안팎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번 표결 결과는 2022년 12월 노웅래 민주당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와도 차이를 보인다. 당시 노 의원은 뇌물수수·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재석 271명 중 찬성 101명, 반대 161명, 기권 9명으로 민주당 의원들이 무더기 반대표를 던진 바 있다.
이번 체포동의안 표결을 두고 민주당 내부는 큰 혼란에 빠졌다. 이재명 대표 지지자인 ‘개딸(개혁의 딸)’을 중심으로 이탈표 색출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SNS(소셜미디어) 등에서는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의 이른바 ‘수박’ 의원 명단이 공공연히 나돈다. 개딸 게시판에선 2024년 총선 공천 살생부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비명계 의원들은 거센 후폭풍에 입을 닫았다. 일부 비명계 의원실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항의전화로 업무를 볼 수 없어 전화기를 모두 내려놓는 상황에까지 놓였다. 친명계에선 이번 무더기 이탈표를 두고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을 것으로 의심한다(관련기사 투표 전날 친문계 모임에선…이재명 체포동의안 ‘이탈표’의 비밀).
민주당 한 전략통은 “표결을 앞두고 당 내부적으로 이탈표는 5~10표 이내라고 봤다. 그래서 지도부에서도 당론 채택을 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그런데 이탈표가 30표가 넘게 나왔다. 심지어 찬성표도 10표 이상이다. 그 외에는 무효·기권으로 체포동의안이 가결은 안 되면서도 이재명 대표는 흔들 수 있는 절묘한 숫자가 맞춰졌다. 조직적 계산이 없었다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반론도 있다. 친문계로 분류되는 민주당 관계자는 “친문계로 알려진 몇몇 의원들은 사석에서 자신은 부결을 던졌는데 개딸들에 표적이 됐다고 억울해하고 있다”며 “정치권에 비밀이 어디 있느냐. 몰래 회동을 해 조직적으로 이탈표를 계획했다면 분명 알려질 텐데 그런 위험을 감수할 리 없다. 비명계에서 처음부터 무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결을 던졌을 거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계파 없이 활동하는 초선 그룹에서 무효와 기권을 던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당 내홍이 극심해지자 이재명 대표와 지도부가 수습에 나섰다. 이재명 대표는 부결 다음날인 2월 28일 직접 “이번 일이 당의 혼란과 갈등의 계기가 돼선 안 된다. 특히 의원들 개인 표결 결과를 예단해 명단 만들어 공격하는 행위는 당의 단합에 도움이 안 된다. 민주당을 사랑하는 당원들은 중단해 주셔야 한다”며 강성 지지자들의 자제를 촉구했다.
박홍근 원내대표 역시 3월 1일 자신의 SNS를 통해 “지금은 표결 결과가 누구의 책임인지를 따져 물을 때가 아니”라며 “우리끼리 책임을 추궁하며 분열의 늪으로 깊숙이 걸어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윤석열 정권이 노리는 함정”이라고 당부했다.
#이탈표 색출작업 영향은
이번에는 부결을 이끌어냈지만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앞에 놓인 상황은 녹록지 않다. 앞서 대통령실과 검찰 안팎에서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쪼개기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이 언급됐다. 실제 검찰은 이번 구속영장 청구건 외에도 백현동 개발 비리 의혹(서울중앙지검),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수원지검), 정자동 호텔 개발사업 특혜 의혹(수원지검 성남지청) 등에도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이 중 ‘대북송금’ 관련 구속영장 청구 카드를 매만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체포동의안 표결로 민주당이 단일대오를 유지하는데 균열이 생겼다는 것을 확인한 검찰로서는 ‘쪼개기 영장 청구’에 자신감을 가질 수도 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개딸들이 주도하는 이탈표 색출 작업이 2차 체포동의안 정국에서는 가결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친문계 관계자는 “일부 비명계 의원들이 강성 지지자들에게 엄청난 항의를 받고 있다. 그중엔 억울한 의원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의원들이 억하심정에 다음 체포동의안 표결에서는 ‘찬성’으로 돌아서면 가결될 위험이 있다”고 걱정했다.
‘비명계’ 중진 이상민 의원은 3월 3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 인터뷰에서 “지금 나온 숫자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표현했는데 실제로 물밑에 있는 각종 우려와 생각은 많다”고 주장했다. 이어 강성 지지층의 분노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폐해와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밝혔다. 친명계는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다시 국회로 오면 이번에야말로 압도적 부결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앞서 민주당 전략통의 말이다.
