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원내대표 경선 당내 공천 여론 반영…당 지도부 영남권 일색은 정치적 부담
김기현 당대표, 박대출 정책위의장에 이어 윤 원내대표까지 영남권이라는 점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중도 확장을 가져와야 할 여당으로서는 약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위기 때는 안정이 우선
윤재옥 신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4월 7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재적의원 109명 중 과반이 넘는 65명의 지지를 얻어 경쟁자인 김학용 의원(4선·경기 안성)을 제쳤다. 윤 원내대표가 조용한 성격이라 스킨십에서 김 의원에게 밀리지 않느냐는 평가도 있었지만 비교적 큰 표 차로 승리했다.
이번 선거는 ‘깜깜이 선거’로 불렸다. 지난 당대표 선거에서 대통령실이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던 터라 “이번에도 그렇지 않겠느냐”라는 예측도 있었지만 전혀 그런 모습이 나오지 않으면서 원내대표 선거는 안갯속 구도로 빠져들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용산의 힘’이 작용한 것 아닌가 하는 얘기도 나오긴 한다. 윤 원내대표와 윤석열 대통령 인연은 2022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맺어졌다. 윤 원내대표가 후보 중앙선거대책본부 부본부장 겸 상황실장으로 합류하면서였다. 윤 대통령이 윤 원내대표의 업무처리에 대해 큰 만족감을 보였다는 말이 있지만, 최측근으로 분류되지는 않았다. 이번 경선에서 ‘윤심’의 발휘는 없었다는 목소리가 우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원내대표 선거는 구조적으로 여야를 막론하고 지지 변동성이 심하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은 원내대표 경선을 ‘배신의 선거’로 부르기도 한다. 2022년 9월 치러진 국민의힘 원내대표 경선에서 용산의 지원을 받으면서 압도적 우세가 점쳐졌던 주호영 현 원내대표가 과반을 간신히 넘긴 61표를 얻는 데 그친 반면, 재선 이용호 의원이 42표를 얻는 이변을 일으켰던 사례만 봐도 그러하다.
윤 의원이 원내대표에 오른 것은 최근 다시 어려움에 봉착한 당의 위기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 최대 지지세력인 TK를 다시 구심점으로 삼아 고정 진지를 우선 강화한 뒤 새로운 고지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다. 실제로 당 안팎에서는 당대표가 직접 위기감을 얘기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다.
김기현 대표는 4월 7일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우리 당의 지지율도, 대통령 지지율도 좀 좋지 않다. 누구보다 당대표를 맡고 있는 제게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부끄럽게도 당 지도부에서 설화 같은 논란이 생겨서 대단히 안타까운 상황도 있었고, 또 우리 당을 이끌어나가는 지도층에 있는 분들 사이에서 언행이 부적절해 국민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일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 설화는 ‘5·18 헌법 전문 수록 반대’ 등의 발언으로 한 달 근신에 들어간 김재원 최고위원, ‘4·3은 김일성 지시로 촉발’됐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은 태영호 최고위원, 양곡관리법 대안으로 ‘밥 한 공기 캠페인’을 거론했던 조수진 최고위원을 가리킨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지도층의 부적절한 언행은 홍천 산불 진화 작업이 진행되는 와중에 골프 연습을 한 김진태 강원도지사, 제천 산불로 주민 대피령 와중에 술자리에 간 김영환 충북도지사를 의미한다. 이들은 처신에 대한 ‘거짓 해명’ 논란으로 거듭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지난 4·5 재보궐 선거에서 텃밭이라 할 울산의 교육감 선거와 기초의원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완패했다. 울산 4선으로 울산시장을 지낸 김 대표가 있는데 울산에서 국민의힘이 패하자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당혹감이 역력했다.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는 명색이 여당인 국민의힘 후보가 6명 중 5위를 기록하는 부끄러운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미래통합당 시절이던 2020년 총선 참패로 당이 빈사 상태에 놓였을 때 TK 중진인 주호영 의원을 21대 첫 국회 원내대표로 뽑았다. 당시에도 이번 경선의 김학용 의원처럼 수도권 확장론을 들고 나온 권영세 의원과 맞붙었는데 주 의원이 전체 84표 가운데 59표를 얻으면서 압승했다. 당의 위기 상황에서는 TK를 중심으로 한 영남이 깃발을 잡고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주 의원 당선으로 이어졌다.
윤 의원은 경찰대 1기생으로 경기경찰청장을 역임하는 등 경찰에서 오랫동안 잔뼈가 굵어 상황 판단 능력과 협상력이 좋다는 평가가 많다. 문재인 정부 초기 드루킹 특검 협상에서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아 당시 원내대표였던 김성태 의원과 함께 민주당과 치열한 협상을 이어간 끝에 특검을 일궈낸 것은 그의 최대 치적으로 꼽힌다.
