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회전일수 길어 수익성 악화, ‘저가 이미지’ 탈피도 당면 과제…휠라 “재고관리와 동시에 프리미엄 전환”
#매출 4조 영업익 4000억…수익성 저조
지난해 휠라홀딩스의 연결 기준 매출은 4조 2218억 원, 영업이익은 4351억 원이었다. 매출은 2021년 대비 21% 상승했지만 영업이익은 11.7% 하락했다. 매출 비중이 비슷한 휠라 국내와 미국의 사업의 수익성이 동시에 악화했다. 휠라코리아 매출과 영업이익은 2021년 대비 각각 8%, 19% 하락한 4963억 원, 863억 원이었다. 휠라USA의 지난해 매출은 2021년 대비 18% 하락한 4637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2021년 152억 원에서 지난해 마이너스(-) 682억 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그나마 매출의 약 70%를 차지하는 골프용품 브랜드 아쿠쉬네트홀딩스(아쿠쉬네트)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2021년 대비 19%, 22% 상승하면서 실적 하락폭이 줄었다.
휠라홀딩스의 수익성은 국내 패션 경쟁사 대비 좋지 않다. ‘노스페이스’ 등 아웃도어 브랜드를 운영하는 영원무역홀딩스는 지난해 매출 4조 5339억 원, 영업이익은 1조 22억 원을 기록했다. 2021년 대비 매출은 39.9%, 영업이익은 75.7% 늘었다. 휠라홀딩스는 지난해 매출 4조 원 클럽에 진입했다. 하지만 수익성 면에서는 영원무역홀딩스와 큰 차이를 보인 셈이다. 다른 패션업체들도 두 자릿수 이상의 영업이익 성장세를 보였다. ‘톰보이’ ‘보브’ 등을 보유한 신세계인터내셔날의 패션 및 라이프스타일 부문 영업이익은 44% 증가한 972억 원을 나타냈다. ‘오브제’ 등을 운영하는 한섬의 영업이익은 11% 증가한 1683억 원이었다.
휠라홀딩스의 올해 전망도 밝지 않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1분기 휠라홀딩스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 830억 원, 1498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매출은 1% 상승, 영업이익은 11% 감소한 수치다. 휠라코리아 영업이익은 지난해 1분기 97억 원에서 올해 1분기 57억 원으로 41%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기간 휠라USA 영업손실은 28억 원에서 284억 원으로 914% 증가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휠라홀딩스 수익성 부진은 재고 탓이 크다. 지난해 휠라홀딩스가 재고자산평가손실로 인식한 금액은 154억 원으로, 2021년 대비 397% 늘었다. 손실 처리한 재고자산 중에는 미국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물류 대란이 발생했다. 이 기간 휠라홀딩스를 비롯해 글로벌 패션 기업들은 재고 확보에 나섰다. 하지만 이후 경기가 얼어붙고 미국 의류 수요가 하락하면서 재고를 소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실제 휠라홀딩스의 지난해 재고자산은 1조 2905억 원으로 2021년(7578억 원) 대비 70% 늘었다. 휠라코리아, 휠라USA, 아쿠쉬네트의 재고자산을 모두 포함한 액수다. 재고자산의 부문별 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증권업계에서는 휠라USA 재고가 2021년 대비 두 배, 한국 재고가 40~50%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휠라홀딩스가 미국 악성재고 소진에 1000억 원 이상을 투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아울렛 한 곳에 입점한 휠라USA는 입점 아울렛을 연말까지 두세 군데 더해 판매 채널을 늘릴 계획이다. 다만 나이키 등 글로벌 기업들도 할인 판매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 부담 요소다.