“이번 체포동의안 표결의 핵심은 결국 차기 총선의 공천 문제다. 비명계가 이 대표를 흔들고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인하려고 이탈표를 던진 것이다. 찬성 무효 기권 표가 무더기로 나왔는데, 표결 이후 본인이 이탈표를 던졌다고 손들고 나서는 의원이 한 명도 없다. 이에 다음 표결이 있다면 이탈표를 던진 의원들이 또 다시 자충수를 두진 않을 것으로 본다. 이에 압도적 부결이 나올 수 있다.”
#비대위, 문재인 모델 현실성은?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부여당과 검찰이 짜놓은 ‘체포동의안 정국’을 돌파할 출구전략이 보이지 않는다는 고민이 감지된다. 이에 비명계를 중심으로 이재명 대표가 모종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상민 의원은 앞서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표가 수사 받고 재판받으면 더욱 더 검은 먹구름이 짙어질 것”이라며 “이 대표가 당대표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당대표를 벗어나는 것이 당과 이 대표의 사법적 리스크를 분리·차단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재명 대표가 당대표직에서 물러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현재 당에서 오르내리는 비대위원장 후보군으론 문재인 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이낙연 정세균 김부겸 전 총리, 최근 복당한 박지원 전 국정원장 등이다. 모두 정치경력이 풍부한 중진 의원 출신인 만큼 ‘관리형 비대위’ 구성과 운영을 무리 없이 해낼 것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총선 승리의 필승카드로는 꼽히지 않는다. 이낙연 전 총리의 경우 지난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 대표와 경쟁했다. 지지층 사이에 아직도 앙금이 남아있다. 따라서 이낙연 전 총리가 비대위원장으로 선임되면 당내 갈등은 더욱 극심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재명 대표 사퇴 이후 비대위 구성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진단도 적지 않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차기 총선까지 1년이 넘게 남았다. 1년 넘게 비대위를 운영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결국 올해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새 당대표를 뽑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계파 갈등이 다시 불거지지 않겠느냐”며 “또한 현재 민주당에서 이재명 대표 외에 당을 이끌 대안도 없다. 대책도 없이 이탈표로 이재명 대표를 흔든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일각에선 이른바 ‘문재인 모델’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기됐다고 한다. 전략통으로 불리는 야권의 한 관계자 말이다.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는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당 안팎에서 ‘대표 흔들기’가 계속되자, 인재영입위원장을 자처하며 친문계 공천 기틀을 마련한 뒤 김종인 당시 비대위원장 겸 선대위원장을 직접 모셔오고 본인은 당대표직에서 사퇴했다. 문 대표는 총선 과정에서 한발 빠져있었지만, 이후 총선 승리 주역으로 평가 받았다. 이재명 대표도 정당개혁을 통해 본인의 기반을 마련한 뒤 올해 하반기 스스로 비대위원장을 모셔와 비대위 혹은 조기 선대위를 구성하며 본인은 대표직에서 비켜서는 방식을 채택할 수도 있다.”
‘친명계 좌장’으로 평가 받는 정성호 의원은 지난 2월 24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표가 사퇴하는 것, 공천권을 내려놓는 게 ‘신의 한 수’라고 말하는데, 예상치 못한 시기에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예상하지 못한 내용을 가지고 해야 ‘신의 한 수’가 된다”며 “총선 6개월 전쯤 선거 기획단이 만들어지고, 4개월 전부터 공천 준비가 시작되는데, 당 안팎에서 여러 의견이 들어갔고 이재명 대표도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할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하지만 이번 체포동의안 이탈표 논란으로 ‘문재인 모델’이 계획대로 실행되겠느냐는 회의적 시각도 있다. 앞서 민주당 관계자는 “이른바 ‘문재인 모델’도 비명계가 암묵적 동의를 해야 가능하다. 그런데 이번 이탈표를 보면 알 수 있듯 친명계와 비명계 사이의 대립의 골은 깊다. 그런 상황에서 이 대표가 공천 사전 정지작업을 하고 비대위원장을 직접 임명하는데 비명계가 가만히 두고 보겠느냐”고 되물었다.
결국 이재명 대표가 당 내홍을 봉합할 수 있을지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계파색이 없다고 평가 받는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체포동의안 무더기 이탈표 이후 당 안팎에서 이 대표가 비명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다시 한 번 만나서 대화를 통해 설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당원 의견이 충실히 반영되는 방향으로 정치개혁을 해서 비명계를 압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결국은 이재명 대표가 결단을 해야 하는 대목이다. 지도부와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