경찰대 1기 ‘수석 입학·수석 졸업’ 이력으로 잘 알려진 윤 원내대표는 경찰 재직 당시 정보·외사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고 경북경찰청장, 경찰청 정보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자그마한 일도 놓치지 않는 꼼꼼한 성격이고, 자그마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거친 경찰 조직 내에서 승승장구할 만큼 강한 리더십도 가져 전형적 외유내강형 정치인으로 꼽힌다.
#공천 방어막 전략 작용
내년 공천을 앞둔 전략도 윤 원내대표 당선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TK 중진으로서 공천 때마다 물갈이 지역이 됐던 TK 사정을 잘 아는 윤 원내대표가 물갈이를 직접 막아줄 방파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윤 원내대표 스스로도 경선 투표 직전 열린 후보 간 토론회에서 “(현역 의원) 누구도 물갈이를 위한 물갈이 대상이 되거나, 경선도 못 해보는 억울한 일을 당해선 안 된다”며 “공천에 억울함이 없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했다. 자신의 지역구인 TK는 물론 당 지지세가 강한 부산·울산·경남(PK) 지역의 현역 의원들이 공천 시즌만 되면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되는 현상을 두고 한 말이다.
실제로 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TK 지역구 현역의원 교체율은 64%를 기록했다. 앞선 20대 총선 때도 대구의 현역 교체율은 75%, 경북은 46.2%에 달했다. 국민의힘 지지세가 압도적으로 강한 TK를 비롯한 영남은 누가 나와도 당선되기 때문에 초선, 다선을 가리지 않고 물갈이가 많았던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물갈이론’이 강해지고 있는 것도 의원들의 불안감을 키워왔다. 국민의힘 상임고문으로 강한 여론 영향력을 과시중인 홍준표 대구시장은 올 초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중앙정치에서는 힘도 못 쓰고 동네 국회의원이나 하려면 시의원, 구의원을 할 것이지 뭐 하려고 국회의원을 하느냐”며 ‘눈치만 보는 재선 이상 전원 물갈이론’을 제기, TK 정치권에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자신의 지지 외연을 넓혀 국정동력을 더 키워야 하는 윤 대통령이 공천에 대해 눈을 감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상황 논리도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의 이번 원내대표 선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실 및 검찰 출신, 내각 차출 인사들이 대거 공천장을 받아 들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나돈다.
최근 정계개편설도 나오지만 결국 양당 체제로 내년 총선이 치러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대세가 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실 쪽 외부 압력만 잘 막아내면 되는데 이런 연장선에서 물갈이 폭이 가장 심했던 TK 출신 원내대표가 큰 스피커를 만들어 물갈이론에 대항하는 볼륨을 키워준다면 큰 물갈이는 없을 수 있다는 의견이 당 내부에서는 강하다.
국민의힘 한 현역 의원은 “TK라고 TK를 뽑아주고, 수도권이라고 수도권을 선택하는 연고주의는 작용하지 않는다”며 “국회의원들은 실사구시 전략을 최적의 경로로 꼽아 행동하는데 내년 공천권 행사 과정에서 어떤 바람막이 역할을 윤 원내대표에게 기대하는 기류가 있고 윤 원대대표도 잘할지 못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를 파고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영남 지도부, 풀어야 할 과제
여당 지도부가 영남 일색이라는 점은 향후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4월 7일 SNS를 통해 윤 원내대표 선출을 축하하면서도 김기현 대표를 향해 “부디 수도권, 충청권, 호남권도 배려하는 그림으로 채워졌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윤 원내대표도 이러한 인식을 가진 듯 당선 인사를 통해 “오늘까지 가지고 있던 의원님들 리스트, 세모 동그라미 리스트를 다 찢어버리겠다”며 “항상 소통하고 여쭙겠다”고 했다. 원내대표 경선 후보들은 소속 의원 명단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의원을 ‘○’, 지지 여부가 불분명한 의원을 ‘△’,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의원을 ‘Ⅹ’로 각각 표시해 표심을 파악하곤 한다.
윤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기자간담회에서도 당 대표(PK), 원내대표(TK), 정책위의장(PK) 등 지도부가 영남 출신 일색이라 총선 승부처인 수도권 선거가 어렵지 않겠냐는 지적이 나오자 “지역별로 분리해서 대책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며 “정책 방향이나 정치적 지향을 그분들을 생각하면서 고민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