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돈으로 이자 내기도 벅차 사업정리 수순 관측…‘총알’ 많지만 매각 앞둔 HMM “정해진 것 없다”
#HMM퍼시픽은 어떤 회사?
한진해운은 2006년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즈펀드(맥쿼리)와 합작해 한진퍼시픽을 설립했다. 한진해운은 당시 1007억 6000만 원을 투자해 한진퍼시픽 지분 60%를 확보했고, 맥쿼리가 나머지 지분 40%를 취득했다.
한진퍼시픽의 주요 사업은 해외 터미널 운영이었다. 한진해운은 일본 도쿄터미널과 대만 카오슝터미널의 운영권을 한진퍼시픽에 양도하면서 힘을 실어줬다. 한진해운과 한진퍼시픽은 터미널 사업을 확장해 한때 국내외에서 13개의 터미널을 운영했다. 터미널 운영은 각국의 계약에 따라 임대료를 내고 일정 기간 동안 운영권을 가지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한진퍼시픽은 일본과 대만 지역 터미널을 주로 운영했고, 나머지 터미널은 대부분 한진해운이 직접 운영했다.
한진퍼시픽의 실적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흑자를 기록한 해도 있었지만 적자를 거둘 때도 많았다. 하지만 한진퍼시픽은 실적을 떠나 계열사 전반에 긍정적인 효과를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당시 한진해운의 규모를 감안했을 때 효율적인 영업을 위해서는 해운물류 연계 사업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며 “터미널을 직접 운영하면 물류비용 절감, 정시성 제고에 따른 고객서비스 향상 등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0년대 들어 한진해운의 터미널 투자는 사실상 중단됐다. 해운업계가 불황에 빠지면서 투자는커녕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은 2008년 미국 잭슨빌 항만청과 계약을 맺은 후 잭슨빌 전용터미널을 건설해 2013년 개장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진해운의 당시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잭슨빌터미널 계획을 포기해야만 했다.
한진해운은 2016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17년 최종 파산했다. SM그룹은 당시 한진해운 미주·아시아 노선을 275억 원에 인수하면서 한진퍼시픽에도 관심을 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SM그룹 계열사 대한해운은 한진해운 및 그 계열사가 보유한 아시아 지역 터미널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대한해운 다른 주주들의 반대로 한진퍼시픽 인수는 이뤄지지 않았다.
한진퍼시픽에 관심을 둔 다른 기업은 HMM이었다. HMM은 다수의 해운 노선을 갖고 있지만 보유 터미널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었다. 2010년대 중반 당시 HMM 전체 비용에서 국내·외 하역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경쟁사 대비 높은 20% 중반 수준이었다. HMM이 터미널을 보유하면 하역비 절감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HMM은 2017년 2월 한진퍼시픽을 인수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HMM은 한진해운이 보유한 한진퍼시픽 지분 60%와 맥쿼리가 보유한 지분 40%를 총 150억 원에 인수했다. 한진퍼시픽은 이후 HMM퍼시픽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HMM은 인수 당시 “한진퍼시픽 지분 확보에 따른 항만 네트워크 확대를 통해 영업 경쟁력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며 “HMM+K2 컨소시엄과의 시너지 효과도 크게 기대된다”고 밝혔다. HMM은 2017년 장금상선, 흥아해운과 ‘HMM+K2 컨소시엄’을 결성해 아시아 노선 공동운항, 컨테이너 장비 공유, 항만 인프라 공동투자 등을 진행한 바 있다.
#HMM퍼시픽 손상차손 처리
HMM퍼시픽은 HMM에 인수될 당시 도쿄터미널, 오사카터미널, 카오슝터미널 등을 운영하고 있었다. HMM퍼시픽은 2017년 오사카터미널의 임대 계약을 종료했고, 2018년에는 도쿄터미널 임대 계약마저 종료했다. 자연스럽게 HMM이 HMM퍼시픽을 정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HMM퍼시픽은 2020년 카오슝터미널 임대 계약을 갱신하면서 사업을 이어갔다.
그런데 최근 HMM이 HMM퍼시픽을 전액 손상차손 처리하면서 사업 정리설이 재점화됐다. 손상차손이란 실제 가치가 장부 가치보다 현저히 하락했을 때 재무제표에 손실로 반영하는 회계처리를 뜻한다. 손상차손 처리는 청산 절차를 밟기 위한 초기 작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HMM퍼시픽의 카오슝터미널 임대 계약 기간도 올해 말까지다. HMM은 HMM퍼시픽을 손상차손 처리한 이유에 대해 “손실이 누적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MM퍼시픽이 수년째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도 철수설에 힘을 보태고 있다. HMM퍼시픽은 2020년과 2021년 각각 24억 원, 34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HMM퍼시픽의 부채가 너무 많아 이 정도 영업이익으로는 이자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HMM퍼시픽은 2020년과 2021년 이자비용으로만 각각 204억 원, 185억 원을 지출했다. 그 결과 HMM퍼시픽은 2020년 105억 원, 2021년 197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각각 기록했다.
HMM퍼시픽의 부채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 4453억 원이다. 또 자본총액은 마이너스(-) 4340억 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그러나 HMM이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지난해 말 기준 4조 9802억 원임을 감안하면 HMM퍼시픽의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은 아니다. 더구나 HMM이 확보한 터미널은 8곳뿐이고, 이마저도 4곳은 직접 운영이 아닌 지분 투자를 통해 영향력을 발휘하는 수준이다. 한진해운이 한때 10곳 이상의 터미널을 확보했던 것을 감안하면 HMM의 터미널 수는 많지 않다.
하지만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고 해서 선뜻 투자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KDB산업은행은 최근 삼성증권을 HMM 매각 주관사로 선정하는 등 HMM 매각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KDB산업은행 입장에서 HMM 매각을 앞두고 회사 체제에 굳이 변화를 줄 필요는 없다. 다만 KDB산업은행과 HMM은 모두 “소유와 경영은 분리돼 있다”고 주장한다.
HMM 매각이 성사되면 인수자의 의중에 따라 HMM퍼시픽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 HMM 관계자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현재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