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적분할 논란에 내부 정보 이용 주식거래 의혹 등 시장의 건전한 성장에 찬물도
네이버금융에 따르면 이차전지 테마로 묶여 있는 상장 기업은 130여 곳에 달한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에 가입한 이차전지 관련 회원사가 163곳인 점을 감안하면 이차전지 사업을 하는 대부분 기업이 상장했다고 할 수 있다.
이차전지는 기업공개(IPO) 때도 흥행을 이끌었다. 2021년 상장한 이차전지 관련 기업은 총 8곳이다. 이들의 기관투자자 경쟁률은 1635.15 대 1에 달한다. 당해 평균 경쟁률인 1189.60 대 1보다 훨씬 높다. 주식시장 혹한기에 들어선 2022년에도 이차전지 관련 기업은 9곳이 상장했고 1063.22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 역시 당해 평균 경쟁률인 836.40 대 1보다 높은 수치다. 17개 기업 중 2개 기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상장일 종가 기준 수익을 안겼다. 이들의 평균 수익률은 공모가 기준 약 59%다. 7개 기업은 상장일 시초가가 공모가보다 2배 높은 가격에 형성되기도 했다.
2020년대 이전 상장했던 이차전지 기업들의 주가도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19년 상장한 에코프로비엠의 주가는 지난 30일 종가 기준으로 상장일 시초가 대비 4배가량 상승했다. 엘엔에프 주가 역시 2020년 첫 영업일 기준 2만 원 초반대에 불과했으나 30일 기준 종가는 29만 6000원에 달한다. 14배 이상 상승했다. 2019년 상장한 천보의 주가도 30일 종가 기준 24만 7000원으로 5배 이상 상승했다.
이 같은 현상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려는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차전지 사업부를 물적 분할해 신설법인을 만든 후 상장시키는 사례다. 물적 분할은 존속회사가 신설법인 지분을 100% 소유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회사만 이득을 챙기는 구조다. 인적 분할과 달리 기존 법인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소액주주들이 아무런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없다. 반면 신설된 법인은 3자 배정 유상증자,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등을 통해 신규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신설법인이 상장하면 기존 법인의 주가는 흔들린다. 기존 법인 주가에서 물적 분할한 신설법인의 성장 기대감과 실적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물적 분할로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 기존 법인의 주주들은 보유한 주가의 가치가 떨어진다. 이익은커녕 손해만 보는 것이다.
투자자들의 물적분할에 대한 분노를 야기한 대표적인 기업은 LG화학이다. 2020년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을 물적 분할한 후 지난해 1월 IPO를 진행했고, 10조 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그러나 LG화학의 이차전지사업을 보고 투자한 투자자들은 뒤통수를 맞았다. LG엔솔의 물적 분할과 상장으로 100만 원이 넘던 LG화학 주가는 40만 원대로 추락했다. 투자자들의 원성이 클 수밖에 없었다.
LG화학은 또 2021년 11월 LG BCM(배터리코어머티리얼즈)를 새로 설립하면서 투자자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LG BCM은 오는 2025년까지 5000억 원을 투입해 이차전지 양극재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LG화학 투자자들은 다시 한 번 핵심사업이 떼어져 나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냈다. LG화학은 당시 LG BCM의 상장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일부 소재·부품·장비 기업도 이차전지 사업을 기업 가치를 올릴 기회로 삼고 있다. 국내 분리막 제조업체 2위로 알려진 더블유씨피(WCP)는 지난해 하반기 IPO 최대어로 거론됐다. 하지만 희망 공모가액을 8만~10만 원으로 책정하며 공모가 고평가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기관투자자의 외면을 받으며 33.28 대 1이라는 처참한 경쟁률 성적을 받았고 공모가를 6만 원으로 낮추는 수모를 겪었다.
IPO 시 사업 현황에 이차전지를 끼워 넣는 일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지난해 말 상장한 펨트론은 3D 정밀공정 검사장비를 SMT, 반도체, 이차전지 시장에 납품하고 있다. 이들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펨트론이 이차전지 시장에 제품을 납품해 거둔 매출은 전체의 2.1%에 불과했다. 펨트론은 희망 공모가액도 1만~1만 1000원으로 책정하며 공모가 논란까지 불러 일으켰다. 결국 이보다 낮은 8000원에 공모가를 확정했다.
임직원들의 불공정 거래 의혹도 나오고 있다. 에코프로는 설립자 겸 최대주주인 이동채 회장이 2020년 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에코프로비엠의 중장기 공급계약 정보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리기 전 차명 증권계좌를 이용해 미리 주식을 매수했다가 되파는 수법으로 11억 원을 챙긴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35억 원을 선고받은 이동채 회장은 지난해 10월 항소했다. 당시 이 회장과 함께 에코프로·에코프로비엠 전·현직 임직원 5명도 비슷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1년 6월, 집행유예, 벌금형 등을 선고받았다. 지난 15일과 16일에는 금융위원회 특별사법경찰이 충북 청주의 에코프로 본사를 압수수색하면서 투자자들에게 또 다시 충격을 안겼다. 에코프로는 “금번 조사는 앞선 조사의 연장선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사건으로 이득을 본 전·현직 임직원이 더 있다는 뜻이다.
이차전지업계 한 관계자는 “임원진이 내부 정보로 차익을 남긴다는 것 자체가 그 회사뿐 아니라 시장 전체의 분위기를 말해준다. 시장이 막 성장하는 단계인데도 이런 사건이 나온 것은 이차전지 시장의 비전은 밝아도 국내 회사들의 비전까지 밝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에코프로 사례는 국내 이차전지 시장의 현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의 이차전지 사랑은 멈출 줄 모른다.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도 압수수색 이후에도 주가는 치솟고 있다. 흡사 바이오 테마에 투자자들의 자금이 몰리던 시절과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구체적인 성과가 아닌 ‘하겠다’ 등의 계획만으로도 주가가 치솟는 상황이다. 이차전지업계 다른 관계자는 “눈에 보이는 기업 외에도 이차전지 테마로 소위 ‘한탕’ 해 먹으려는 기업이나 세력이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라며 “국내 이차전지 시장이 암울한 상황으로 가기 직전의 단계”라고 우려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