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수만 개, 민주당 검찰 비판 속 노심초사…윤관석 “일방적 진술에 의존한 무리한 수사”
우려는 현실이 됐다. 2022년 10월 19일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이 잃어버렸다고 했던 휴대전화가 발견된 후 민주당엔 불안감이 엄습했다. ‘휴대전화가 판도라 상자가 될 것’이라는 반응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그때까지 민주당은 사업가 박 아무개 씨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9월 30일 구속됐던 이 전 부총장에 대해 ‘개인 비리’라고 선을 긋고 있었다.
검찰은 포렌식을 통해 이 전 부총장의 통화 파일, 메시지 등을 복원했다. 여기엔 수만 개의 대화가 담겨 있었다. 정가에서 이른바 ‘이정근 리스트’ 명단이 오르내린 것도 이 무렵부터다. 그 이후 노웅래 의원 뇌물수수 사건, 노영민 전 비서실장의 취업 청탁 의혹 등이 불거졌다. 이 전 부총장을 향한 수사가 문재인 정부 전반을 겨누게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렸다.
이 전 부총장은 세간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민주당 내에선 ‘마당발’로 통하는 인사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부총장 휴대전화엔 이를 반영하는 대화들이 많았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실세 정치인들, 정부부처 장관들, 당 고위직 등 내로라하는 인사들의 이름이 이 전 부총장 입에서 나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중 수사팀 눈길을 끄는 대화가 있었다. 2021년 5월 민주당 전당대회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당시 이 전 부총장은 강 아무개 씨와 통화하면서 “송영길 후보 당선을 위해 의원들과 대의원에게 돈봉투를 나눠주자”는 취지로 말했다. 이 과정에서 윤관석 민주당 의원 이름도 거론됐다. 이 전 부총장과 윤 의원은 전당대회 때 송영길 캠프에 몸담고 있었다. 송영길 후보 대표 취임 후 윤 의원과 이 전 부총장은 각각 당 사무총장과 사무부총장에 발탁됐다.
검찰은 은밀히 수사에 착수했고 4월 12일 윤관석 이성만 의원, 강 아무개 씨, 송영길 전 대표 보좌관 박 아무개 씨 등의 주거지와 사무실 등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펼쳤다. 박 씨의 경우 송영길 대표 시절 정무조정실장을 맡았던 인물로, 정가에선 송 전 대표 측근 중 한 명으로 통한다.
압수수색 직후 민주당은 검찰의 압수수색 시기를 문제 삼았다. 포렌식을 통해 관련 정황을 포착한 지 수개월이 지나서야 수사한 것을 두고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윤석열 정부와 집권 여당이 각종 악재로 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면 전환용으로 ‘전당대회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게 그 골자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4월 13일 일요신문에 “검찰이 이정근 휴대전화에서 ‘대어’를 낚았다는 얘기가 돌긴 했다. 송영길 전 대표가 오르내렸던 것도 맞다. 그런데 당에선 총선을 앞두고 검찰이 움직일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 지금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힘들다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검찰 뒤엔 대통령실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민주당 반발에 억측이라는 입장이다. 사안의 폭발력과 민감성 등을 감안했을 때 각별한 보안, 철저한 팩트 확인이 요구돼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는 “포렌식을 하자마자 압수수색을 했다면 그건 제대로 된 수사냐”라고 반문하면서 “제1 야당과 그 소속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다. 검찰로서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표 개인에 대한 수사보다 더 어렵다. 조직 명운을 걸어야 한다. 그 어떤 외부의 영향력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검찰 관계자들, 압수수색 영장 등에 따르면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과 강 아무개 씨는 지인을 통해 현금 수천만 원을 마련한 뒤 이를 돈봉투에 담아 민주당 의원들과 대의원, 지역 사무실 관계자 등에게 준 것으로 전해진다. 윤관석 의원은 이 전 사무부총장으로부터 돈을 받아 의원들에게 건넸다는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최소 10명 이상 의원들이 돈봉투를 받았다는 정황을 확보한 상태라고 한다. 정치자금법상 정당과 후원회가 아닌 통로를 통해 현직 의원이 현금을 전달받을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2021년 5월 민주당 전당대회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당 주류 친문계가 미는 홍영표 후보가 앞설 것이란 평가가 많았지만 비문계의 송영길 후보가 맹추격을 하면서다. 