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부부 참석, 순천만정원박람회 흥행에 역할…이재명 대표와 인연 있지만 민주당 입당 계획은 아직”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개장 23일 만에 관람객 2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이슈몰이에 성공했다.
“‘순천 시골에서 촌스럽게 해놨겠지’라고 생각했던 선입견을 깼다. 한국식 조경문화와 정원 설계도를 창조해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아파트와 아스팔트 자동차 등 회색빛이다. 하지만 정원박람회는 밝고 맑고 녹색이다. 아이들이 뛰노는 데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다. 또한 이번 박람회 주제가 ‘정원에 삽니다’다. 지금까지 정원은 일부러 시간 내서 찾아가는 곳이다. 그런데 이번 정원박람회는 울타리를 벗어던지고 시내로 들어왔다. 내 아파트 앞에 수만 평의 광장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또한 아파트 앞 강에 유람선이 떠간다. 내 집 앞이 정원이고 우리가 정원에 사는 것이다.”
―2013년 이후 10년 만에 개장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다. 2023년 박람회는 무엇이 달라졌나.
“시대가 변했다. 10년 전에는 우리가 정원을 잘 몰랐다. 그때 목적은 ‘몰려드는 관광객과 차량, 도시 팽창으로부터 순천만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방어적 차원에서 생각했다. 그러니까 에코벨트라고 얘기했다. 또한 당시 정원박람회는 인문학적 소양이나 철학을 가지고 재해석해서 한국식 정원을 만든다기보다 외국의 것을 베껴서 만들기 급급했다. 그것마저도 한국에서 처음 보는 것이라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하지만 10년 사이 국가적으로 소득수준이 3만 달러를 넘겼고, 사회 주류로 MZ세대가 부상했다. 정보 공유 소통도 종이나 방송에서 스마트폰 1인 미디어 시대로 바뀌었다. 과거에 보기만 하는 정원이 아니라 체험할 수 있는 정원을 만들었다. ‘가든 스테이’에서 하루 저녁 머무를 수도 있고, 배를 타고 둘러볼 수도 있다. 건강을 생각해 맨발걷기를 할 수 있는 어싱로드가 8개 코스 12km 조성됐다. 한국의 정서와 기후 풍토에 맞게 완전히 재해석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흥행에 도움이 됐나.
“솔직히 역할이 컸다. 내가 지난해 10월부터 ‘윤 대통령이 지방 나들이를 하셨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취업난, 주거난,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 등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가 수도권 벨트에서 생기고 있다. 수도권에 사람과 돈 권력이 다 몰려있기 때문. 국가 지도를 놓고 봐도 이를 나눠가질 수 있는 곳은 남해안 벨트밖에 없다. 그 중심이 순천이다. 그래서 ‘순천이 허브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외국에 내놔도 자랑할 박람회를 만들고 있으니, 윤 대통령이 현장을 한번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보고한 것이다. 대통령실과 조율하다 윤 대통령이 결정했다.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호남에 근무하면서 순천만을 여러 번 와봤다고 하더라. 그래서 순천만을 이용해 생태가 경제를 어떻게 견인한 건지 본인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윤 대통령과 무슨 대화 나눴나.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윤 대통령이 가장 오래 머문 지역행사다. 개막공연도 다 보고 5시간 30분 동안 계셨다. 이번에 윤 대통령의 문화적 소양에 놀랐다. 개막식 공연을 보시더니 첫마디가 ‘감독이 누구냐’고 묻더라. 보통 사람들은 기획사가 어디냐, 비용이 얼마나 들었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감독 이름을 말하며 ‘촌에서 촌 공무원들이 만든 게 뭐 그렇다’고 겸손하게 말했는데, 대통령이 정색을 하시며 ‘순천이 촌도 아닐 뿐더러, 만들어진 결과물을 보니 과정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지방 공무원이 이 정도면 중앙 공무원보다 훨씬 낫다’ 덕담을 하시더라. ‘지역이 이 정도로 잘할 수 있다면 중앙정부가 다 쥐고 있을 필요 없이, 나눠줘서 자율에 맡기는 게 좋겠다’고 말하셨다.”
―정원박람회뿐 아니라 경전선 우회, 애니메이션 클러스터 등 숙원사업이 해결됐다. 우주발사체 단 조립장도 순천이 선정됐다. 일각에서는 노 시장이 ‘검사 출신’ 연결고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남들은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물론 윤 대통령과 서로 비슷한 시기에 검사생활을 했으니 개인적으로 조금은 안다. 그러나 일국의 대통령이 그 인연만으로 지역문제를 해결해 주겠느냐. 국가의 세금이 들어가는데 합당한 이유가 있고, 경제적 효과가 있어야 한다. 경전선 문제는 지난해 7월 시장에 취임하고부터 전남지사와 강력히 싸워왔다. 어떻게 고속철이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지를 수 있냐. 철도는 한 번 깔면 100년 이상 손을 못 댄다. 그래서 내가 정공법으로 대통령실 관련 부서와 국토교통부 장관 등에 부당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래서 문제가 있다 판단돼 우회 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순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처음 서울로 올라왔는데 일할 곳이 없었다. 그러던 중 아는 사람이 구로3공단에 있는 장갑공장 있는데 한번 다녀볼 거냐고 권유해서 공장 노동자로 일하게 됐다. 근데 다녀보니 계속 공장에 있어서는 인생이 안 되겠다 싶어 때려치우고 공무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험 보려고 과목들을 훑어보니까 그때 세무공무원은 수학을 안 봤다. 내가 수학을 못했다. 그래서 세무공무원 시험을 봤는데 운 좋게 합격을 했다. 청량리·도봉·종로세무서, 중부지방국세청 등 세무공무원을 7년 정도 했다.”