재고는 비단 휠라홀딩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글로벌 기업인 나이키와 아디다스, 룰루레몬도 2021년 대비 지난해 재고자산이 40~50% 상승했다. 하지만 휠라홀딩스는 국내외 경쟁사 대비 재고자산회전일수가 긴 편이다. 재고자산회전일수는 재고가 판매되기까지 평균적으로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재고자산회전일수가 길다는 말은 재고를 판매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을 뜻한다. 지난해 휠라홀딩스의 재고자산회전일수는 112일이다. F&F(60일), 신세계인터내셔날(69일), 영원무역홀딩스(90일) 등 국내 경쟁사 대비 긴 수준이다. 나이키(69일), 아디다스(99일), 룰루레몬(65일) 등 글로벌 기업보다도 재고자산회전일수가 길다.
#프리미엄 브랜드 원년, 소비자 인식 바뀔까
재고를 처분한다 하더라도 과제는 남는다. 휠라홀딩스가 휠라 상품 판매로 벌어들인 매출은 2020년 1조 1599억 원, 2021년 1조 2701억 원, 2022년 1조 2073억 원으로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구체적으로 휠라코리아의 브랜드별 판매 실적을 살펴보면, 지난해 휠라 키즈 매출은 2021년 대비 3% 증가한 838억 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휠라, 휠라 언더웨어, 휠라 골프 매출은 2021년 대비 모두 줄었다.
휠라홀딩스는 박리다매 전략을 통해 몸집을 키워왔다. 쿠팡, 11번가 등 온라인 플랫폼도 적극 활용했다. 휠라홀딩스가 2014년 7975억 원에서 2021년 3조 원이 넘는 매출을 낼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러다 보니 ‘어린 학생들이 입는 브랜드’ ‘저가 브랜드’로 브랜드 이미지가 굳어졌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휠라홀딩스는 올해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전환하는 원년으로 삼고 있다. 지난해 윤근창 휠라홀딩스 대표는 ‘휠라 5개년 전략’에 따라 2026년까지 1조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자금 투입을 통해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스포츠 브랜드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휠라홀딩스는 올해 2분기부터 순차적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프리미엄 신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휠라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회사 측의 기대만큼 전환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최지호 삼성증권 연구원은 “패션 기업이 리뉴얼한 상품을 내놓았을 때 소비자들이 바뀐 브랜드를 인식하는 데는 최소 6개월이 걸린다고 본다. 아예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안 바뀌는 경우도 있다. 소비자 포지셔닝(소비자들의 마음속에 제품의 차별성과 가치를 정확히 인식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시점”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휠라홀딩스엔 기대할 만한 요소도 있다.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따라 중국 내 휠라 제품 판매가 늘어나리란 전망이 나온다. 휠라홀딩스는 2007년 안타스포츠와 중국에 합작법인 풀 프로스펙트를 세웠다. 휠라홀딩스는 풀 프로스펙트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다. 풀 프로스펙트에 대한 휠라홀딩스의 장부금액은 2021년 1550억 원에서 지난해 1784억 원으로 15% 늘었다.
‘타이틀리스트’ ‘풋조이’ 브랜드를 소유한 아쿠쉬네트도 휠라홀딩스에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쿠쉬네트 매출은 2021년 2조 4576억 원에서 지난해 2조 9332억 원으로 늘었다. 영업이익은 2914억 원에서 2498억 원으로 증가했다. 휠라홀딩스는 지분 100%를 보유한 매그너스홀딩스를 통해 아쿠쉬네트를 지배 중이다. 매그너스홀딩스는 아쿠쉬네트 지분 53%를 갖고 있다.
이와 관련, 휠라홀딩스 관계자는 “재고자산은 아쿠쉬네트 재고도 포함돼 있어서 규모가 커 보이는 영향이 있다. 북미 시장 재고는 올 연말까지 현재의 50%를 줄이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며 “재고자산 관리와 동시에 프리미엄 브랜드 전환을 위해 패션을 선도하는 글로벌 파트너들과 글로벌 활동을 넓혀갈 계획이다. 무신사나 29cm 등 젊은 층이 많이 찾는 채널 위주로 상품을 많이 선보이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