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끼리 사고팔며 ‘잉여·부족분’ 문제 해결…정부가 할당량 적절히 조절해야 가격 급등락 막아
물론 기업들은 배출권이 부족하거나 남았을 때 다음 연도로 차입하거나 이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 기업활동을 위해 배출권이 필요하기도 하고 과징금 문제도 걸려 있어 배출권이 남는 기업에서 돈을 주고 사는 것이 더 빠르고 효과적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배출권 거래제는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기업들에 세금 개념으로 강제로 매기는 '탄소세'보다 조세 저항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세계 여러 나라가 '탄소세'보다 배출권 거래제를 선호하고 시행하는 이유다.
배출권 거래 시장이 가장 활발한 곳은 유럽이다. 탄소 감축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은 2005년부터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했다. 금융정보제공업체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EU 배출권 시장의 거래액은 지난해 7510억 유로(약 1094조 192억 원)로 전 세계 탄소배출권 거래의 87%를 차지한다.
우리나라는 2015년에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했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배출권 거래제는 2015~2017년 1기, 2018~2020년 2기, 2021~2025년 3기로 운영하고 있다. 초기엔 배출권을 100% 무상할당했던 정부는 기업이 배출권 잉여분과 부족분을 사고팔 수 있는 유상할당 비율을 2기 3%, 3기 10%로 점차 늘려가고 있다.
비록 기업들의 자발적 거래를 유도하지만 배출권의 수요와 공급을 결정하는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가 배출권을 적게 책정한다면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해 배출권 가격이 폭등하고, 반대로 배출권을 너무 넉넉히 발행하면 시장에는 배출권을 팔려는 기업이 많아 가격 폭락을 불러올 수 있다.
신동훈 인하대 경영학과 교수의 저서 ‘탄소시장과 탄소배출권’에 따르면 2005년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한 EU에서도 초기에 배출권 가격이 상승세를 보였지만 2006년 4월 급락 사태를 겪었다. EU의 실제 탄소배출량이 할당된 배출권보다 적었던 탓이다. 그 이후로도 배출권의 가치는 폭락했고 가격이 0원에 수렴한 적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1기 계획기간에 배출권을 너무 적게 할당해 기업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정부는 2014년 525개 업체에 약 15억 9800만 t(톤)을 할당하기로 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자신들이 신청한 20억 2100만t보다 4억t 이상이 부족해 배출권을 사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정부는 배출권 가격 급등락과 수익 수단 악용 등을 막기 위해 경매시장에서 배출권 가격조정, 최저거래가격제, 비축한 배출권 공급 등 시장안정화 조치 등을 시행하고 있다. 배출권 거래에 제한도 두고 있다. 탄소배출권을 할당받은 특정 기업이 이를 탄소배출에 쓰지 않고 시장에 내다 팔아 수익 수단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제한 이월을 막은 것이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무제한 이월은 여유분 배출권을 비쌀 때나 최대한 마지막 연차에 팔려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3기 계획기간에서는 순매도량의 2배, 1배, 평균 등 단계적으로 이월량을 제한하고 있다.
상쇄배출권 제출 한도를 10%로 제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쇄배출권이란 탄소배출권 할당 대상 업체가 탄소를 감축한 경우 이에 대한 실적을 정부에서 인증받아 받은 배출권으로, 정부가 기업에 나눠주는 할당배출권과 구별된다. 기업은 이를 거래시장에서 팔거나 배출량을 대신할 수 있는데, 자칫 수익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기에 10%로 제한을 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탄소감축이 세계 최대 과제 중 하나인 데다 서로 사고팔 수 있는데 물량은 제한돼 있으니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한국거래소나 장외거래를 통해 배출권을 거래할 수 있다. 정부는 2019년부터 매수·매도 호가를 제시해 호가 공백을 해소하고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시장조성자 제도’를 운영 중이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하나금융투자, 한국투자증권, SK증권, KB증권, 신한투자증권 등 7개사가 참여하고 있다. 2021년부터는 할당대상업체 외 제3자도 시장 참여를 허용했다. 현재 증권사 등 배출권 거래 중개회사 21개사가 참여하고 있다. 제3자는 과도한 시장점유를 막기 위해 1개사당 배출권 보유 한도를 20만t으로 제한했다.
개인투자자 참여는 아직 허용하지 않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EU 배출권 시장은 할당대상업체보다 금융기관, 개인 등 제3자의 참여 규모가 월등히 크며 현물시장보다 선물시장의 규모가 크다. 지난해 EU 배출권 시장에서 거래된 탄소배출권은 125억t 정도다. 가격에서도 차이가 있다. 2020년 국내 할당배출권 평균 가격은 1만 8510원 정도로 EU 배출권(약 11만 6540원)의 10분의 1수준이었다.
시장 일부에서는 개인 투자자에게도 배출권을 직접 투자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개인에게 시장을 개방하면 탄소감축이라는 본래 취지가 훼손될 수 있으며 시장이 어지러워질 수 있다고 반대하는 쪽도 많다. 환경부 관계자는 “개인 투자자 참여 시점을 명확히 계획해 두지는 않았다. 금융기관들의 참여로 시장 활성화 정도를 보면서 참여 시기와 규모 범위를 정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선물 등 파생상품 시장이 도입되는 시점에 따라서 개인 참여 시기도 논의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