―그러다 다시 사법시험을 봐서 검사가 됐다.
“원래 내 어릴 적 꿈이 검사였다. 당시 넷째 동생이 서울 보성고를 다녔다. 공부 안 하고 책상에 엎드려 자는 걸 혼내고 봤더니, 고시 합격생들 수기 책을 보고 있었다. 그걸 뺏어서 읽어보니 나보다 학벌 낮은 사람들도 합격을 많이 했더라. 그래서 책 읽고 3일 만에 사표를 냈다. 당시 나이가 스물일고여덟이었다. 그렇게 4년 6개월 준비해서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대검 중수부에서 굵직한 사건들을 전담했다.
“내가 검사 때 상당한 사고뭉치였다. 당시 한국 검찰은 계좌추적밖에 못했다. 자금추적은 하지 못했다. 내가 자금추적에 대한 기본적인 설계를 한 사람이다. 국세청 7년 다닌 게 엄청난 효과를 본 것이다. 특수수사를 하다 보니 대검 중수부에서 나를 눈여겨봤다. 이정수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이 전화를 해 ‘노 검사 마음에 들었다’며 ‘자금흐름 추적하는 거 처음 봤다고 아마 나하고 일할 일이 언제가 있을 거야’ 그러더라. 그러고 1년쯤 지나 중수부장에게 중수부로 빨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IMF 외환위기가 터져 난리가 났을 때였다. 초임 검사가 아무 것도 모르고 중수부로 갔다. 가니까 기획관들이 한다는 얘기가 ‘너 왔으니 우리는 간다. 근데 내일 정태수 회장 온다니까 알아서 해라’하고 맡기고 가더라. 그렇게 한보그룹 사건을 맡았다. 이어 연달아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 씨 비리 수사도 하게 됐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 권유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대검 중수부에 있다가 복귀한 곳이 의정부지검이다. 거기서 내가 대한민국 최초로 법조비리 수사를 하게 된다. 판도라의 상자였다. 정말 어려웠다. 결국 수원지검으로 쫓겨나 수사권을 뺏겼다. 공판부로 배정된 것이다. 지검장이 바뀌면서 특수부로 복귀하긴 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 4시 30분쯤 청와대에 연락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을 도와줘야 되겠다’는 거다. 그날 저녁 11시 30분에 지검장 집에 찾아가서 사표를 내고 30분 만에 정치인이 됐다. 현직 검사가 정치인이 된 게 내가 두 번째다. 먼저가 이한동 전 국무총리. 다만 이 전 총리는 부장검사 때 차출됐고, 나는 평검사로 차출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 전에 인연이 있었나.
“전혀 몰랐다. 동교동계에서 내가 안 사람은 권노갑 고문이었다. 왜냐면 당시 중수부에서 수사를 받고 구속됐으니까. 당시 권노갑 고문이 날 보자고 했다. 내가 권 고문을 찾아가서 ‘날 아느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하더라. 중수부에 전라도 검사가 있는 게 신기해서 찾았다고 했다. 또 ‘수사하는 것과 공판 과정을 봤는데 당신 대단한 사람이더라’라고 칭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권유를 왜 받아들였나.
“당시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그때만 해도 전라도 출신은 대단히 어려운 공직생활을 해야 했다. 누가 끌어줄 사람도 없고 하니까. 그런데 갑자기 김대중 총재가 대통령이 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나에게 뭘 해줄 것도 아닌데 ‘드디어 우리가 족쇄에서 벗어났구나’ 느낌을 받았다. 그런 김대중 대통령이 도움을 요청하는데 내가 ‘안 된다, 된다’ 이런 얘기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16대 총선 지역구도 험지인 서울 강동갑에 자원했다. 당시 상대가 이부영 한나라당 원내총무였다. 원내총무를 하며 김대중 정부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내가 이부영 후보를 잡아야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낙선했다. 낙선하고 오히려 당 예산결산위원회 초대 위원장, 대통령 특보, 부대변인 등 감투라는 감투는 다 쓰며 중용을 받았다.”
