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소재 기업들 실적보다 기대 앞선단 분석…미∙중 갈등으로 자원 전쟁 벌어질 가능성도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승용차 및 소형 트럭 탄소배출 규제 방안이 최근 공개됐다. 2027년부터 2032년까지 판매되는 차량의 배출가스 한도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한도를 넘으면 판매대수에 따라 막대한 벌금이 부과된다. 이를 피하려면 배출가스가 적거나 아예 없는 차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추산하면 2032년까지 미국에서 팔리는 차량의 3분의 2가 전기차가 돼야 한다. 기존 미국 정부의 전기차 비중 목표는 2대 중 1대꼴이었다. 이번 EPA 발표는 미국의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 비중을 50%에서 67%로 키우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미국 시장을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만들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세계 최대 시장이 되면 공급망의 중심에 자리할 수 있다. 골드만삭스 전망을 보면 현재 각각 100만 대와 600만 대인 미국과 중국의 전기차 시장 규모가 2030년에는 800만 대와 900만 대로 격차가 좁혀진다. 올해부터 미국을 추월한 유럽이 2030년이 되면 1200만 대로 세계 최대 시장이 될 것이라는 것이 골드만삭스의 예상이다. 2040년에도 미국과 중국이 1400만 대, 유럽은 1600만 대 시장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으로선 이를 뒤집을 ‘역전타’가 필요하다.
K-배터리의 핵심 시장은 미국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팔린 신차 중 전기차 비중은 5.8%로 아직 미미하다. 이번 EPA의 발표로 시장 기대성장치는 8.6배에서 11.6배로 커졌다. 미국 시장에서의 성장 기대로 올해 들어 배터리 세계 2~3위인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주가는 각각 40%, 30% 이상 급등했다. 같은 기간 세계 1위인 중국 CATL의 주가가 고작 3%대 상승으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한 것과 대조적이다. EPA의 새로운 목표 설정으로 K-배터리의 일감은 더 늘어날 수 있게 됐다.
전기차 배터리는 반도체와 달리 우리 기업의 중국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중국은 배터리 성능보다는 원가가 낮은 제품을 선호한다. 자국 기업인 CATL과 BYD의 점유율이 70%에 육박한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고성능 배터리를 선호해왔다. 그래서 일본과 한국 배터리를 선호한다. 최근 포드가 CATL과 손을 잡았지만 최근 미∙중 갈등을 고려할 때 중국 배터리가 미국에서 점유율을 높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번스타인의 전망을 보면 2030년까지 LG∙삼성∙SK 등 K-배터리 3사의 최대 시장은 미국이다. 점유율이 최소 60% 이상이다.
현재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중국 CATL, BYD, CALB , K-배터리 3사, 일본 파나소닉 등 7개 업체가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자동차업체 수보다 적다. 배터리는 전기차 원가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지금은 배터리 업체가 ‘갑’이다. 결국에는 완성차 업체가 직접 배터리를 만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테슬라도 직접 배터리를 개발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배터리 제조사보다 부품∙소재 기업에 관심이 더 뜨겁다. 배터리 제조의 주도권이 완성차업체로 넘어가더라도 소재와 부품은 계속 공급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배터리 관련 소재를 만드는 에코프로비엠 주가는 올해만 200% 이상 폭등했다. 리튬 개발을 하는 포스코홀딩스와 양극재와 음극재를 생산하는 포스코퓨처엠(옛 포스코케미칼)도 40%대와, 70%대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시가총액 20조~30조 원대로 모두 대한민국 15대 상장사에 이름을 올릴 정도다. 그런데 단기간에 주가가 너무 많이 오르면서 경계론이 등장했다. 하이투자증권은 최근 에코프로비엠 목표주가를 16만 원에서 26만 5000원으로 올렸다. 전일 종가보다 2만 원가량 낮은 수준이다. 사실상의 매도 의견인 셈이다.
아무리 성장이 확실해도 너무 먼 미래의 실적까지 끌어와 과도하게 높은 가치를 부여하면 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경계감이 배경이다. 하이투자증권 정원석 연구원은 “현재 평가가치는 2025년 예상 실적 기준 주가수익비율(PER) 41.2배로 2027∼2030년 실적이 선반영된 수준까지 올라 전 세계 2차전지셀, 소재업종 내 가장 높은 배수(multiple)”라고 지적했다. 그는 “2027년 예상 주당순이익(EPS) 1만 3141원에 PER 20배가 적당하며 2030년에는 전기차 침투율이 50%까지 높아지며 실적 성장세가 둔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가격경쟁도 변수다. 내연기관 자동차 기준 세계 3대 그룹인 폴크스바겐, 도요타, 현대차그룹이 모두 공격적인 전기차 공급확대 계획을 밝혔다.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결국 핵심은 가격이다. 세계 1위 테슬라는 올해 초 선제적으로 제품가격을 20% 인하했다.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서는 가격이 내연기관 자동차 수준으로까지 떨어져야 한다. 완성차업체들이 배터리 원가로 경쟁을 벌이면 부품과 소재업체들의 영향을 받게 된다. 매출이 늘어나도 수익성은 점차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 생태계의 가장 예측이 어려운 변수는 자원이다. 폭발적 수요를 받아낼 만큼 공급이 충분할지도 미지수지만 미∙중 갈등으로 자원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크다. 중국은 이미 희토류 공급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자원 공급이 끊기면 전기차 보급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2차전지 제조원가 비중은 양극재(52%), 분리막(16%), 음극재(14%), 전해액(8%) 등의 순이다. 양극재와 음극재 자원이 핵심이다. 양극재 재료는 리튬, 코발트, 망간이 쓰인다. 리튬은 지각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0.0017%에 불과하다. 주 생산국은 미국, 칠레, 호주, 캐나다, 중국 등이다.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도 540만 톤이 매장돼 있다. 2017년 체코에서 유럽 최대 광산이 발견됐다. 재사용이 가능하다. 니켈은 채산성이 있는 광산이 캐나다, 러시아, 인도네시아, 짐바브웨,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집중돼 있다. 코발트는 세계 매장량의 71%가 정치가 불안한 콩고민주공화국에 묻혀 있다. 상당수 코발트 광산들을 공동 보유한 중국기업이 콩고 생산량의 과반을 가져간다.
가장 심각한 자원은 음극재의 재료인 흑연이다. 대체품이 없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에너지 저장을 위해 필요한 광물 전체 수요를 100이라고 가정할 때, 흑연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53.8%에 이른다. 전기차 배터리 1개당 흑연 함유량은 20~30%에 이른다. 2030년 흑연 수요량은 현재의 약 10.5배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전세계 흑연 생산의 거의 대부분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