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불났는데 회장님은 ‘강 건너 불구경’
▲ 2010년 전국농민회 소속 회원들이 사업구조 개편에 대비한 ‘농협법’ 개정을 거부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유장훈 기자 |
농협 노조원들이 이토록 위기감을 느끼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태의 원인이 된 것은 농식품부와 농협중앙회의 사업구조 개편 이행약정서 체결이다.
정부는 농협의 사업구조 개편(신·경분리)과 관련해 농협의 부족자본금 5조 원을 지원하는 대신 조직·인력 등에 대한 경영개선 약정서를 요구했다. 이행약정서는 크게 △각 부문별 독립사업부제 강화 △경영효율화 △자체자본 확충 △조합지원사업 개선 △중앙회가 조합 출하물량의 50% 이상 책임 판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같은 이행 사항들은 노조의 반발을 샀다. 정부가 부족자본금 지원을 빌미로 농협의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가 짙은 까닭에서다.
사측이 노조와 합의하고 충분히 설득한 후 약정서를 제출하겠다던 당초 약속을 어긴 것도 노조의 불만사항이다. 정인태 농협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사측에서 일언반구도 없이 약정서를 제출했다”며 “지금도 노조와 대화를 완전히 단절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노조의 강력 반발에도 농협중앙회가 노사합의 없이 독단적으로 약정서를 제출한 까닭은 약정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정부의 지원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지원금을 받아야 지난 3월 각각 분리된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농협중앙회 측은 “정부 지원금을 받으려면 이행약정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경영진의 인식”이라며 “법률자문도 받아보았지만 이행약정을 해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전했다.
▲ 서울 중구의 농협중앙회.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농협노조가 속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위원장 김문호)은 ‘경영효율화’라는 말에 주목하고 있다. 농식품부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경영효율화라는 개념이 현실화할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일이 인력과 조직의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금융노조 측 주장이다. 금융노조는 또 “자청해서 정부의 노예가 되겠다며 이행약정서를 구걸한 농협중앙회 사측에도 그 책임을 분명히 물을 것”이라며 노사합의 없이 독단적으로 이행약정서를 제출한 농협중앙회를 비난했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모습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최 회장은 오히려 농협노조가 총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한 지난 5월 30일 경기도 양평군에서 권재진 법무부 장관 등과 함께 ‘농촌일손돕기’에 나섰다.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인 농협중앙회의 사정을 감안하면, 보기에 따라서 한가하게 비칠 수 있다. 최 회장은 상황이 이렇게 복잡해지고 노조원들의 분노를 야기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농협의 사업구조 개편과 정부 지원금은 누구보다 최 회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업구조 개편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이를 위한 개정 농협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때는 최원병 회장 1기 때다. 원활한 사업구조 개편과 6조 원의 정부 지원금 조달은 최 회장의 연임 공약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현재 농협중앙회의 노사 간 갈등과 정치권의 움직임을 잘 조율하는 것이 최 회장이 해야 할 일인 셈이다. 게다가 정부 지원금 6조 원을 받아내겠다고 한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4조 원밖에 못 준다던 정부에 가까스로 5조 원을 받아낸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정부 지원금 5조 원의 조달 방식도 깔끔하지 못하다. 정부가 지원하기로 한 5조 원의 구성을 보면 4조 원은 농협금융채권을 발행, 여기에 소요되는 연이자 1600억 원가량을 정부가 5년간 지원하기로 했다. 나머지 1조 원은 정부가 보유한 주식을 현물로 출자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산은금융지주, 한국도로공사 등의 주식을 출자할 것이 유력하다. 다시 말해 정부 지원금 5조 원 중 현물은 1조 원밖에 안 되는 것이다. 이마저도 국회 동의를 받지 못해 아직 집행되지 않고 있다.
현재 농협노조는 정시에 퇴근하는 등의 방법으로 ‘준법투쟁’을 펼쳐나가고 있으며 조만간 총파업에 들어갈 것을 계획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농협노조의 총파업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하지만 노조 측은 강경한 자세를 굽히지 않고 있다. 농협노조 측은 “얼마든지 총파업이 가능하다”며 “약정서 체결 무효화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천명했다.
정치권조차 농식품부와 농협이 맺은 이행약정서를 취소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터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은 농식품부와 농협 간에 맺은 이행약정서를 유보 혹은 취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7일 신충식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갑작스레 사임 의사를 밝힌 것도 여러 말을 낳고 있다. 비록 농협은행장 자리는 지키겠다고 했지만 지주사 회장에서 물러나면서 은행장직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당초 신 전 회장이 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선임됐을 때 그가 오래 갈 것으로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반대로 이렇게 빨리 회장직을 내놓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 역시 별로 없었다.
농협금융지주가 출범한 지 불과 100일밖에 안 된 마당에 “금융지주가 어느 정도 안정된 만큼 지주를 발전시킬 새 회장을 뽑고 저는 은행장 역할에 충실하겠다”며 회장직을 사임한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정부 지원금과 이행약정서, 노조의 총파업 결의 등으로 어수선한 이때 신 회장의 말마따나 농협금융지주가 안정됐는지는 의문이다.
신 회장은 두 달 전만 해도 해외 진출 계획이라든지 내부 지침 방안 등과 관련해 의욕적인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최원병 회장과 갈등설’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농협 내부에서는 종종 최 회장이 인사권을 전횡하면서 ‘자기 사람’만 요직에 앉히고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즉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던 것이다.
