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관객 점유율 34.4%, 2030 여성 비중 높아…실사 영화 ‘오세이사’ 24년 만에 누적 관객 110만 명
#일본 영화 신드롬, 애니메이션이 주도
일본 영화 돌풍의 중심에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3월 8일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즈메의 문단속’은 30일 누적 관객 320만 명(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개봉작 가운데 ‘최단 기간 100만 돌파’ 기록까지 보유하고 있다. 1월 4일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인기는 더 뜨겁다. 누적 관객 430만 명을 넘어, 450만 명 돌파까지 넘본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최근 박스오피스 차트를 싹쓸이하기도 했다. 3월 10~12일, 3월 17~19일 주말 동안 ‘스즈메의 문단속’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박스오피스 1, 2위에 나란히 올랐고 뒤를 이어 또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52만 명) 역시 5위 안에 진입했다. 이들 3편은 같은 기간 예매율 1~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6~7년 전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 극장가에서 눈에 띄는 흥행 성적을 거뒀지만 최근의 열풍은 그 이상으로 뜨겁다. 충성도 높은 관객층을 확보한 이들 작품은 ‘N차 관람’까지 이끈다. 뜨겁게 달아오른 인기는 쉽게 잦아들지 않는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경우 개봉 석 달째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박스오피스 3~4위권을 지킬 만큼 인기다. ‘스즈메의 문단속’ 역시 당분간 흥행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추세라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수립한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최다 관객 기록을 곧 앞지를 가능성이 크다.
#일본 영화, 20년 만에 100만 돌파 기록
일본 영화의 흥행 돌풍은 애니메이션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최근 극장가 이슈 가운데 하나는 일본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오세이사)의 100만 관객 흥행이다. 지난 11월 30일 개봉한 이 영화는 국내 관객에 익숙한 배우가 출연하지도 않고, 유명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 아닌데도 누적 110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애니메이션이 아닌 일본 실사 영화가 100만 관객을 모은 것은 2003년 ‘주온’ 이후 20년 만이다. 특히 110만 관객을 돌파한 건 1999년 ‘러브레터’ 이후 24년 만이다. ‘러브레터’의 공식 누적 관객은 115만 명이다.
사실 일본 영화는 한국 영화나 할리우드 작품들과 비교해 확장성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역대 흥행 기록에서도 이 같은 현상은 확인된다. ‘러브레터’ 이후에도 공포영화 ‘주온’,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대표되는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연출작이 꾸준히 개봉했지만 ‘오세이사’ 이전 20년 동안 100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은 없었다. 소소한 일상, 서정적인 감성에 주목하면서 대중적으로 관객을 끌어 모으는 데는 그만큼 한계도 분명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한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오세이사’의 110만 돌파에 이어 ‘스즈메의 문단속’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 돌풍은 한국 극장가에서 일본 영화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3월까지의 수치만 본다면 한국 영화를 위협할 수준이다. 실제로 올해 관객 점유율에서 일본 영화는 34.4%(3월30일 기준)로 1위에 올라있다. 뒤를 이어 미국 영화가 31.5%로 2위, 한국 영화는 30.4%로 3위에 그치고 있다.
#일본 영화 흥행 주축, 2030 여성 관객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일본 영화의 흥행은 20대 관객, 특히 여성 관객이 이끌고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경우 만화 원작에 열광했던 30~40대 남성 관객이 초반 흥행을 주도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20~30대 여성으로 관객층이 확장됐다.
CGV 예매 집계에 따르면 ‘더 퍼스크 슬램덩크’의 여성 예매 비율은 60.3%로, 남성 비율 39.7%보다 월등히 높다. 연령별 예매 비율에서도 20대(29.8%)와 30대(32.6%)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영화 주축 관객의 높은 호응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450만 관객 동원을 바라볼 수 있는 원동력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의 상황도 비슷하다. 여성(55.4%) 예매율이 남성(44.6%)보다 높고, 연령별로는 20대(39.2%)의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오세이사’ 예매율에서는 여성(68.1%)와 남성(31.9%)의 비율 차이가 뚜렷하다.
국내 극장가에서는 없었던 일본 영화의 동시 흥행을 두고 갖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한국영화 라인업의 부재 등 외적인 이유가 그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한편으론 한국과 일본의 ‘정서적인 공감대’의 측면에서 이를 바라보는 의견도 있다.
2017년 ‘너의 이름은.’으로 380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고 이번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다시 흥행에 성공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서울에 오면 어떤 곳은 미래의 도쿄가 아닐까 할 정도로 두 곳의 거리 풍경이 닮았다”고 밝혔다. 이어 “풍경이란 사람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서 (한‧일 양국 사람들의) 마음 형태가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그래서 한국 관객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많이 봐주고, 일본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는 게 아닐까”라고 짚었다.
10~20대 관객들이 일본의 문화에 대해 정치·사회적인 이유에서 파생된 반감이 덜한 점이 최근 일본 영화의 흥행을 이끈다는 해석도 있다. 이는 일본 작품들을 예매하는 비율이 20대에 집중됐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일본 영화가 돌풍을 일으키는 동안 한국 영화는 ‘참패’를 거듭하고 있다. 연초 개봉한 ‘교섭’은 황정민, 현빈이라는 특급 스타 배우를 앞세우고도 손익분기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72만 명 동원에 머물렀다. 3월 개봉작들의 성적표는 더 초라하다. 이성민‧김무열의 ‘대외비’가 75만 관객 동원에 그쳤고, 차태현‧유연석 주연의 ‘멍뭉이’는 가까스로 17만 명을 모으고 주저앉았다. 김다미와 전소니, 변우석 등 20대 대표 스타 배우를 내세운 ‘소울메이트’는 20만 관객에 머물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 촬영한 영화들이 속속 개봉하는 가운데 작품의 경쟁력이나 완성도와 별개로 배급 전략의 참패가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