결과는 송 후보의 0.5%포인트 차 신승이었다. 검찰 수사 소식이 알려진 후 국민의힘 많은 관계자들이 “돈봉투로 인해 순위가 바뀐 것 아니냐”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일단 검찰은 돈봉투 의혹 핵심 인물로 거론되는 윤 의원 수사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앞서의 서울중앙지검 인사는 “윤 의원은 송영길 캠프 핵심이었다. 전대를 앞두고 의원들을 회유하기 위해 돈봉투를 마련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어 그는 “송영길 후보가 이를 알고 있었는지도 당연히 수사대상”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윤관석 의원은 4월 13일 기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돈봉투 전달 관련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유감을 표한다”면서 “2021년 5월 전당대회가 2년이나 지난 지금, 사건 관련자의 일방적 진술에만 의존해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진 검찰의 무리한 수사는 명백한 야당탄압”이라며 검찰을 규탄했다. 같은 날 우상호 의원은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도·감청 사건을 덮으려는 의도로 급하게 꺼내 든 것 같다. 국면 전환용 수사가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집안 문제로 곤욕을 겪던 국민의힘은 모처럼 공세에 나섰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4월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의 전당대회는 ‘돈당대회’ ‘쩐당대회’라고 표현될 정도로 부패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돈으로 매표한 행위는 반민주부패정당의 가장 대표적 특징인데 민주당이라는 당명이 부끄러울 정도”라고 했다.
키는 검찰이 쥐고 있다. 수사 결과에 따라 민주당은 치명상이 불가피하다. 돈봉투 의혹이 일부분이라도 사실로 드러날 경우 그 후폭풍은 당과 정치권을 소용돌이로 몰고 갈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은 2011년 12월 ‘2008년 전당대회 때 돈봉투가 뿌려졌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시련을 겪었다. 결국 새누리당은 간판을 내렸고, 한나라당으로 개명했다. 돈봉투를 뿌린 것으로 지목받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1980년대도 아니고…. 전당대회 때 의원들이 돈봉투를 받았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믿기 힘들다. 나부터도 그런데 국민들은 오죽하겠느냐”면서 “당의 존폐가 걸린 일로 보인다. 내부적으론 긴장감이 가득하다”고 했다.
민주당 전직 의원도 “검찰 행태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돈봉투 사건이 민주당을 격랑에 빠트릴 것으로 보인다”면서 “검찰 압수수색 이후 한 의원에게 이를 물어보니 돈을 받은 기억이 있다고 하더라. 전대와는 무관하다고는 했지만 이를 믿을 사람이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처럼 민주당은 겉으론 검찰을 거세게 비판하고 있지만 향후 수사에 숨을 죽이고 있는 모습이다. 단지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때문만은 아니다. 검찰이 이정근 전 부총장 휴대전화를 확보하고 있는 이상 또 다른 건으로 수사가 확대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판단에서다. 민주당에선 2021년 전당대회 전반으로 번지는 것은 아니냐는 걱정이 새어 나온다.
앞서의 민주당 초선 의원은 “송영길 캠프가 돈봉투를 뿌린 게 사실이라면 과연 다른 곳에선 가만있었을까. 당시 계파 간 갈등이 워낙 첨예했었기 때문에 경선이 너무 혼탁해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긴 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윤관석 의원이 송영길 대표 시절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며, 수사 과정에서 당의 민낯이 노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뒤를 잇는다.
앞서의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는 “노웅래 의원부터 시작해 전당대회 돈봉투까지 왔다. 이게 다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정근 휴대전화 파일이 워낙 방대해 혐의가 구체적으로 확인된 건만 공개수사에 착수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안이 중대한 만큼 이름이 나오는 의원들은 모두 불러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검 또 다른 관계자는 “전당대회 건이 워낙 커서 (다른 수사를 진행하기에) 여력이 있겠느냐”면서도 “이 전 부총장이 ‘누구누구와 친하다’고 강조하며 민원을 해결해주는 듯한 대화가 많다. 여기서 누구누구는 문재인 정부 핵심 인사들이다. 사건이 어디로 튈지 지금으로선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