―정치를 그만두려고 하다가 순천시장에 당선됐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당에서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런데 당이 열린우리당으로 쪼개졌다. 나는 김 전 대통령과 의리도 있고 민주당에 남았다. 그 와중에 큰아들 몸도 안 좋고, 정치에 신물도 난 상황이라 당에 사표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당 사무총장이 만류하면서 17대 총선에 고향 순천에서 경선을 해달라고 부탁하더라. 끝까지 버티다가 결국 17대 총선 순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는데, 노 전 대통령 탄핵정국에 낙선했다. 이렇게 된 거 정치 안 한다고 지리산에 한옥 지으러 갔다. 칩거에 들어갔는데, 순천시장이 구속돼버렸다. 당에서 연락이 와 ‘후보 좀 구해달라’해서 몇몇 인사에 부탁했는데 사람을 구할 수 없었다. 그러자 당에서 ‘그럼 당신이 출마하라’고 다시 요청을 했다. 이때도 버티다 대타로 나와 당선이 돼 2006년 순천시장에 처음 오르게 됐다.”
―순천시장 재선과 3선은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당초 나는 순천시장을 한 번만 하려고 했다. 시장으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재단법인을 만들고 조직위를 구성하려는데 출연금 5000만 원이 필요했다. 그런데 지역구 의원 등이 이걸 못하게 막는 거다. 또한 열린우리당과 꼬마민주당이 합당하면서 공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이번에 3선 때도 공천문제로 탈당 후 무소속 당선이다.”
―민주당 간판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면 낙선한다.
“이상하다. 국회의원은 4전 4패고, 시장은 3전 3승이다. 외부적 여건이 안 맞는 것 같다. 민주당도 문제가 있다. 게리맨더링으로 법에 단일 행정자치단체의 동을 쪼개 다른 지역에 붙이지 못하게 돼있다. 순천은 이것을 어기고 지역구를 마음대로 분구했다. 더 나아가 당 지도부가 전략공천해 낙하산 후보를 내려 보내기도 했다. 민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호남은 전략공천한 적이 없다. 경선의 기회는 줘야 할 것 아니냐. 민주당 지도부가 호남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선거구 문제 해결하지 않으면 민주당은 호남에서 표 달라고 하면 안 된다.”
―2021년 민주당 대선 경선 때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 지지를 선언했다. 이재명 캠프 전남지역 특보단장도 맡았다. 이재명 대표 하에서 민주당 입당 계획 있나.
“내가 선대위 총괄특보단 정무기획단장도 했다. 최진석 국민의당 상임선대위원장과 이재명-안철수 단일화 협상창구였다. 물론 협상에는 실패했지만. 이재명 대표와는 연락도 하고 정치적 인연이 있다. 정성호 의원과도 친하다. 민주당 입당 계획은 아직은 없다. 지금은 시장으로 역할에 충실하게 할 것이다. 시장은 정당과 큰 관계가 없다. 무소속이라 오히려 여기저기 신경 안 쓰고 시정이 자유롭다. 나중에 당에서 복당하라는 입장이 나오면 그때 가서 고민할 문제다.”
―현재 정치권에 대한 국민 비판이 크다.
“양당제가 깨져야 한다고 본다. 국민의 선택권이 너무 없다. 특히 영호남은 더욱 그렇다. 또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앙당의 권력이 세서는 안 된다. 기초지방자치단체 공천제도 폐지론자다. 생활 모든 영역에 정치가 지나치게 깊숙이 들어와 있다. 갈등을 조장한다. 한국이 자체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21세기에 정치는 아날로그도 못 벗어난 것 같다. 과거 DJ 때보다 더 후퇴한 것 같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제3지대 신당 창당 목소리도 나온다.
“의미 있다고는 보는데 그만큼 파괴력이 있는 사람들이 나설지 주의 깊게 봐야 한다. 나는 지금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가 시대의 어젠다가 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치가 표류해 미래 세대들에 정치 혐오증이 점점 더 커져 결국은 본인들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 자기의 운명을 결정하는 정치 구도로 가버리면,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아닌 후진국으로 갈 거다. 그래서 나는 지자체 하나라도 외국에 내놓고 경쟁할 수 있게 해보자는 목표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성공 계기로 향후 남해안 벨트 완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수도권 1극 체제다. 이걸 다극 체제로까지 쪼개지는 못 할 거다. 유일하게 지금 나눠 내릴 수 있는 게, 목포에서 부산까지 남해안 벨트다. 이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는 도시들이 순천 여수 광양이다. 딱 가운데서 철도가 교차하는 십자 교차로가 있고, 공항도 있고, 항구도 있고, 산업단지가 있다. 턱도 없이 대도시 만들자는 게 아니다. 행정구역 경계를 허무는 건 정치적 이해관계가 심하게 있기 때문에 우선은 경제·산업적 장벽부터 좀 없애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순천이 정원박람회를 하는데 숙박시설은 여수에 많다. 그럼 경제적 이득을 나눌 수 있는 거다. 각 도시가 가진 고유 기능들을 유지하며 유럽의 메트로폴리탄 개념으로 도시를 거점 중심으로 재편하자는 취지다.”
순천=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