이번 사태는 농협중앙회, 농식품부, 노조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농협노조 정인태 실장은 “지난해 전산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최원병 회장은 문제가 터질 때마다 ‘비상임’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면서 “농협노조는 근본적으로 최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비난에 대해 농협중앙회 측은 “(최원병 회장이) 지금 상태에서 전면에 나서기도 난감하지 않겠느냐”며 “정치권 문제로 번지지 않고 빨리 원만하게 마무리됐으면 한다”고만 밝혔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농협 ‘재벌’ 논란
정부지원금 ‘5조’ 받기도 전에…
지난 4월 12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산 5조 원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2012년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제한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발표했다. 올해 새로이 지정된 기업집단은 모두 9개. 이 가운데는 농협도 포함돼 있다. 공정위가 매년 발표하는 이 자료는 ‘재계 순위’를 나타내는 지표로 활용되는가 하면 이른바 ‘재벌’이라는 꼬리표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는 농협이 재벌이냐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공정위는 “신·경분리에 따라 농협중앙회의 자산이 경제·금융지주회사 등에 이전되면서 지정요건 충족”이라는 이유에서 농협을 신규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농협의 자산은 8조 6000억 원. 일부에서는 원래 3조 6000억 원이었으나 정부 지원금 5조 원을 받으면서 자산이 훌쩍 뛴 탓에 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로부터 5조 원을 받은 상태도 아니거니와 공정위나 농협중앙회나 5조 원이 모두 현물이 아니기에 아직 자산으로 잡힐 수 없는 것이라고 얘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8조 6000억 원이 현재 농협의 원래 자산인 셈이다. 농협의 계열사는 비금융·보험회사 28개와 금융·보험회사 13개를 합해 모두 41개다.
이에 농협은 지난 5월 서울고등법원에 공정위를 상대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농협이 소송까지 제기하며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반 기업과 농협의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자사 이익을 추구하는 일반 기업과 달리 농협은 농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공정위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농협중앙회나 지역단위 협동조합 등은 비영리단체여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신·경분리가 되면서 농협금융지주, 농협경제지주는 대상에 포함된다는 것. 계열사로 지정된 41개 회사에는 지역단위 협동조합은 없다.
안병규 공정위 기업집단과 서기관은 “법령상 원칙에 따라 집행한 것이며 예외가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안 서기관은 또 “농협 쪽에서 올해 기업집단으로 지정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며 “기업집단을 지정하기 전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자료도 건네받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당시 농협 측은 ‘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어렵고 불편한 점이 많다’고 하소연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초 자세와 달리 농협중앙회 측은 “공정위가 원칙에 충실하다보니 이런 일이 발생한 것 같다”며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공정위에 요구하기보다 법으로 해결하는 편이 더 낫다는 판단에서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농협중앙회 측이 공정위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과 같은 사태를 예측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2017년에 이뤄질 것으로 보였던 사업구조 개편이 5년이나 앞당겨지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얘기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시간을 갖고 다양한 면을 충분히 검토했다면 공정위의 기업집단 지정 부분을 미리 간파해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됨에 따라 농협은 세제혜택이나 정부 지원을 받기가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사라지는 셈이다.
또 계열사 간 채무보증이나 상호출자가 어려워 사업을 유기적으로 펼쳐나가기 곤란해질 수 있다. 공시 의무도 져야 하므로 이사회 의결이나 중요사항 등을 공개해야 한다는 껄끄러움도 존재한다. 농협이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임]
정부지원금 ‘5조’ 받기도 전에…
정부로부터 5조 원을 받은 상태도 아니거니와 공정위나 농협중앙회나 5조 원이 모두 현물이 아니기에 아직 자산으로 잡힐 수 없는 것이라고 얘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8조 6000억 원이 현재 농협의 원래 자산인 셈이다. 농협의 계열사는 비금융·보험회사 28개와 금융·보험회사 13개를 합해 모두 41개다.
이에 농협은 지난 5월 서울고등법원에 공정위를 상대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농협이 소송까지 제기하며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반 기업과 농협의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자사 이익을 추구하는 일반 기업과 달리 농협은 농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공정위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농협중앙회나 지역단위 협동조합 등은 비영리단체여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신·경분리가 되면서 농협금융지주, 농협경제지주는 대상에 포함된다는 것. 계열사로 지정된 41개 회사에는 지역단위 협동조합은 없다.
안병규 공정위 기업집단과 서기관은 “법령상 원칙에 따라 집행한 것이며 예외가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안 서기관은 또 “농협 쪽에서 올해 기업집단으로 지정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며 “기업집단을 지정하기 전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자료도 건네받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당시 농협 측은 ‘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어렵고 불편한 점이 많다’고 하소연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초 자세와 달리 농협중앙회 측은 “공정위가 원칙에 충실하다보니 이런 일이 발생한 것 같다”며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공정위에 요구하기보다 법으로 해결하는 편이 더 낫다는 판단에서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농협중앙회 측이 공정위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과 같은 사태를 예측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2017년에 이뤄질 것으로 보였던 사업구조 개편이 5년이나 앞당겨지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얘기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시간을 갖고 다양한 면을 충분히 검토했다면 공정위의 기업집단 지정 부분을 미리 간파해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됨에 따라 농협은 세제혜택이나 정부 지원을 받기가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사라지는 셈이다.
또 계열사 간 채무보증이나 상호출자가 어려워 사업을 유기적으로 펼쳐나가기 곤란해질 수 있다. 공시 의무도 져야 하므로 이사회 의결이나 중요사항 등을 공개해야 한다는 껄끄러움도 존재한다. 농협이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