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경쟁 심화 전망, 경쟁사 주가와 차입금 부담도…변수 많은 시장에도 SK온 “일단 2025년 이후 상장 계획”
#IRA, 환경 규제 소식은 호재이지만…
4월 12일(현지시각)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탄소 배출 규제 초안을 발표했다. 2027~2032년식 신차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CO2), 비메탄계 유기가스(NMOG), 질소산화물(NOx), 미세먼지 등의 배출 허용량을 연평균 13%씩 감축시키는 것이 규제안의 골자다. 2032년에 생산되는 차의 평균 배기가스 배출량은 마일(1.6km)당 82g(그램)으로 제한된다. 2026년식 자동차 대비 배출량이 56% 줄어든다.
자동차 업체들이 배기가스 기준을 맞추려면 내연기관차가 아닌 전기차 판매량을 늘려야 한다. 미국 환경당국은 미국에서 파는 승용차 중 전기차 비중이 지난해 5.8%에서 2032년 67%로 확대되리라 전망한다. 전기차 생산량이 늘면 배터리 주문 물량도 늘어난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수요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3%에서 2025년 44%로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 바 있다.
앞서 3월 31일(현지시각) 미국 정부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주는 IRA 전기차 보조금 세부 지침을 발표했다. 4월 18일부터 전기차 배터리 부품 50% 이상이 북미산 부품이거나,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에서 가공한 광물 40% 이상을 사용하면 3750달러씩 보조금을 지급한다. 또 2024년부터 중국 등 우려외국법인에 의해 제작, 조립된 배터리 부품을 사용하면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다. 2025년부터는 우려외국법인에 의해 핵심 광물을 사용해도 세액공제 대상에서 뺀다. 당장 국내 기업들이 수혜를 볼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장밋빛 전망만 있지는 않다. 환경 규제 강화로 미국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 판매량을 늘리는 게 중요해지면서, 미국 시장에서 한국 배터리 기업과 중국 배터리 업체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 소비자가격을 낮추기 위해서 가격이 저렴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사용량을 늘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전기차용 LFP 배터리 시장에선 중국 CATL 등 중국 기업 점유율은 95% 이상으로 알려졌다. SK온과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부터 본격적으로 LFP 배터리를 양산한다는 계획을 밝혔는데, 후발주자인 우리 기업이 가격 경쟁력 등을 얼마나 갖출지가 변수다.
최근엔 미국과 중국이 협력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2월 미국 포드와 글로벌 배터리 1위 회사인 중국 CATL은 미국 미시간주에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포드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CATL은 기술만 제공한다. 3월 30일(현지시간)에는 블룸버그통신을 통해 CATL이 미국 테슬라와도 배터리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이 우리나라 배터리 제조사들보다 훨씬 전향적인 조건으로 합작한다. 우리 업체들은 미국 공장 지분 조건을 50 대 50으로 내건다면, 중국은 미국에 100% 지분을 내어준다고 한다. 합자 조건과 가격을 따져봤을 때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한국 배터리를 무조건 선택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향후 중국 업체뿐 아니라 유럽 등 다른 국가 회사들과의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IRA 생산세액공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 배터리 기업의 미국 진출에도 긍정적이다. 실제 스웨덴 노스볼트는 IRA 발표 이후 미국 공장 건설을 검토 중이라 밝혔다. 노르웨이 프레이어 배터리도 미국 조지아주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2025년 이후 배터리 공급 과잉이 올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마르코 모더 맥킨지앤드컴퍼니 파트너는 지난 3월 열린 ‘더 배터리 콘퍼런스 2023’에서 “2025년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수요 전망치가 2300GWh(기가와트시)인데 이를 넘어선 배터리 공급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다수 중국 기업이 계획한 물량을 생산해내지 못해 배터리 공급과잉이 일어날 가능성은 작다는 반론도 있다.
국내 배터리 업계에선 향후 시장 점유율 확보에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기업이 우회해 미국 시장에 진출하더라도) 배터리 산업이 수주산업이라는 특성, 중국 기업들과 한국 기업들의 타깃 세그먼트와 주력 제품이 달라 영향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도 미국과 합작공장을 세우며 수주 물량을 확보해 놓았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촉망 받은 기업인 영국 배터리 회사인 브리티시볼트도 파산 절차를 밟은 만큼, 실제 유럽 배터리 업체들의 계획이 실현될지도 지켜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SK온 IPO 시점 앞당길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배터리 3사 중 두 번째 상장 주자인 SK온의 상장 시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3월 30일 SK이노베이션 정기주주총회에서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SK온의 기업공개 시점은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2025년 이후가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퓨처모빌리티연구소장)는 “2025년에 전고체 배터리를 등장시키고 나서 IPO를 해야 충분히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배터리 시장을 둘러싼 변수 탓에 SK온이 IPO 시기를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SK온의 미국 법인 매출은 지난해 9624억 원이다. 중국의 장쑤성·옌청 법인 매출(2조 978억 원)와 비교해 절반 수준이다. SK온은 미국 배터리 생산 역량을 현재 22GWh에서 2025년 94GWh로 늘릴 계획이다.
박철완 교수는 “SK온은 글로벌 시장 점유율의 5~6%를 확실히 차지하고 있고, 앞으로는 공급사와의 관계와 수율을 안정화하는 과제가 남았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좋아질 일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 배터리 업계가 밀릴 수 있는 상황이고 경쟁이 격화되면 2025~2026년 즈음엔 라인 가동률이 얼마나 될지도 장담할 수 없다. 회사를 안정화하고 자금원을 확보할 필요가 있으니 최대한 빨리 IPO를 하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SK온 입장에선 ‘공동운명체’가 된 LG에너지솔루션의 주가가 올랐을 때 상장해야 가치를 높게 평가 받기도 유리하다. LG에너지솔루션 주가는 지난해 4월 13일 43만 1000원에서 올해 4월 13일 59만 9000원으로 39% 뛰었다. 하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하락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일단 SK온은 흑자 전환이 과제다. 지난해 연결 재무제표 기준 SK온은 1조 727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21년(3137억 원) 대비 적자폭이 커졌다. 지난해 4분기에는 2570억 원의 적자를 냈는데, 증권가에서는 올해 1분기 SK온이 4000억 원대의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 전망한다. 부채비율은 2021년 167%에서 지난해 258%로 높아졌다. 배터리 공장을 증설하면서 차입금이 2021년 4조 5111억 원에서 지난해 10조 7507억 원으로 138% 늘어났다. 지난해 말 기준 만기가 1년 이내인 사채·차입금·리스부채는 5조 7061억 원이다. 다만 최근 1조 2000억 원가량의 자금을 한국투자PE 이스트브릿지파트너스로부터 조달한 점은 긍정적이다.
AMPC가 흑자 전환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AMPC는 미국에서 배터리를 생산할 경우 1kWh(킬로와트시)당 35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제도다. 증권가에서는 SK온의 미국 내 170GWh 이상의 생산규모를 감안해 올해 SK온이 4201억 원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봤다. LG에너지솔루션은 1분기 잠정실적에 1003억 원의 AMPC 혜택을 영업이익으로 반영했다.
이와 관련, SK온 관계자는 “우선 2025년 이후에 IPO를 고려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